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와 미세먼지 속에서도 경기도 일산 EBS 사옥 앞은 ‘일부’ 개신교 단체와 관련 학부모 단체들의 시위로 연일 북적였다. 그들은 당근에 정성스럽게 하나하나 콘돔을 씌워 로비에 세워진 방귀대장 뿡뿡이를 향해 던졌고, ‘자위를 조장하지 말라’며 오이·바나나·당근·가지·애호박을 시위 용품으로 썼고, ‘음란 방송’을 규탄하며 드러눕고 절규했다. 어린 자녀들 몸에 ‘동성애 반대’ 피켓을 건 채 EBS 사옥 앞에 세우기도 했다. 동심을 지키겠다며 마이크를 잡은 남성 시위자는 이렇게 말했다. “동성애 하면 누가 잡아갑니까. 그냥 자기들끼리 하면 됩니다.” 거슬리니 내 눈에 띄지 말라는 말, 그 자체가 혐오이고 차별이라는 걸 그는 끝내 모른 척할 것이다.
그들은 결국 목적을 이뤘다. 지난 연말과 새해 두 차례 성 소수자 특집 방송을 했던 EBS의 ‘젠더 토크쇼’ 〈까칠남녀〉는 1월14일 은하선씨(사진)에게 하차를 통보했다. 종영까지 단 2회만 남은 시점이었다. 은씨는 〈까칠남녀〉를 통해 양성애자로 커밍아웃했다. 프로그램 시작부터 한 회도 빠짐없이 출연해왔다. 제작진의 의사에 반해 은씨의 하차를 단독 결정한 류재호 EBS CP는 이번 결정이 반동성애 시위 때문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누가 봐도 ‘그런’ 모양새였다. 참으로 ‘교육방송다운’ 행보다. ‘하면 된다’는 걸 이런 방식으로 알려줄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홍성수 교수(숙명여대 법학과)는 〈말이 칼이 될 때〉(어크로스)에서 한국 사회가 혐오 표현에 대한 사회적·정치적 대응에 사실상 실패했다고 진단한다. “영향력 있는 정치 지도자나 사회 유력 인사들, 종교계 지도자들이 혐오와 분명히 선을 긋지 않”기 때문이다. ‘영향력 있는’ 방송 또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방송법 제6조5항은 ‘방송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이익 추구의 실현에 불리한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충실히 반영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적시하고 있다.
〈까칠남녀〉의 일부 출연진은 남은 녹화를 보이콧했고, SNS에서는 은하선씨의 하차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여러 여성단체와 언론단체에서도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논평을 통해 “EBS는 하차 반대 민원에 대해서도 응답하라”고 요청했다. EBS는 지난 1년간 자신들이 만들어온 방송의 가치와 의미를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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