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구현대아파트 경비원 전원이 지난해 12월28일 해고 예고 통보를 받았다. 이들이 받은 통지서에는 해고 사유 중 하나로 ‘최저임금 인상’이 적혀 있었다. 이 사건은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려 사회적 약자가 피해를 본 대표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압구정동 구현대아파트 경비원들은 정말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잘렸을까.

해고 예고를 통보한 측은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다. 아파트 관리 방식은 크게 자치관리와 위탁관리로 나뉜다. 자치관리는 입주자대표회의가, 위탁관리는 위탁관리 회사가 아파트를 관리한다. 위탁관리 회사가 용역업체를 선정하고, 그 용역업체가 경비원을 고용하기도 한다. 자치관리의 경우에도, 입주자대표회의가 용역업체를 통해 경비원을 채용하는 경우가 많다. 구현대아파트는 입주자대표회의가 경비원을 직접 고용하는 예외적인 경우였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이미 지난해 10월26일 ‘경비원을 용역으로 전환한다’고 의결했다. 경비원 전원 해고는 용역 전환의 전 단계다. 말하자면 경비원을 ‘아웃소싱’하기 위해 일단 해고한 것이다. 다만 해당 용역업체가 기존 경비원 전원의 고용을 보장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시사IN 신선영휴게시간에 대한 노동청 조사가 시작된 후 입주자대표회의는 입주민들에게 경비원 휴게시간을 공지했다.
이 아파트 경비원들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더 받게 되는 월급 액수는 1인당 약 32만원 수준이다. 24시간씩 격일제 근무를 하며 근무 중 무급 휴게시간이 6시간인 이 아파트 경비원의 2017년 평균 월급은 197만원 정도. 휴게시간이 그대로라면 2018년 월급은 약 230만원이 되어야 한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지난해 11월14일 노사협의회 당시 최저임금 인상을 이유로 무급 휴게시간을 지금보다 2시간 늘릴 것을 요구했다(이 아파트 경비원들은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있다. 이 역시 매우 드문 사례다). 노조는 휴게시간을 1시간 늘릴 용의는 있지만 2시간 늘리면 임금이 오히려 줄어든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노사 합의는 불발되었다.

문제는 용역업체를 통해 경비원을 고용하더라도 최저임금은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중간에 용역업체를 끼우면 업체에 돌아갈 이윤과 일반관리비, 부가가치세 등으로 인해 관리비용이 더 커질 수도 있다. 그런데도 ‘용역 전환’이 선택된 이유는 무엇일까?

입주자대표회의 측은 ‘퇴직급여충당금’(노동자가 퇴직할 때 퇴직금으로 지급할 수 있도록 준비해두는 돈)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또한 매우 모호한 이유다. 용역 시스템으로 전환한다고 해서, 경비원들의 퇴직급여를 충당할 필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파트 경비 노동 관련 법적 분쟁에 여러 차례 개입해온 김수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퇴직금 정산 시 계속근로기간(근로계약 체결 시부터 종료 시까지)’을 줄이기 위한 방안일 가능성이 크다며 “용역업체에 고용을 전원 승계하면서 퇴직금을 미리 주면 법적 분쟁의 소지가 있다”라고 말했다. 퇴직금은 퇴직 직전 3개월 평균임금의 30일분에 계속근로기간을 곱해 계산한다. 최저임금이 오르는데 계속근로기간도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비용이 커지니 이번에 한번 해고하고 용역으로 전환하면서 퇴직금을 중간 정산하겠다는 셈법이다.

ⓒ시사IN 신선영서울 압구정동 구현대아파트에서는 경비원들이 ‘발레파킹’ 등 주차관리 업무를 해야 했다.
‘휴게시간 보장’ 주장했더니 대량 해고로 응수

입주자대표회의가 용역 전환을 추진하는 다른 명분은 매우 역설적이다. 경비원에 대한 ‘갑질’이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지난해 9월 공동주택관리법에 다음과 같은 규정이 들어갔다. “입주자 등, 입주자대표회의 및 관리 주체 등은 경비원 등 근로자에게 적정한 보수를 지급하고 근로자의 처우 개선과 인권 존중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며, 근로자에게 업무 이외에 부당한 지시를 하거나 명령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입주자대표회의 측은 이 법 규정을 위반하지 않으려면 용역 전환을 강행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동안 경비원들이 감당해온 ‘주차관리’ 등의 노동에 ‘부당한 지시’로 해석될 만한 소지가 있으니, 앞으로는 경비원 관리를 용역업체에 맡기고 경비원과 관리원으로 나눠 관리원에게 주차관리 등 경비 외 업무를 맡기겠다는 것이다.

구현대아파트의 경우, 지하 주차장이 없어서 주차난이 매우 심각했다. 주민들은 자동차 키를 경비원에게 맡겨두었고 경비원들은 주민 요청이 있거나 필요할 때마다 ‘발레파킹(대리 주차)’을 해왔다. 경비원들을 사실상 24시간 근로에 노출시킨 것은 다름 아닌 ‘주차관리’였다. 경비원 김 아무개씨의 근무일지에는 밤 12시부터 새벽 4시 등 휴게시간에도 차를 빼주었다는 기록이 빼곡히 남아 있었다. 김씨는 “경비초소에서 무전기를 켜두고, 근무복에 신분증을 패용하고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다가도 주민 요청이 있으면 응해야 했다. 이것이 휴게시간인가”라고 반문했다. ‘을’을 보호하기 위한 법 규정이 경비원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명분으로 사용된 경우다. 김수영 변호사는 “해당 조항은 경비원에 대한 도 넘은 ‘갑질’이 사회적 문제가 되어 도입되었다. 법의 취지를 왜곡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휴게시간 보장’을 둘러싼 노사 갈등 역시 이번 경비원 전원 해고 사태의 배경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아파트 경비원 40여 명은 2016년 12월과 지난해 3월 두 차례에 걸쳐 ‘사측이 휴게시간을 보장하지 않았다’며 고용노동부 서울강남지청(노동청)에 지난 3년 동안의 체불임금(휴게시간에 일한 대가)을 청구하는 진정을 냈다. 구현대아파트는 2014년 11월 단체교섭 이후 점심 1시간, 저녁 1시간, 야간 4시간 등 하루 6시간을 경비원의 휴게시간으로 정하고 있었다. 휴게시간은 무급이다. 24시간 격일제로 일하는 경비원은 24시간에서 6시간을 뺀 18시간에 대해서만 임금을 지급받는다. 2006년 대법원은 경비원의 휴게시간에 대해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놓여 있는 시간이라면 근로시간에 포함된다”라고 판결한 바 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노동청 조사가 진행되자 경비원들이 주차관리를 한 것은 주민들과의 친분 관계 유지를 위한 ‘유료 봉사’라고 주장하며 주민들에게 ‘팁 확인서’를 받기도 했다. 김 아무개씨는 “팁 문화가 있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일부 주민의 선의와 동정을 휴게시간에 쉬지 못한 대가인 것처럼 주장하면서 팁 확인서까지 받는 것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이런 갈등이 진행되는 가운데 지난해 10월26일 입주자대표회의는 용역 전환을 의결했다. 경비원들은 이에 대한 반발로 지난해 11월20일 주차관리와 택배 보관 업무를 중단하는 ‘행동’에 돌입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아르바이트 직원을 고용해 주차관리를 맡겼다. 12월4일 입주자대표회의는 용역 전환 의결을 통보하며 그 방법을 협의하자는 공문을 노조에 보냈다. 노조는 용역 철회를 대화 조건으로 내걸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경비원 94명 전원에게 해고 예고 통지서가 날아왔다. 입주자대표회의의 피고용인이지만 아무래도 사측 입장에 더 가까울 수밖에 없는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은 “경비원들의 노동청 진정도 (해고의) 한 원인이 되었다고 본다. 지금은 노조와 하나하나 합의해야 하지만 용역으로 전환하면 탄력적인 인력 운용도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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