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년(戊戌年) 황금 개의 해가 열렸다. 한국인의 생활에서 띠는 여러 의미를 부여받는다. 사람들은 새해가 다가오면 그해에 해당되는 십이지상 캐릭터를 각자 입맛대로 서술하며 의미를 만들곤 한다. 2018년이라고 다르지 않아, 활달하고 기운찬 개와 같은 한 해를 모두가 바라고 있을 것이다. 한 나라의 문화를 대표하는 박물관이 이런 분위기를 놓쳐서는 안 되는 법. 국립민속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이 각각 개띠 해를 맞아 관련 특별전을 준비했다.

생활이나 풍습과 관련된 전시를 자주 여는 국립민속박물관은 매년 초 띠에 해당하는 동물 특별전을 열고 있다. 올해 역시 거르지 않고 〈공존과 동행, 개〉라는 제목으로 작품 70여 점을 모았다. 전시는 2월25일까지 이어진다. 국립민속박물관과 달리 국립중앙박물관은 매년 관련 전시를 열지는 않는다. 개가 유난히 사람과 친숙한 동물이기 때문일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는 다소 ‘특별대우’를 받고 있다. 이례적으로 2006년에도 〈그림 속의 개〉라는 제목으로 병술년 개띠를 기념했다. 올해는 4월8일까지 〈개를 그린 그림, 그림 속의 개〉를 주제로 회화 작품 16점을 선보인다.

ⓒ시사IN 이명익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공존과 동행, 개〉 전시가 2월25일까지 열린다.
국립민속박물관 전시에서 특히 관람객의 이목을 끄는 작품은 사도세자가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견도〉이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사도〉(2015)에서는 사도세자가 청나라에서 선물받은 개를 키우는 장면이 나온다. 뒤주에 갇혔을 때도 개는 사도세자의 곁을 지키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물론 영화적 해석이지만 〈견도〉가 보여주듯 이 장면이 그냥 나온 건 아니었다. 사도세자를 둘러싼 비극을 떠올려보면, 과감하고 늠름하게 그려진 〈견도〉 속 개의 모습이 또 다르게 보인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사도세자의 그림뿐만 아니라 가회민화박물관이 소장 중인, 민가에서 그려진 개의 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왕가의 후손이자 화가였던 이암이 그린 〈어미 개와 강아지〉도 관람할 수 있다. 이암은 영모화(翎毛畵:동물을 소재로 그린 그림. 산수·인물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중에서도 개를 특히 즐겨 그렸다. 개와 관련된 그림을 언급할 때 이암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단순한 듯 다정하게 그려진 이암의 그림 속 개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절로 편안해진다. 도화서 화원이었던 김두량의 〈긁는 개〉도 전시 중인데, 목덜미를 긁는 개가 눈앞에 있는 듯 섬세한 필치로 털을 그려넣어 평면의 그림 속에서도 개의 양감과 털의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다.

‘개가 잡귀와 액운을 물리친다’라는 믿음이 반영된 작품도 볼 수 있다. 개를 신(神)으로 보여주는 그림이 두 박물관에 모두 전시되어 있다. ‘십이지신도’ 속 개는 당당하고 활기찬 포즈로 두 박물관 모두에서 전시를 여는 역할을 한다. 국립민속박물관 전시의 〈십이지신도 술신 초두라대장〉은 개의 신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 작품이다. 초두라대장(招杜羅大將)은 본래 정취보살로 별나라에서 모임이 있을 때면 예술을 연출해 모두를 즐겁게 하던 보살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예술에 몰두한 탓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시끄러워 별나라 신들을 모두 깨우곤 했다. 그 일이 반복되자 공분을 사 아미타보살에게 쫓겨 인간 세상에 개의 신으로 내려오게 된 것이라 전해진다. 인간 곁에 머무르게 된 초두라대장은 중생 모두의 배고픔과 목마름을 면하게 해주려 애쓰는 신이 되었다. 그런 일화 덕인지 개의 해가 되면 활기와 쾌활, 건강을 기원하는 인사말이 유독 자주 오간다. 국립민속박물관의 〈당삼목구〉에서는 눈이 세 개인 개가 등장한다. ‘세 개의 눈을 가진 개’라는 뜻의 삼목구(三目狗)는 상상 속 세상에 존재하는 집을 지키는 개로 묘사되는데, 삼재(三災)를 쫓아달라는 기원이 담겼다. 초두라대장과 삼목구는 그림이나 상상 속에만 있지 않다. 오늘날의 개 역시 사고 현장에서 수색을 하거나 시각장애인 안내를 위한 일을 하기도 한다.

개는 인류와 가장 오래 관계를 맺어온 동물이다. 인류와 개가 함께한 역사는 농경 생활을 시작한 시기와 크게 떨어져 있지 않다. 그 오랜 역사가 그림의 표정도 결정한 걸까. 인간들이 그려놓은 개를 보고 있자면, 마치 사람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개의 얼굴에는 인간적인 눈과 표정이 남아 있다.

개의 표정에서 인간을 찾아보는 재미도

이번에 열리는 두 전시에서도 인간이 해석한 ‘인간적인 개’의 모습이 눈에 띈다. 특히 인물이 없이 개만 그려진 〈어미 개와 강아지〉 〈긁적이는 누렁이〉 〈사나운 개〉와 같은 그림을 보고 있으면 종(種)이 다른 동물의 눈이 아닌, 마치 사람 눈을 마주하는 것 같다. 겸연쩍은 표정을 하고 등을 구부려 몸을 긁고 있는 개를 보고 있자면 〈나한도〉 속 나한의 표정이 보이기도 하고, 굵은 쇠사슬에 묶여 엎드려 있는 덩치 큰 사나운 개의 얼굴을 보자면 마음껏 놀지 못해 시무룩해 있는 마음이 읽히기도 한다. 이렇듯 개의 표정과 몸짓에서 인간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도 전시를 관람하는 하나의 포인트다.

인간과 개가 함께 등장하는 〈호렵도〉 〈개 모양 장식 굽다리접시〉와 같은 작품에서는 ‘인간적인 개’의 표정과 몸짓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이들은 인간의 조력자 혹은 동반자로 곁에 머물고 있다. 오랜 시간 인간과 함께한 동물인 만큼 유전자에 각인된 친숙함이 작품마다 느껴진다. 국립민속박물관 전시 2부에서는 이처럼 가족 구성원이 된 개의 모습을 윤정미의 사진 작업 등을 통해 보여준다. 시간이 지나며 인간의 조력자, 애완견을 거쳐 반려견이 된 개는 더욱더 우리에게 익숙한 존재가 되어 그려지고 있다.

기자명 김서울 (〈유물즈〉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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