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
“오늘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 급히 몇 자 적어 보내네. 박군 건으로 구속된 조·강 건은 완전 조작극이야.” 1987년 2월, 서울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돼 있던 이부영 〈동아일보〉 해직 기자는 민주화운동 동지인 김정남에게 ‘비둘기(감옥에서 몰래 보내는 편지)’를 띄운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은 조작됐으며 대공 수사단이 조한경 경위와 강진규 경사로 한정해 사건을 은폐하고 있다.’ 그해 5월18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통해 폭로된 진실은 ‘6월 항쟁’으로 폭발해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는 개헌으로 이어졌다. 이부영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이하 몽양기념사업회) 이사장(76)에게는 “분초를 세는” 시간이었다.

그 시절을 담은 영화 〈1987〉이 개봉했다. 이 이사장은 딸 부부, 손자들과 영화를 봤다. 초등학생, 중학생인 손자들의 관람평은 질문으로 채워졌다. “할아버지, 뭘 잘못해서 감옥에 갔어요?” “경찰들이 왜 대학생 형과 누나들을 막 패요?” 유행하는 말로 요약하자면 ‘이거 실화?’라는 반응이었다. 〈1987〉을 접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이라는 수식어는 과장이 아니다. 그는 “1987년에는 목숨을 걸고 했는데 지난 촛불 시민혁명에서는 누구 하나 죽지도, 다치지도 않았다. 영화를 보는 젊은 세대는 그만큼 민주주의가 진전되었구나 하는 감회가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부영의 편지가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기억해야 할 이름이 많다. 김정남에게 편지를 전달한 교도관 출신 한재동과 전병용, 성명 발표를 맡은 고 김승훈 신부와 이를 준비한 함세웅 신부 등이다. 이부영 역을 맡은 배우 김의성은 이 이사장에게 “귀감이 되고 존경스러운 민주 투사셨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여전히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다. 지난 2011년 몽양의 고향인 경기도 양평군에 생가와 기념관을 국비·도비·군비 총 34억원의 예산을 들여 건립했다. 부지는 몽양기념사업회 임원을 맡고 있는 유족 대표가 기증했다. 건립 직후부터 양평군은 기념관 건립에 공이 컸던 몽양기념사업회에 위탁운영을 맡겼다. 그런 양평군이 몽양기념사업회와의 운영 계약을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해지했다. 대신 군은 직영으로 운영 형태를 변경했다. 몽양기념사업회가 기념관을 운영했던 2016년 국가보훈처가 실시한 현충시설 만족도 조사에서 전국 58개 기관 가운데 8위의 성적을 차지한 바 있다. 몽양기념사업회는 위탁운영 계약 해지가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내 소송이 진행 중이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