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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이명박’ 공감이 안 되네

2018년 01월 29일(월) 제541호
천관율 기자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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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를 ‘정치 공작’이자 ‘정치 보복’이라 비난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정부에 대한 모욕이고 사법 질서에 대한 부정’이라며 정면으로 맞받아쳤다.

1월17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했다. 대통령 재임 시절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가 좁혀오던 중이었다. 이날 회견에서 이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많은 국민들이 보수를 궤멸시키기 위한 정치 공작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 보복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튿날인 1월18일,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기자실을 찾아 문재인 대통령의 반응을 브리핑했다. 브리핑으로 소개된 문 대통령의 발언은 이렇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직접 거론하며 정치 보복 운운한 데 대해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정치 보복을 위해 검찰을 움직이는 것처럼 표현한 것은 우리 정부에 대한 모욕이며 사법 질서에 대한 부정이다.” 평소 문 대통령의 화법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분노’라는 강한 표현이 등장했다.

청와대 참모들 사이에서는 대응하지 말자는 기류가 우세했지만, 문 대통령이 이날 아침 티타임에서 브리핑을 직접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현직 대통령이 서로를 직접 겨냥하는 모양새도 감수했다.

ⓒ시사IN 이명익
1월17일 검찰 수사에 대한 불만을 성명서 형식으로 발표한 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차량에 올라 이동하고 있다.
전·현 대통령의 충돌에서 전직 대통령이 이길 방법은 많지 않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핵심 참모였다가 집권 이후 멀어진 정두언 전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소총 든 사람하고 핵·미사일 든 사람이 무슨 이전투구가 되나? 전직과 현직은 싸움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의 성향을 잘 아는 정 전 의원은, 1월17일 기자회견이 전략적 포석이 아니라 위기감과 초조함의 발로였다고 평가했다. ‘키맨’은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다. 김 전 실장은 검찰 수사에서 이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실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던 시절부터 개인 비서로 근접 보좌해온 인물이다. 2012년 저축은행 비리 혐의로 1년3개월 형을 받고 항소를 포기했다. 당시 임기 막판이던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기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퇴임 직전이던 2013년 2월 사면에서 최시중·천신일 등 거물 측근은 챙기면서 집사 격인 김희중 전 실장을 제외했다. 김 전 실장이 복역 중이던 2013년 9월에는 부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도 일어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조화도 보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통령의 금전 출납 내역을 훤히 알고, 동시에 이 전 대통령에게 한이 있을 법한 인물이 김 전 실장이다. 정두언 전 의원은 “김 전 실장이 검찰에 불려갔다가 구속되지 않고 나오자 이 전 대통령 주변은 급박하게 돌아갔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보수 궤멸”과 “노무현” 등 격한 반응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고 정 전 의원은 보았다. 초조한 탓에 메시지가 거칠게 나왔다는 얘기다.

ⓒ연합뉴스
1월13일 김희중 전 대통령 제1부속실장이 이명박 정부 국정원 특수활동비와 관련한 조사를 받고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그런가 하면 1월17일 기자회견을 일종의 ‘경고’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이 전 대통령 주변에서는 “우리라고 깔 게 없겠나”라는 말도 나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전 검찰 수사 기록(이른바 ‘640만 달러 뇌물수수설’)이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이 외에도 노무현 정부가 남겨둔 활자 및 영상 기록물 중에서 민감하고 여론 폭발력이 큰 기록을 ‘보험용’으로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경고’ 가설에 대해 여권에서는 시큰둥한 기류가 강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력 정치인으로 떠오른 것이 2012년부터인데,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문 대통령을 재기 불능으로 만들 ‘확실한 한 방’을 갖고 있었다면 지금까지 쓰지 않았을 리가 있느냐는 취지다. 더욱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친노무현 그룹이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원한과 분노를 누구보다 잘 아는 처지다. 확실한 카드가 있었다면 아껴뒀을 이유가 없다. 어정쩡한 카드라면 상황 반전은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타깃이 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미 고인이다.

그래서 1월17일 기자회견을 읽는 제3의 해석도 있다. ‘보수 결집 시도’다. 기자회견문에는 “보수 궤멸”이라는 표현이 들어갔고, “노무현” 역시 보수층의 진영 감정을 자극하는 키워드다.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을 핍박받는 피해자 자리로, 현 정부를 정치 보복을 자행하는 무소불위 권력의 자리로 가져다놓으려고 한다. 이 구도가 잡히기만 하면 여론전에서 청와대에 부담을 지울 수 있다.

검찰 과잉 충성이 오히려 위험 요소


그런데 신통찮다. “보수 궤멸”을 외쳐도 진영 구도가 복원될 기미가 없다. “정치 보복”을 외쳐도 ‘피해자 이명박’에 대한 여론의 감정이입이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여론은 오히려 이 전 대통령을 정치 보복성 검찰 수사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최종 책임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피해자로 감정이입하기 쉬운 대상은 아니다. 여론조사와 분석 전문가인 정한울 박사(정치학)는 “자유한국당 탓도 크다”라고 말했다. “마치 모든 잘못은 박 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했다는 양, 자기들은 책임이 없다는 듯 탄핵 이후로는 반성도 쇄신도 생략해버렸다. 이러면 문재인 정부가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보수로 가기가 무척 꺼려진다.” 지금 자유한국당은 국회 의석수만 제외하면 민주화 이후 가장 취약한 제1야당이다. 이 취약함이 이 전 대통령이 원하는 진영 구도의 복원을 가로막고 있다.

청와대는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볼 뿐 청와대가 개입할 문제는 아니라는 태도다. 문 대통령의 ‘분노’ 역시 “노무현” 언급에 대한 분노보다도, 사법 질서를 부정하는 태도에 대한 분노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사적 관계보다도 공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분노로 읽어달라는 취지다. 전임 정권의 적폐 청산은 촛불이 명령한 시대의 과제이므로 회피할 수 없다는 것이 청와대의 기본 인식이다. 간명한 일차방정식처럼 보인다.

잠재적 위험 요소는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있었던 한 인사는 자신들의 경험이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며 이야기를 들려줬다. “2009년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신 소식은 당시 청와대 사람들에게도 굉장한 충격이었다. 민정수석실에서는 검찰의 과속을 제어 못해서 이런 비극이 벌어졌다는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검찰이 주도하는 이슈를 너무 오래 끌고 가는 것은 어떤 정부에게든 위험하다. 검찰의 주도권이 커지면 커질수록, 과잉 충성으로 정부를 곤란에 빠트리든 아예 직접 정부를 치든, 검찰은 정부 방침과 무관하게 조직 보위의 논리로 쏠리게 된다. 칼은 쓸 힘이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멈출 힘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연합뉴스
2009년 5월29일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상주를 맡은 문재인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 둘이 연이어 검찰 수사 대상이 되면서, 검찰이 주도하는 정국이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다. 사정 정국의 특성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이 과정에서 ‘검찰 리스크’라는 보이지 않는 비용이 누적되는 것까지 막기는 어렵다. 이 비용도 계산에 넣어야 국정 운영에서 오차를 최소화할 수 있는 국면이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굵직한 검찰 개혁 과제를 앞두고 검찰 내부의 동요와 ‘반격’이 예상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적폐 청산과 검찰 개혁은 별개 과제에 가까웠지만, 점점 더 이차방정식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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