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
정치제도 개혁이 왜 필요한지, 지금 어떤 정치인들이 무슨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여느 때처럼 익숙한 주제로 열변을 토하던 어느 오후였다. 갑자기 그가 머뭇머뭇하더니 세 장짜리 문건 하나를 내밀었다. 〈청년의인당〉이라는 고풍스러운 제목이 달린 소설 보도자료였다. 잠깐, 소설? 논문도 강의도 시민단체 기획안도 아니고?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57)는 정치학계에서 손꼽히는 제도 개혁의 전도사다. 선거제도가 비례성이 높아야 하고, 승자독식보다는 합의제 원리가 작동하도록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을 20년째 줄기차게 전개해왔다. 논문, 대중서, 언론 기고, 정당 자문위원, 대선 캠프, 시민단체 등 그가 접근 가능한 모든 플랫폼을 동원했다.

“논문이나 기고는 정치인들이나 보지 정작 시민들은 관심이 없다.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방법을 찾다 보니 소설이 떠올랐다.” 첫 소설을 퇴고한 후에도, 이 열정적인 정치학자는 생전 처음 써보는 형식의 글쓰기에 푹 빠져 있다. “논문은 내 말이 맞다고 똥고집 피우는 느낌인데, 소설은 뭐가 옳고 틀리고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게, 참 따듯하면서도 동시에 쿨하더라. 은퇴하면 소설을 좀 더 써보고 싶어졌다.”

최 교수는 소설 쓰기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었다. 2016년 여름방학부터 일단 무작정 썼다. 주말 빼고 일주일에 5일씩, 하루에 5시간은 꼭 앉아서 쓰기로 다짐했다. 13개월 동안 거의 지켰다. 습작으로 생각한 작품인데, 쓰다 보니 캐릭터가 자기들끼리 알아서 움직였다. 주위에서 보던 정치인과 정치학자들의 특성이 뒤섞여 소설 속 캐릭터에 녹아 들어갔다. 계획에 없던 애정 관계도 자기들끼리 생겨났다. ‘이것 봐라?’ 싶었다. 출판 욕심이 났다.

출판사 편집장에게 뜻밖의 호평을 들었다. “본격 소설 독자가 읽지는 않겠지만, 정치 개혁에 관심이 있으면서 논문이나 이론서는 어렵다고 느끼던 독자들이 반응하겠다고 하더라. 편집장 본인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면서.” 최 교수는 이 소설을 ‘스토리가 있는 팸플릿’이라고 부른다. 2월이나 3월 중에 출간을 앞두고 있다.

매체 형식은 달라졌지만 주제 의식은 같다. 소설 속 한국 사회는 기회가 봉쇄되어 좌절한 청년들이 대규모 소요를 일으키는 위기 국면이다. “승자독식 정치 구조에서 정치적 합의란 근본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대표되지 않고 배제된 자들은 늘 정치 바깥에 방치된다. 사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자신들의 크기에 비례하는 만큼 대표될 때 이 문제가 해결된다. 그런 이야기를 소설에 담았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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