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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세점 앞에서 비닐을 뜯는 소녀

2018년 01월 18일(목) 제539호
허은선 (캐리어를끄는소녀 대표)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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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제 비행기 타. 이따 중국 세관 무사히 통과할 수 있어야 할 텐데! 일단 우리 화장품 포장은 다 뜯어놨어~!” 한국을 다녀가는 중국 대학생들이 귀국 직전 SNS에 흔히 올리는 글이다. 화장품 무더기를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첨부한다. 사진에는 여권과 탑승자명이 잘 보이는 항공권이 함께 찍혀 있다. 동영상에는 보통 본인의 육성을 담는다. 휴대전화 위치 확인 기능도 반드시 켜놓는다. 게시물이 서울이나 인천에서 등록됐음을 친구들에게 증명하기 위해서다.

중국 여행객들이 이런 게시물을 올리는 장소는 주로 인천공항 면세품 수령장이다. 수령장 앞에 비닐 포장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 화장품과 식품을 하나라도 더 많이 갖고 가려면 캐리어 내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중국 세관으로부터 판매용 물건을 대량으로 떼어간다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상품의 겉포장을 모두 뜯는다. 포장재를 한데 모아 구겨지지 않게 잘 보관한다. 이들 중엔 여행객과 다이거우(代購·중국 보따리상)가 섞여 있다. 비닐을 열심히 뜯는 이들은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서울 시내 주요 면세점 앞에서 텐트를 치거나 돗자리를 깔고 밤을 새우는 중국인들은 물론 거의 후자라고 보면 된다.

ⓒ허은선 제공
방한한 중국인 여행객이 SNS에 남긴 화장품 동영상.
다이거우도 여러 부류로 나뉜다. 경력이 오래되고 자본이 있는 전문 다이거우들은 한국 면세점에서 산 물건을 본국에 내다 파는 게 주업이다. 거래 규모가 큰 다이거우들은 면세점 앞에 줄을 선 중국인을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하기도 한다.  

한국을 오가는 왕복 비행기 값과 숙소 비용 정도를 벌기 위해 다이거우를 하는 젊은이도 늘어나고 있다. 중국 젊은이들이 해외여행 경비를 충당하는 새로운 풍습이다. 주로 애인을 보기 위해 상대국을 찾는 한·중 커플, 방학마다 본국에 들어가는 유학생, 한류 아이돌 콘서트를 보기 위해 한국을 찾는 팬들이다. 한국인 남자친구를 만나러 방학마다 한국을 찾았던 항저우의 한 대학생은 한국행 비행기 표를 구매하자마자 한국 면세점 사이트부터 로그인한다. 날마다 이벤트 적립금을 쌓고 특가 상품을 주의 깊게 본다. 본인이 팔아서 수익이 남겠다 싶은 물건은 SNS에 소개한다. “다음 달에 한국에서 이거 갖고 올 수 있어. 나한테 이 가격만 주면 돼. 살래?” 해당 물건을 사고 싶은 친구들은 알리페이나 위챗을 통해 바로 물건 값을 송금한다.

수익이 남는 원리가 무엇일까. 빅뱅 콘서트를 보기 위해 지난 12월 말 한국을 찾은 다롄의 한 중국인은 이렇게 말했다. “면세점에서 회원카드를 주거든. 카드 등급별로 적립금이 쏠쏠해. 이 적립금을 이용해 돈을 버는 거야. 중국 현지 소비자가격이 100위안인 물건이 한국 면세점에선 90위안이라 쳐. 이미 10위안이 싸졌지. 그런데 여기에 적립금까지 사용하니 70위안이 됐어. 그러면 이걸 사가서 중국 현지에 95위안에만 내놔도 누군가가 사지. 내게 25위안이 남지. 우린 사업자가 아니니 세금도 내지 않아.”

“수고비를 치르고서라도 한국 정품을 사길 원해”


물건을 110위안에도 팔 수 있을까. “당연하지! 120위안이어도 사. 우리가 한국에서 계속 힘들게 여권 들고 사진 찍고, 목소리와 얼굴이 담긴 동영상을 올리고, 휴대전화 위치 확인 기능 켜놓고 다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바로 한국에서 온 정품이란 걸 증명하기 위해서야. 우리 중국인들은 짝퉁이 무섭기 때문에 이에 대한 수고비를 치르고서라도 한국 정품을 사길 원해.”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에서 여권 든 동영상을 찍어 파는 아르바이트까지 생겼다고 한다. 중국인의 짝퉁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기 전까지 면세품 수령장 앞에는 비닐 더미가 수북이 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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