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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의 무덤’에서 스타워즈를 묻다

2018년 01월 24일(수) 제540호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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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2월 개봉한 <스타워즈:라스트 제다이>가 이름값에 비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스타워즈>의 핵심적 의미와 전통적 오락성을 모두 잃었다고 혹평한다.

<스타워즈:라스트 제다이>(이하 <라스트 제다이>)는 성공할 이유가 많았다. 이름값부터 독보적이다. 1977년부터 나온 ‘오리지널 3부작’과 ‘프리퀄 3부작’은 영화사를 모조리 새로 썼다. 2015년, 10년 만에 새로 나온 ‘시퀄 3부작’의 첫 작품 <스타워즈:깨어난 포스>(이하 <깨어난 포스>)도 각종 기록을 갈아치웠다. 속편인 <라스트 제다이>는 오리지널 시리즈의 전설들이 본격적으로 활약해 향수를 자극한다. 레아 역을 맡은 캐리 피셔(2016년 사망)의 유작이기도 했다. 제작비로 2000억원 이상 쓰인 대작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라스트 제다이>는 무참히 실패했다. 개봉 사흘 만인 지난해 12월17일부터 관객은 줄기 시작했다. 1월11일 기준 전국 관객 수는 96만명으로, 전작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100만 고지는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놀랄 일이 아니라는 평가도 없지는 않다. 한국 시장의 특수성 때문이다. 국내에서 <스타워즈> 시리즈는 그 이름값에 비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977년부터 2005년까지 개봉한 에피소드 여섯 편 가운데 관객이 200만명 이상 든 영화는 한 편도 없다. 그래서 종종 한국은 ‘스타워즈의 무덤’이나 ‘불모지’라고 불린다. <라스트 제다이> 역시 이 ‘전통’을 따랐을 뿐, 이례적 현상은 아니라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면 조금 과장된 이야기다. 영화진흥위원회는 2004년까지 서울 관객 수, 2005년부터는 전국 관객 수를 집계하고 있다. 1978년 한국에서 <스타워즈>가 모은 35만 관객은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수였다. 리샤오룽(이소룡) 주연의 <사망유희>는 28만명이, <로미오와 줄리엣>은 27만명이 봤다. 1999년 <스타워즈:에피소드 1-보이지 않는 위험> 역시 서울 관객 75만명이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러브레터>(65만명)와 <인정사정 볼 것 없다>(66만명)를 따돌렸고, <매트릭스>(90만명)보다는 조금 뒤처졌다. 최신작과 비교해도 차이가 보인다. 2015년 개봉한 일곱 번째 에피소드 <깨어난 포스>는 327만명이 봤다. <라스트 제다이>의 성적은 2016년 나온 ‘외전’ 성격의 <로그 원:스타워즈 스토리>(이하 <로그 원>)보다도 못하다. 이번 실패는 분명 기현상이다.

이상기류는 본고장 미국에서도 보인다. 미국에서 <스타워즈>의 위상은 상상 밖이다. 2015년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기자회견 말미에 “<깨어난 포스> 보러 가야 한다”라고 했을 정도로, 국민 전반에 스타워즈 팬덤을 형성한 나라가 미국이다. 겉보기에 <라스트 제다이>는 무난한 성적을 올리고 있다. 개봉일에 1억400만 달러를 벌었고, 흥행 수익 북미 1위·세계 3위로 2017년을 마무리했다.

문제는 뒷심이다. 미국 영화 정보 사이트 IMDb의 집계에 따르면 <라스트 제다이>의 자국 내 개봉 수익은 전작의 약 87%, 첫 주말까지 수익은 89%가량이었다. 그런데 둘째 주 금요일에는 약 72.9%로 떨어지더니 넷째 주 금요일에는 71%대로 내려앉았다. 북미에서만 8억 달러 이상 수익을 내리라 예상했던 <포브스> 등 현지 매체는 여러 차례 전망을 수정하고 있다.

수익 곡선은 조용히 하락했으나 온라인 평가는 훨씬 시끄러웠다. 비평 사이트 ‘메타크리틱’과 ‘로튼토마토’에서 일이 벌어졌다. 평론가들이 <라스트 제다이>에 각각 평균 86점, 90%를 준 데 비해 유저들은 평균 4.6점(10점 만점), 49%를 준 것이다. 전작인 <깨어난 포스> <로그 원>에 비해 누리꾼 다수가 <라스트 제다이>를 혹평했다. 일각에서 ‘평점 조작’ 의혹을 제기하자 로튼토마토 모회사의 부회장이 직접 해명하는 일도 있었다. 데이나 벤슨 부회장은 “리뷰가 약간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과거의 다른 블록버스터들과 같은 수준이다. 모든 것은 정상이다”라고 밝혔다. ‘약간 증가한’ 혹평들의 내용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라스트 제다이>는 <스타워즈>의 핵심적 의미와 전통적 오락성을 모두 버렸다.”

<넛지> 공저자인 캐스 선스타인 하버드 대학 로스쿨 교수도 여기에 동참했다. 그는 지난해 12월19일 <블룸버그> 기고에서 “<라스트 제다이>는 <스타워즈>가 아니다”라고 썼다. 시리즈가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인간 내면의 문제를 놓쳤다고 평했다. 선스타인 교수는 각 시리즈의 인물이 어떤 동기로 선 대신 악에 빠져드는지에 주목한다. 조지 루커스가 제작한 전작 여섯 편에서 주인공들이 타락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이다. <라스트 제다이> 역시 선악을 다루지만 인물의 내적 갈등은 전혀 와 닿지 않는다. 상실의 슬픔이라는 결정적 동기가 없기 때문이다. <라스트 제다이> 등장인물에 대한 선스타인 교수의 평은 이렇다. “(악에) 진정으로 유혹된 적이 없는 주인공 레이는 지루하다. 악역 카일로 렌은 (선악 사이에서) 갈등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가짜로 밝혀진다. 전작의 악역 아나킨과 달리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한 경험 없이 그냥 타락했기 때문이다.”

<스타워즈:라스트 제다이>에 등장하는 ‘전설적 남성’은 비루해지고, ‘아군 남성’은 미성숙하며, ‘악역 남성’은 우스꽝스럽다.
“민주주의에 대한 태도가 진부하다”


선스타인 교수가 쓴 책 <스타워즈로 본 세상>에서는 <스타워즈>의 또 다른 주제어로 ‘민주주의’를 꼽았다. 오리지널 3부작과 프리퀄 3부작에 등장한 공화국과 제국은 민주주의와 파시즘을 뜻한다. 선스타인 교수는 영화가 주인공들의 입을 빌려 이런 질문들을 던진다고 썼다. “행정부와 의장(대통령) 권한에는 어떤 제약이 있는가? 어떤 상황에서 행정 관료가 최고 권력을 차지하는가? 입법부가 가장 민주적인 기관인가? 그렇기 때문에 실패하는가? 언제 실패하는가?” <스타워즈>의 전 세계적 흥행은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에도 기대고 있다는 게 선스타인 교수의 분석이다. 반면 <블룸버그> 기고에서 그는 <라스트 제다이>의 민주주의에 대한 태도가 “진부하다(banal)”고 썼다. 이 작품에서 민주주의란 ‘누구에게나 포스가 있다’ 정도로 간추려진다.

물론 상업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오락성이다. <스타워즈>가 대중에게 어필해온 오락성이란 무엇일까? 원작자 조지 루커스는 “거품으로 기분 좋게 들뜬 모습”이라고 말한다. <제국의 역습> <제다이의 귀환> <깨어난 포스> 세 작품의 각본을 쓴 로런스 캐스던은 2015년 이렇게 말했다. “(<깨어난 포스>가) 첫 3부작의 느낌이기를 원했다. 재미있고 즐겁고 개자식처럼 움직이고, 너무 많이 질문하지 않는 것이다. 재미와 즐거움을 매 장면의 척도로 삼았다.”

캐스던이 하차한 <라스트 제다이>는 달랐다. 모든 장면에서 직접적인 메시지를 뿜는다. 새로 등장한 ‘로즈’라는 캐릭터가 유독 미움받는 이유는 그녀가 이 설파를 담당하기 때문이다. 로즈는 주인공을 쫓아다니며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 “증오하지 말고 사랑해야 한다” “거대 군수업체를 경계해야 한다” 따위 프로파간다를 주입한다. 로즈가 등장할 때마다 서사는 헐거워진다. 교훈을 위해 억지로 들어간 듯한 이야기들이 극의 긴장감을 떨어트린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온몸으로 마지막 교훈을 강요하는 이 캐릭터는 포화가 빗발치는 전장에서 남성 캐릭터와 키스를 감행한 뒤 당연하게 생환한다. 단순히 ‘못생긴 동양인 여성’이 연기해서 거부당한다기에는 이 캐릭터의 작품상 한계가 너무도 자명하다.

‘개자식처럼 움직’여 사랑받았던 주인공은 <라스트 제다이>에서 용도 폐기됐다. <스타워즈> 세계관의 최강자인 루크 스카이워커는 졸렬한 노인이 되어 돌아왔다. 34년 만에 루크 역을 맡은 배우 마크 해밀 역시 캐릭터의 변모에 불만을 내비쳤다. “‘이 사람은 누구지? 은하계에서 가장 희망찬 캐릭터가 ‘제다이를 끝낼 때’라고 말하는 은둔자가 된다고?’ (중략) 루크는 긍정적이고 쾌활한 인물이었다. 이 영화에서는 배역을 다른 캐릭터로 여겨야 했다. 루크 스카이워커가 아니라, 이를테면 ‘제이크 스카이워커’ 같은 인물로.”

<라스트 제다이>는 시리즈의 핵심 주제와 오락성을 모두 버리는 도박을 감행했다. 이 영화를 극찬한 댄 해슬러-포레스트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 교수는 목적이 있어서라고 주장한다. <로스앤젤레스 리뷰 오브 북스> 기고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영화는 <스타워즈> 시리즈에 내재된 ‘해로운 남성성(toxic masculinity)’을 제거하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 (중략) 진정한 악은 마법을 쓰는 노인네가 아니다. 해로운 남성성과 자본가 계급의 치명적 교차점이다.” 그래서 <라스트 제다이>는 사악한 악당이나 음험한 제국에 맞서는 대신 남성들에게 맞선다. ‘전설적 남성’은 비루해지고, ‘아군 남성’은 미성숙하며, ‘악역 남성’은 우스꽝스러워진다. 지혜로운 여성들이 이들을 계도하는 과정이야말로 <라스트 제다이>의 주된 플롯이다. 해슬러-포레스트 교수는 ‘영웅 숭배와 정의로운 폭력’을 ‘동정심, 이타심, 비폭력주의’로 대체하자고 썼다. 말하자면 향후 <스타워즈> 시리즈는 장르부터 바뀔 가능성이 있다.

시리즈의 파격 행보 뒤에는 캐슬린 케네디 루커스필름 회장이 있다. 케네디는 2012년 조지 루커스가 회사를 월트디즈니에 매각한 직후부터 <스타워즈> 시리즈를 총괄하는 인물이다. 취임 후 그녀는 경영진 과반수를 여성으로 채우고, 각지에서 페미니즘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연설해왔다. 영화에도 직접적으로 관여한다고 알려져 있다. 라이언 존슨 <라스트 제다이> 감독에 따르면 레아 공주가 우주를 유영하는 ‘논란의 장면’ 역시 케네디의 아이디어였다.

‘해로운 남성성’ 제거에 초점

40억5000만 달러를 들여 인수한 루커스필름 수장에 케네디를 앉힌 것은 디즈니다. 어떤 사업적 고려에서 세계 최대의 미디어 자본은 <스타워즈> 시리즈를 변혁하려 했을까? 김봉석 영화평론가는 제작사가 <스타워즈>라는 브랜드의 상업적 가치에 한계를 느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작들의 서사는 20세기의 틀에 묶여 있다. 새로운 가치를 들고 온 <라스트 제다이>는 시리즈가 외연을 넓히는 전환점이다. 마니아만을 대상으로 하는 시장은 영속 불가능하다. 제작사로서는 아시아인, 여성 등 새로운 고객을 끌어들이려 하는 게 당연하다. 결정적으로, 기존 팬덤은 변화에 반발하면서도 소비를 멎지 않을 것이다.”

‘현대 미국의 신화’ <스타워즈>는 디즈니 체제 아래서 빽빽하게 계획되어 있다. 내년 외전인 <솔로:스타워즈 스토리> 개봉을 시작으로 후년에는 <스타워즈:에피소드 9>가 나온다. 다른 등장인물을 다룬 외전도 여럿 제작을 검토하고 있다. 어떤 시도를 하든 결국 중요한 평가 지표는 수익이다. 향후 나올 ‘비폭력 <스타워즈>’에 <라스트 제다이> 이상의 흥행 적신호가 켜진다면? ‘무해한 남성 캐릭터’ 상품이 다스 베이더의 절반도 팔리지 않는다면? 이번 작품에서 돌아갈 곳을 없애버린 <스타워즈>는 상상 이상으로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40년 만에 ‘전환’을 택한 <라스트 제다이>가 이 신화의 신약이 될지 외경이 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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