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이 통일되면, 해양과 대륙이 연결되어 한반도는 닫힌 공간에서 열린 공간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바닷길, 땅길, 그리고 하늘길로 유라시아와 태평양을 잇는 번영의 관문이 될 것입니다. (중략) 저는 그 꿈을 8000만 겨레와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다른 길이 있다 하더라도 북한을 우회하거나 뛰어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한반도의 한쪽에서 굶주림과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새 정부는 정치적인 상황과 무관하게 인도적인 지원을 계속해나갈 것입니다.”

둘 다 대통령의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 말은 아니다. 전자는 2008년 취임 첫해 이명박 전 대통령의 8·15 경축사이고, 후자는 2013년 8·15 경축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 말이다. 보수 정부의 대통령도 광복절 경축사에 한반도 평화 메시지를 담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 첫해 8·15 경축사에서 이렇게 예고했다. “다가오는 평창 동계올림픽도 남북이 평화의 길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평창 올림픽을 평화 올림픽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남북 대화의 기회로 삼고 한반도 평화의 기틀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의 예고가 마침내 현실이 되었다. 경축사에 담긴 말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문 대통령은 미국이나 러시아 순방 때 지지자들을 실망시키는 대북 강경 메시지도 마다하지 않았다. 목적은 하나였다. ‘한반도 운전석’에 앉기 위해서였다.

남북관계는 더 이상 흑백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좌우 전선도 엷어졌다. 보수주의자이면서도 북한을 평화 협력 대상으로 꼽는 여론이 늘고 있고, 자신을 진보적이라 여기면서도 한·미 동맹을 강조하는 ‘교차 여론’ 역시 나타난다. 문재인 정부는 이분법의 틀에서 벗어난 한층 업그레이드된 섬세한 정책 패키지를 제시해야 했다. 지난해 9월 그 복합성을 알았기에  남문희 〈시사IN〉 기자는 페이스북에 ‘굴욕을 감내하면서 사실상 핵보유국인 북한과 맞서 최소한의 억지력을 확보하기 위해 생명줄을 쥔 미국의 가랑이 밑을 기고 있는 것이다’라는, 문 대통령 행보를 해설한 글을 올려 반향이 컸다.

한반도 문제만 30년 가까이 취재한 남문희 기자는 지난해 12월부터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예측했다. 편집국 기자들은 반신반의했는데 이번에도 그의 예측은 어긋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예전부터 남 기자에게 ‘모란봉 3호’라는 별칭을 지어주었다. ‘지령’을 받은 듯 북한 전략과 전술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가 보는 2018년 한반도 정세를 커버스토리로 올린다. 이번 커버스토리에서 그는 회담장에 나선 북한이 감춘 ‘가시’를 드러냈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