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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의 폭력 전과를 조회할 권리

2018년 01월 17일(수) 제539호
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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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영국 여성 클레어 우드가 전과가 있던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했다. 이를 계기로 영국은 2014년 ‘클레어 법’을 제정했다. 법은 데이트 상대의 폭력 전과를 조회할 권리를 보장한다.

클레어 우드는 2009년 남자친구 조지 애플턴의 폭력에 시달리다 끝내 목이 졸려 숨졌다. 애플턴은 우드의 시체를 불태운 후 경찰의 추격을 피해 숨어 있다가 목을 매 죽었다. 둘은 페이스북을 통해 만났으므로 우드는 애플턴이 실제 생활에서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못했다. 애플턴은 전과가 있다는 사실을 고백했지만 단순히 부주의한 운전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드는 애플턴의 말을 믿었다. 실제 애플턴의 전과는 폭행, 스토킹 및 납치를 포함한 일련의 심각한 데이트 폭력과 관련되었다.

딸의 비극적인 죽음 뒤 아버지 마이클 브라운은 딸이 만나는 사람의 전과가 어떤 내용인지 알았더라면 경고를 했을 거라고 후회했다. 그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다년간 캠페인을 벌였다. 마침내 2014년 이른바 ‘클레어 법(Clare’s Law)’이 도입되었다. 이 법에 따르면 사귀는 상대방의 전과 기록 공개를 요구할 수 있다. 때로는 해당인에 대하여 우려할 만한 사유가 있는 제3자도 정보 제공을 요구할 수 있다. 정보를 요청받은 경찰 등은 정보 공개가 필요하고 합법적이며 비례 원칙에 맞는지 고려해 공개 여부를 결정한다.

2014년 릴리야 브레하는 7년 동안 같이 살던 남자와 헤어졌다. 우크라이나에서 영국으로 온 브레하는 클레어 법을 몰랐고 알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혼자 아이를 키우며 지낸 지 2년 정도 되었을 때 마빈 이헤나초를 소개로 만났다. 남자는 감옥에서 막 출소했다. 그녀가 무슨 죄목이었냐고 묻자 이헤나초는 “그저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릴리야 브레하(왼쪽)와 다섯 살 아들 앨릭스 말콤. 앨릭스가 잃어버린 신발 한 짝은 경찰이 찾아냈다.
남자는 지붕 수리공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마치 인생을 새로 출발하려는 듯 성실하게 일했으며 외출을 자주 하지도 술을 그리 즐기지도 않았다. 그녀는 점차 이헤나초를 믿었고 결국 남자와 다섯 살인 자기 아들 앨릭스 말콤을 만나게 했다. 이헤나초는 아이와 공놀이를 하고 책을 읽어주었다. 아이는 곧 이헤나초와 친해졌고, 그는 앨릭스에게 마치 새아버지처럼 행동했다.

브레하는 남자가 감옥에 가게 된 이유가 동거하던 여자친구를 심하게 폭행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몰랐다. 이헤나초는 조용하고 차분한 사람처럼 보였다. 말다툼을 하는 경우에도 소리를 지르거나 흥분하는 법이 없었다. 브레하는 남자가 굉장히 자신을 잘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 모든 태도가 억지로 꾸며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사실 이헤나초는 앨릭스가 택시에서 토했다는 이유로 아이를 때린 적도 있었다. 브레하는 이 사실도 알지 못했다.

2016년 11월20일 오후 5시께, 이헤나초는 앨릭스를 데리고 쇼핑을 하러 가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돌아오지 않자 브레하는 전화를 걸었다. 이헤나초는 앨릭스와 공원에 함께 있다고, 앨릭스가 신발 한 짝을 잃어버려 찾고 있다고 말했지만 아이를 바꿔주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앨릭스의 잃어버린 신발 한 짝은 나중에 현장을 수사하던 경찰이 찾아냈다.

목격자들은 성인 남자가 몹시 화를 내며 소리 지르는 걸 들었다고 했다. 사람을 때리는 소리가 하도 요란하게 들려서 처음에는 어른들이 서로 싸우는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가 흐느껴 울면서 작은 목소리로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사람들이 다가가자 고함 소리와 때리는 소리가 멈췄다. 아이가 벤치에 누워 있었고 한쪽 팔이 벤치 아래로 늘어져 있었다. 남자는 아이가 잠들었다고 말하고는 아이를 안고 자리를 떠났다.
ⓒDailyMail 갈무리
딸 클레어 우드의 비극적인 죽음 뒤 아버지 마이클 브라운(가운데)은 데이트 상대의 전과 기록 공개를 요구할 수 있는 ‘클레어 법’ 제정에 앞장섰다.

이헤나초가 앨릭스를 팔에 안고 돌아왔을 때 아이는 이미 의식이 없었다. 남자는 아이가 넘어져 바닥에 머리를 부딪쳤다고 말했다. 아이의 얼굴이 파랗고 호흡이 거의 멎었다는 것을 깨달은 브레하가 응급전화를 걸려고 하자, 이헤나초는 그녀에게 달려들어 얼굴을 때리고 무릎으로 가슴팍을 쳤다. 쓰러진 브레하의 목을 조르던 이헤나초는 문득 손의 힘을 풀었다. 브레하는 가까스로 구급차를 불렀다. 아이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깨어나지 못했다. 이틀 후 산소호흡기가 제거되었다. 만일 의식이 돌아온다고 해도 아이는 걷거나 말을 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뇌 손상을 입은 채였다. 머리와 목 그리고 온몸은 멍 자국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헤나초는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고살죄(故殺· manslaughter)로 유죄판결을 받아 종신형이 선고되었다.

클레어 법이 더 널리 알려지기를…


이헤나초의 가석방 조건에 따르면, 그는 다른 성인의 감시 없이 16세 이하의 어린이에게 접근이 금지되었다. 그러니 그가 앨릭스를 데리고 둘만 외출한 것은 가석방 조건 위반이었다. 브레하는 이런 가석방 조건 자체를 알지 못했다. 가석방 감독관은 그가 여성과 만나기 시작하면 이를 보고받고 감독하도록 되어 있었다. 즉 브레하가 이헤나초와 데이트를 하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이 모든 사실을 들었어야 마땅했다. 감독관은 그가 여성과 아이에게 매우 위험한 존재로 분류되어 있다는 사실을 브레하에게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억울하게 감옥에 갔다던 이헤나초의 전과는 엄청났다. 재판정에서 검사가 전과 목록 전부를 소리 내어 읽는 데만도 15분이나 걸릴 정도였다. 그중 가정 폭력으로 분류되는 전과만 여섯 건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다섯 명의 여자와 동거했고 그 모두를 심각하게 폭행했다. 피해자의 턱을 부러뜨리고, 자기 엄마를 도우려던 열세 살 난 소년의 목을 조른 경우도 있었으며, 허리띠로 때리거나 얼굴을 발로 차기도 했고, 발로 밟아 갈비뼈를 부러뜨린 적도 있었다. 폭행의 이유는 늘 사소했다. 예를 들면 피해자인 여성이 전화기를 빌려주지 않거나 쓰레기를 버려달라고 요구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브레하는 ‘클레어 법’의 존재를 더 널리 알리고 보다 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만일 이헤나초의 폭력 전과를 알았다면 남자를 앨릭스와 단둘이 있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그를 사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브레하는 본인 역시 죽을 때까지 벌을 받으리라고 생각한다. 앨릭스를 이헤나초와 만나게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들의 사망이 무용하지 않기를, 다른 잠재적 피해자들을 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지난해 10월, 영국 법무부는 이헤나초의 가석방 조건을 이행하지 못한 점에 대해 브레하에게 공식 사과를 하고 관련된 감독관 둘에게 징계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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