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왼쪽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신세계 노동시간 단축, 엇갈린 시선

2018년 02월 01일(목) 제541호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공유하기

구글+구글+ 카카오톡카카오톡 카스카스 라인라인 밴드밴드 네이버블로그블로그 URL복사URL복사

URL 복사

아래의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하실수 있습니다.

- 신세계그룹은 계열사 노동시간을 주 35시간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이마트에서 계산·진열 등을 담당하는 ‘전문직’ 사이에는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피하려는 꼼수’라는 반발이 나온다.

“업무를 마무리할 오후 5시입니다. 30분 뒤에는 PC가 자동 로그아웃되오니, 중요 자료 저장 등 안전한 퇴근 준비 부탁드립니다. 행복한 저녁 되십시오.” 1월16일 오후 5시 서울 성수동 이마트 본사에 안내방송이 흘렀다. 사무직 직원들의 컴퓨터 모니터 화면 한가운데에 자동 종료를 알리는 ‘카운트다운’ 알림이 떴다. 담당 임원의 사전 결재 없이는 컴퓨터를 다시 켤 수 없다. 직원들이 하나둘 짐을 싸서 일어났다. “고생하셨습니다.” “들어가십시오.” 오후 5시10분 1층 로비. 목에 이마트 사원증을 건 직원들이 출입구를 우르르 빠져나갔다. 직원이 오후 5시30분 넘어서 퇴근하면 해당 부서장 인사 평가에 반영된다. 퇴근 후 카카오톡 지시도 일부 부서를 제외하면 금지된다.

신세계그룹은 올해부터 계열사 노동시간을 주 35시간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이마트, 신세계(백화점), 신세계인터내셔날 등 계열사는 1월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다. 이남곤 신세계그룹 홍보팀 치프파트너(부장)는 “2년 전 그룹 차원에서 인사제도 개선 TF를 발족했고 그 일환으로 이뤄진 일이다. 근무시간 외 시간을 확보해주자는 취지도 있지만, 노동시간이 다른 OECD 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긴데도 노동생산성은 떨어지는 구조를 바꾸자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한국 기업 문화도 결국 노동시간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가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시사IN 이명익
1월16일 오후 5시 서울 성수동 이마트 본사에서 직원들이 퇴근하고 있다. 오후 5시30분 넘어서 퇴근하면 해당 부서장 인사 평가에 반영된다.
1월16일 회사 내 어린이집에 들러 둘째를 데리고 퇴근하던 윤창호 과장(PK마켓 운영 담당)을 만났다. 노동시간 단축 이후 달라진 점을 묻자 그는 “이전에는 오전 8시30분까지 출근했고 일에 따라서 7~8시까지 야근하는 날도 많았다. 일이 늦어질 때는 아이를 먼저 집에 데려다놓고 다시 오기도 했다. 이제는 출근 시간이 오전 9시여서 30분 더 잘 수 있고, 퇴근 시간도 오후 5시로 정해져 있으니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다. 업무 집중도도 높아졌다”라고 말했다. 이수영 물류운영팀장도 “집중도가 확실히 높아졌다. 퇴근하고는 회사 내 운동시설에 다니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퇴근 후 여가 시간이 생기자 학원을 다니거나 운동이나 취미생활을 시작하는 분위기라고 직원들은 전했다.

‘업무 집중도가 높아졌다’는 평가를 직원들에게서 공통으로 들을 수 있었다. 이마트는 오전 10시~11시30분, 오후 2~4시를 ‘집중 근무시간’으로 설정해 흡연실 출입을 제한했다. 회의는 하루 전에 고지하고, 한 시간 내에 끝내며, 하루 안에 결과를 통보한다는 ‘111 시스템’을 도입했다. 오전 8시에 시작해 두세 시간을 넘기던 대표 주재 임원회의도 오전 9시에 시작해 1시간 만에 끝난다.

다만 업무와 인력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노동시간을 단축하다 보니 아직은 빠듯해하는 기류도 있다. 이 회사 직원 이 아무개씨는 “더 집중해서 근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진이 빠지기도 한다(웃음). 인력 충원이 따로 없어서 걱정이 많았는데 더 지켜봐야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전수찬 민주노총 마트산업노조 이마트지부장(왼쪽)과 김상기 한국노총 전국이마트노조 위원장(오른쪽).
지금까지는 전형적인 사무직의 노동시간 단축 이야기다. 그런데 이마트의 경우 전체 직원 약 2만8000명 가운데 사무직 직원은 약 1200명이다. 이마트 직원은 크게 사무직, 점포관리직을 포함한 ‘공통직(약 8000명)’과 전국 이마트 점포에서 계산·진열 등을 담당하는 ‘전문직(약 2만명)’으로 나뉜다. 공통직은 전문직보다 임금수준이 높고 직급별 임금 상승폭도 크다. 반면 전문직의 임금은 최근 몇 년간 최저임금 시급보다 100~300원가량 높은 수준에서 결정되어왔다. 문제는 이마트의 노동시간 단축이 공교롭게도 최저임금이 크게 오른 2018년부터 시행되었다는 점이다.

이렇다 보니 전문직 가운데서는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피하려는 회사의 꼼수’라는 반발이 나왔다. 그동안 일해온 대로 주 40시간 일할 경우 소정근로시간(노사가 일하기로 정한 시간)은 월 209시간이다. 2020년 최저임금이 시급 1만원이 된다고 가정하면 주 40시간 근무 시 최저임금은 월 209만원(시급 1만원×소정근로시간 209시간)이 된다. 그런데 주 35시간을 일하면 소정근로시간이 월 183시간으로 줄어드니, 시급 1만원일 때 받을 수 있는 월급의 최저선은 183만원이 된다. 시급이 같을 경우 노동시간이 짧을수록 월급이 줄어든다.

물론 올해 이마트 전문직 노동자들의 월급 총액이 올랐다. 노동시간이 주 35시간으로 줄었는데도 월급이 올랐으니 시급도 법정 최저시급을 웃돈다. 하지만 노동시간을 그대로 두었을 경우를 가정하면, 올해 시급은 최저임금 시급과 큰 차이가 없다. 여기에 그동안 회사가 최저임금 수준에 맞춰 임금을 올려왔던 관행을 고려하면, 2020년까지 사측이 매년 최저임금보다 훨씬 많은 월급을 줄 리 없다는 게 일부 전문직들의 의심이다.

ⓒ시사IN 이명익
임금 삭감 없는 주 35시간 체제로 전환을 발표한 이후 하루 7시간 근무를 위해 영업 종료 시간이 한 시간 앞당겨졌다. 위는 이마트 서울 성수점 매장.
이 같은 전문직들의 의심은 조직된 목소리로 표출되고 있다. 직원이 약 2만8000명인 이마트에는 노동조합이 세 개 있다. 이번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협상에 합의한 대표 교섭노조는 조합원 약 2000명인 한국노총 산하 전국이마트노동조합인데, 이 노조 조합원은 공통직 비율이 더 높다. 김상기 전국이마트노조 위원장은 “감정노동과 육체노동을 동시에 하는 유통업 노동자에게 노동시간 단축이 가장 시급하다고 보고 회사에 요구했다. 2020년에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되면 교섭을 통해 그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임금을 끌어올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조합원 약 1640명인 민주노총 산하 마트산업노조 이마트지부는 전문직 비율이 더 높다. 전수찬 마트산업노조 이마트지부장은 “대표노조와 회사가 그동안 최저임금보다 조금 높은 수준에서 임금교섭을 해온 것을 보면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이마트 영업시간을 1시간 줄였다고 하지만, 그에 따른 매출 하락은 크지 않은 반면에 노동시간 단축으로 심야수당도 사라졌고 퇴직금도 줄어드는 등 인건비를 아끼려는 의도가 짙다”라고 말했다. 이마트 사측은 “2020년에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근로시간 단축은 최저임금 인상과 무관하다”라는 입장이다.

노동시간 단축 통해 삶의 질 개선 담보돼야


노동시간 단축, 특히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계가 줄곧 추구해온 가치였다. 노동시간 단축은 분명 혜택이지만 상대적으로 저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경우, 노동시간 단축보다 ‘더 많은 임금’에 가치를 두는 경향이 있다. 포항이동점에서 캐셔(계산원)로 근무하는 박선영 마트산업노조 이마트지부 부위원장은 “연봉 5000만원인 사람에게 노동시간을 줄여주면 그걸로 문화생활이 가능하겠지만 월 백몇십만원 받는 우리에게 시간만 주면 그 시간에 우리는 알바라도 하라는 건가?”라고 말했다. 정민정 마트산업노조 사무처장은 “이미 롯데마트 노동자들도 하루 7시간 일하고 있다. 하루 7시간 근무 체제였던 홈플러스 노동자들이 이번 임금·단체협상에서 원하는 사람에 한해 하루 8시간 근무할 수 있도록 회사에 요구해 관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라고 말했다.

인력 충원 없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노동강도가 세졌다는 체감도 노동 특성상 전문직에게 더 강하게 다가오는 것으로 보인다. 캐셔의 경우 노동시간 단축으로 준비·마감 시간이 각각 15분에서 10분으로 줄었다. 하루 30분씩 두 번 부여하던 휴식시간도 20분씩 두 번으로 줄었다. 제품 진열 담당 직원 업무량도 늘었다는 주장이 나온다. 전수찬 마트산업노조 이마트지부장은 “그날그날 들어오는 기본 물량이 있는데, 오전·오후조가 공동으로 근무하는 시간대가 1시간 줄어들었다. 과거엔 3시간을 두 사람이 같이 진열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2시간 동안만 같이 진열할 수 있다. 현장 관리자들이 대놓고 ‘여사님, 이제 커피 마시러 갈 시간 없습니다’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마트 사측은 “회사는 봉사단체가 아니다. 노동시간이 줄어든 만큼 중간에 쉬는 시간도 어느 정도 줄여서 압축적으로 일하라는 것이다. 업무 자체를 줄여 효율적으로 시스템을 바꿔나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신세계그룹의 노동시간 단축 계획이 발표된 직후 노동계 내부에서도 시선이 갈렸다. 민주노총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꼼수와 노동강도 강화를 우려한 반면, 한국노총은 “진일보한 시도”(김주영 위원장)라고 평가했다. 민주노총의 이런 우려에 관해 한 민주노총 활동가는 “노동시간 단축 법 개정이 논의 중인 지금, 임금 하락을 이유로 노동시간 단축에 반대해버리면 경영계가 이용한다. 노동운동이 그간 생활임금을 외치면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삶의 질 개선은 깊이 고민하지 못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노동자들의 임금이 보전되는 방식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한 것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만 적은 노동시간으로 생계비를 충당할 수 없다면 다른 방법도 있다. 미국의 웨그먼스 푸드마켓 등 몇몇 유통업체는 노동자들이 고임금을 받으며 고품질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한다. 일하는 방식을 혁신해 노동자가 생산하는 부가가치를 높여 임금을 올릴 수 있는 여력을 노사가 같이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전체선택후 복사하여 주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