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회가 새해 벽두부터 ‘마리화나(대마초) 합법화’ 논란으로 시끌시끌하다. 마리화나를 의료용은 물론이고 담배나 음료 같은 기호용으로도 합법적인 재배·보관·유통·사용이 가능하냐의 문제다. 미국에서는 이미 콜로라도 등 일부 주에서 정도는 조금씩 다르지만, 마리화나가 합법화되어 있다. 올해 들어 면적으로나 인구수로나 경제력 면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캘리포니아 주가 드디어 기호용 마리화나의 구입과 판매를 허용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트럼프 행정부가 제동을 걸었다. 1월4일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이 전국의 연방 검사들에게 “콜 메모(Cole Memo)에 따르지 말라”는 지침을 하달한 것이다.

미국 연방 정부 차원에서 마리화나 사용은 불법이었고 현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상당수 미국인은 마리화나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전임 오바마 행정부는 타협적인 방안을 시행했다. 당시 제임스 콜 법무차관이 다음과 같은 지침(‘콜 메모’)을 산하 연방 검사 93명에게 내려보낸 것이다.

“주 정부의 독자적 마리화나 정책이 갱단 등 범죄조직과 연계되어 있지 않고 청소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연방 정부 차원에서는 개입을 자제하라.” 주 정부 차원에서 마리화나 사용을 합법화하는 경우, ‘그래도 연방법에선 불법’이라며 수사하거나 단속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AP Photo1월1일부터 마리화나 판매가 합법화된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한 매장에서 시민들이 마리화나를 구매하기 위해 냄새를 맡으며 상품을 고르고 있다.

세션스 장관은 연방 검사들에게 이런 내용의 ‘콜 메모’를 따르지 말라며 ‘연방법상 마리화나는 불법’이라고 상기시켰다. 이는 전임 오바마 행정부가 용인한 ‘주 정부 차원의 마리화나 합법화’를 정면으로 뒤집는 조치다. 세션스 장관의 새 지침에 따라 연방 검사들은 자의적인 기준에 맞춰 기호용 마리화나 판매업자들을 단속할 법적 근거를 갖게 되었다.

이에 따라 연방 정부와 주 정부의 긴장이 극도로 고조될 전망이다. 올해도 최소 12개 주에서 의료용 혹은 기호용 마리화나 합법화를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버몬트 주 의회는 세션스 법무장관의 새 지침을 비웃기라도 하듯 1월10일 마리화나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켰다. 뉴햄프셔 주도 마리화나 합법화 안이 새해 벽두에 열린 주 의회에서 발의돼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여론도 압도적으로 마리화나 합법화를 지지한다.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세션스 장관의 지침이 궁극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세션스의 법무부가 시대에 역행 중이라는 것은 확실하다”라고 주장했다.

미국 사회에서 마리화나 합법화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마리화나는 만성 통증이나 근육 통증, 화학요법에 따른 현기증 등을 치료하는 데 효능이 입증된 물질이다. 의료용 마리화나가 합법화되어 있는 뉴욕 주의 경우, 10개 회사가 판매소 40곳을 운영 중이다. 만성 통증, 정신적 외상 치료 등을 위해 마리화나를 이용하는 환자만 4만명에 달한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2016년 3월 기준 미국 내에서 의료용 목적의 마리화나를 이용하는 인구는 260만명으로 추산된다.



ⓒAP Photo1월4일 제프 세션스 미국 법무장관은 연방 검사들에게 ‘연방법상 마리화나는 불법’이라는 지침을 하달했다.

29개 주에서 의료용 마리화나 합법화

물론 마리화나의 부작용에 대한 연구 결과도 많다. 이를테면 마리화나를 흡입할 경우 학습과 기억력, 주의력 등 인지능력이 떨어지고, 마리화나를 복용한 임신부의 경우 저체중 신생아 출산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마리화나 환각 상태에서 운전할 경우 사고 위험성도 높다. 미국 연방 법률이 1970년 이래 마리화나를 헤로인 같은 마약 성분으로 규정해 사용과 판매를 엄격히 금지해온 이유다.

미국 국립약물남용연구소에 따르면, 2015년 당시 마리화나는 매월 평균 2200만명 이상의 미국인이 이용하는 ‘불법 물질’로, 여성보다 남성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마리화나는 특히 사춘기 청소년과 막 성인이 된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데, 한국의 고3에 해당하는 12학년 학생 가운데 35.6%가 마리화나 흡입 경험을 한 것으로 조사되었다(2016년 기준). 이들 중 6%는 거의 매일 마리화나를 흡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서도 2017년 12월 현재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의료용 마리화나를 합법화한 지역이 29개 주에 달한다. 상당수 주들은 마리화나를 의료용으로는 물론이고 기호용으로도 합법화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결과 1월 초 현재, 콜로라도 주를 비롯해 워싱턴·오리건·알래스카·네바다·캘리포니아·버몬트·매사추세츠 등 8개 주와 워싱턴 D.C.에서 기호용 마리화나가 합법화되어 있다. 매사추세츠 주는 7월부터 마리화나 소매 판매를 허용할 계획이다. 메인 주는 지난해 주민투표를 통해 올해 2월1일부터 기호용 마리화나 판매를 합법화하기로 했으나 공화당 소속 주지사의 거부권 행사로 다소 어정쩡한 상황이다.

마리화나가 합법화된 주의 경우, 만 21세 이상 성인은 신분증만 제시하면 1온스(28.4g) 이하의 기호용 마리화나를 판매나 구매는 물론 소지·운반까지 할 수 있다. 단, 공공장소와 차량 안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현재 미국에선 담배처럼 피우는 마리화나 외에도 초콜릿이나 사탕 혹은 커피 같은 음료에 섞는 등 여러 형태의 기호용 마리화나 제품들이 등장했다.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올해 1월1일부터 기호용 마리화나가 합법화되었다. 샌프란시스코·샌디에이고·버클리 등 주 내 여러 지역에서 새해 벽두부터 기호용 마리화나를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판매소마다 장사진을 이뤘다. 1월10일 현재 캘리포니아 주 전역에서 마리화나를 판매하는 곳은 100군데를 넘어섰고 확대일로로 치닫고 있다. 미국 전국 차원으로 보면, 지난해 말 기준 4500개에 달하는 의료용 및 기호용 마리화나 판매소가 성업 중이다. 현재 연간 60억 달러로 추산되는 마리화나 시장이 올 연말에는 100억 달러까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마리화나로 일자리와 세수 확대

주 정부들이 기호용 마리화나를 합법화하려는 이유 중 하나는 ‘마리화나 산업’ 육성으로 일자리 창출은 물론 세수까지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콜로라도 주의 경우 지난해 마리화나 판매를 통해 거둔 세금이 1억9400만 달러에 달했다. 주류세(4400만 달러)는 물론 담배세(1억6200만 달러)까지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오리건 주의 케이트 브라운 주지사는 “마리화나가 오리건 주의 주요 산업으로 발돋움했다”라고 자랑한다. 오리건 주는 2015년에 마리화나를 합법화했는데 관련 일자리가 1만9000여 개나 창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의 관련 세수도 1억 달러에 이르렀다. 미국의 여러 주에서 마리화나 판매 세율은 최소 35%로 극히 높은 편이다. 워싱턴 소재 민간 싱크탱크인 세금재단의 2016년 보고서에 따르면, 마리화나를 합법화할 경우 관련 연방 세수와 주 정부 세수가 최대 연간 280억 달러(약 30조원)에 달한다.


마리화나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도 크게 바뀌었다. 갤럽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64%가 마리화나 합법화를 지지한다. 심지어 공화당 지지자들 가운데서도 상당수가 마리화나에 친화적이다.

세션스 법무장관의 지침은 상당수 주에서 혼란을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원칙적으로 연방법보다 주법이 우선한다. 그러나 연방법이 무력한 것은 아니다. 마리화나가 합법화되어 자유롭게 거래되는 주에서 연방 검사가 연방법을 근거로 수사와 단속을 강행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의회가 나설 수밖에 없다(위 상자 기사 참조).

정치 전문가들은 마리화나 문제가 올가을 예정된 중간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 정치 평론가인 플로이드 시룰리는 〈타임〉과 한 인터뷰에서 “상·하원을 공화당에 내준 민주당은 분명 마리화나 문제를 선거에 이용할 것이다. 공화당으로선 악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 자신은 2016년 대선 유세 당시 콜로라도 주에서 “마리화나 합법화 문제는 (연방 정부가 아니라) 개별 주에 맡기는 쪽이 옳다”라고 말한 바 있다.




“마리화나 수사 돈줄 끊겠다”



마리화나 합법화 문제를 놓고 미국의 연방 정부와 주 정부들이 정면충돌하면서 보완 입법을 통해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미국 연방 의회가 나설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현재 하원에는 마리화나의 온전한 합법화를 위해 의원 5명이 모임을 조직한 상태다. 의회 측 분위기는 민주·공화당을 막론하고 마리화나 합법화에 제동을 건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에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1월 중순 현재 마리화나 합법화 관련 법안이 4건이나 상정되어 있다.

특히 마리화나가 합법화된 주 출신 의원들이 격분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 출신 데이나 로러배커 연방 하원의원(공화당·사진)은 “세션스가 우리 모두를 배신했다”라며 강력 대응을 예고했다. 플로리다 주의 맷 게츠 연방 하원의원(공화당)은 세션스를 “무정한 냉혈 인간”이라고 비난한 뒤 “그의 조치는 어린이를 포함한 많은 환자들에 대한 치료의 길을 막을 것이다”라고 규탄했다.


ⓒAP Photo

전문가들은 연방 의회가 취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으로 연방 차원에서 기호용 마리화나를 합법화한 뒤 구체적 처리 지침을 주 정부에 맡길 것을 꼽는다. 실제 일부 민주당 의원은 올해 연방 예산안 지출 규정에 이 문구를 삽입해 트럼프 행정부와 거래를 시도할 수 있다. 의회에서 결의된다면, 법무부가 세션스 장관의 지휘에 따라 마리화나 관련 수사를 추진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삭제하는 방법도 제시된다. 마리화나 수사에 필요한 법무부의 돈줄을 끊어놓겠다는 의미다. 

마리화나 문제 전문가인 데일 존스 박사는 MS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의회의 적극적 대응을 촉구했다. 

“(대다수) 미국인들의 뜻을 수용할 것인가? 아니면 관리들의 구태의연한 선입견으로 신흥 마리화나 산업을 절름발이로 만들고 일자리를 파괴할 것인가?”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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