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영화 〈1987〉을 보며 30년 전 민주화 역사를 되돌아보고 있다. 2017년 집권한 문재인 정부도 적폐를 청산하고 민주주의를 완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다른 한편으로 정부는 사람 중심의 경제와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을 선언했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확립된 경제체제를 넘어서겠다는 의지라 할 수 있다. 1997년 위기 이후 한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제언에 따라 기업과 금융 부문의 구조조정, 정리해고와 파견근로 등 노동시장 유연화, 그리고 금융 개방을 실행했다. 하지만 부채비율의 급격한 축소와 수익성을 강조한 구조조정은 기업·은행을 보수적으로 만들어 투자를 둔화시키고 가계대출만 늘렸다. 또한 노동시장에서는 비정규직이 증가하고 노동자들의 협상력이 약해져 노동소득 분배율이 1997년 약 77%에서 2010년 약 68%로 급락했으며, 소득 격차는 더욱 확대되었다.

시장 자유화를 추구한 구조조정은 아무래도 잘못된 수술이었고 그 결과는 투자와 성장의 정체와 불평등이었다. 이러한 경제구조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미명 하에 민주 정부 시기에 확립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관료들은 위기에 관한 주류적 시각을 따랐고, 재벌은 노동시장 유연화를 환영하며 구조조정을 받아들였고, 진보적인 이들도 외부의 힘에 의한 재벌 개혁을 기대했던 듯하다. 이후 보수 정부 10년은 감세와 규제 완화로 대기업을 지원하고 빚으로 부동산을 부양하여 경제를 활성화하고자 했다. 낙수효과는 없었고 저성장과 불평등의 악순환이 심화되었다. 문재인 정부가 케인스주의를 표방하고 소득주도 성장을 추진하는 것은 이러한 실패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87년은 경제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 7월 이후 노동자 대투쟁은 민주노조 설립과 임금 인상으로 이어져 노동의 몫이 1987년 약 73%에서 1996년 약 79%까지 높아지고 내수가 촉진되었다. 이에 따라 투자와 생산성도 증가하여, 분배와 성장이 선순환하는 소득주도 성장이 실현된 시기였다.

새로운 2017년 체제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1987년의 성과를 발전시키는 동시에 한계도 극복해야 한다. 첫째, 1987년 이후 민주주의를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더욱 발전시키고, 그에 기초하여 자본의 전횡을 통제하고 왜곡된 시장을 바로잡아야 한다. 돌이켜보면 1997년 위기도 민주화 이후의 변화와 관련이 깊다. 1990년대 들어 정부의 투자 조정이 약화되고 해외 단기 차입 규제가 완화되어 위기의 배경이 되었다. 이제 1997년 체제가 맹신했던 자유화 대신 민주적인 국가 개입에 기초한 경제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다. 혁신을 촉진하는 산업정책, 생산적 투자를 촉진하는 금융제도, 그리고 소득 재분배를 위한 복지국가 등 여러 영역에서 정부의 이러한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1987년 파업 중인 울산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중장비를 동원하여 사용자 측과 맞서고 있다.

 


2017년 체제 만들기 위해 1987년과 1997년을 뒤돌아보아야

둘째,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힘과 몫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노동자들이 권리를 찾았지만, 이제 대기업 노조는 자신의 임금 인상만 추구하며 자본과 담합하는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는 뼈아픈 비판을 받고 있다. 물론 재벌 기업을 먼저 비판해야 하겠지만, 다른 노동자들에 대한 대기업 노조의 공감과 연대의 부족은 상위 10%의 소득집중도가 세계 최고인 현실과 관련이 있다. 노조도 없는 90% 하위층 노동자들의 협상력을 높이고, 증세와 복지의 확대로 노동자 내부의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셋째, 2017년 체제는 재벌이나 부동산 문제 등 1987년 이후 계속 심화되어온 문제들에 대해 본격적으로 맞서야 한다. 재벌의 왜곡된 지배구조와 금융구조는 1997년 위기의 배경이 되었지만, 이후에도 재벌 개혁은 성공하지 못했고 소수 재벌의 힘은 더욱 강화되었다. 부동산에 기초한 부의 집중 심화는 민주화와 금융위기를 거치며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더 나은 미래는 역사를 반성하고 넘어서기 위한 노력 혹은 싸움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민주주의가 밥이고 밥이 민주주의가 되는 2017년 체제를 만들기 위해 1987년과 1997년을 끊임없이 되돌아보아야 하는 이유다.

 

 

기자명 이강국 (리쓰메이칸 대학 경제학부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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