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 폐쇄도 살아 있는 옵션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한마디가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1월16일 tbs 라디오에 출연한 김 부총리는 가상통화 투기 열풍에 대한 대응책을 설명하며 “거래소 폐쇄”를 언급했다. 거래소 폐쇄에 대한 후폭풍(음성적 거래 확대, 해외 거래소 이용에 따른 국부 유출 논란 등)에도 폐쇄 카드를 감추지 않았다.

김 부총리는 다음 날 ‘가상통화 국제가격 폭락의 주범’으로까지 몰렸다. 1월15일 1비트코인(BTC)당 1만4000달러대를 유지하던 가격은 1월16일 1만194.9달러까지 폭락했다(코인마켓캡 기준). 중국발 규제 강화(중국 내 개인 간 가상통화 거래 금지), 미국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가상통화 선물 만기일(1월17일) 도래 등 다양한 악재가 겹쳤다. 여기에 한국 정부의 시장규제 움직임도 폭락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한국 정부의 정책적 움직임이 전 세계 가상통화 거래 시장에 영향을 미칠 만큼, 한국 시장의 존재감이 크다는 걸 증명했다. 가상통화 정보 사이트인 코인힐스(Coinhills)에 따르면, 1월19일 오후 2시 현재 지난 1일 동안 원화로 거래된 비트코인 총거래량은 약 6만720비트코인에 달한다. 전체 약 56만 비트코인 가운데 10.7%가 원화로 결제됐다는 의미다. 엔화(46.9%), 달러화(30.4%)에 이어 원화가 가상통화 거래량 기준 세계 3위 통화인 셈이다.

ⓒ시사IN 신선영서울 중구의 한 가상통화 거래소.
원화 결제 대부분은 국내 거래소에서 이뤄진다. 가상통화 정보 사이트인 코인마켓캡(Coinmarketcap)에 따르면, 1월19일 오후 2시 기준 전 세계에서 가장 거래량이 많은 거래소 1·2위가 국내 거래소인 업비트와 빗썸이다. 두 업체의 일일 거래량(1월19일 오후 2시 기준 24시간 거래량)은 각각 56억 달러, 45억 달러에 이른다. 코인원(7억 달러)과 코빗(3억 달러)까지 고려하면 국내 상위 4개 거래소가 하루 약 12조원 규모의 돈을 처리하는 셈이다.

여기에 ‘김치 프리미엄(코리아 프리미엄)’으로 불리는 한국 시장 이상 과열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해외 거래소 가격에 비해 국내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가상통화의 가격이 높게 책정된 현상(1월3주차 기준 통상 20~40%)을 뜻한다. 외환거래법상 개인의 재정 거래(해외에서 비트코인을 싸게 구입해 국내에 팔아 차익을 남기는 거래)에 한계가 있고, 국내 수요가 과열되면서 한국 시장과 거래소는 ‘큰손’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신규 계좌 발급이 막혀 있는데도 이 정도 규모다. 지난해 12월28일 금융위원회는 시중은행에게 가상통화 거래소에 대한 가상계좌 신규 발급을 중단시켰다. 은행권을 통해 우회적으로 신규 투기 수요를 억제한 것이다. 각 거래소도 현재 신규 회원의 계좌 개설을 중단하고(회원 가입은 받되 본인 인증 단계나 은행 계좌 연동 단계를 막음), 기존 회원을 대상으로만 거래를 진행하고 있다.

추후 가상통화 거래에 대한 정부의 규제안은 이들 거래소를 대상으로 할 가능성이 높다. 가상통화 시장을 증권시장에 대입해보면, 가상통화 거래소는 그 자체로 거래가 이뤄지는 공간(증권 거래소)이자 매매중개업(증권사)의 성격을 함께 띤다. 가상통화 광풍 속에서 거래 수요에 비례해 매출이 오르는 유일한 업계가 거래소인 만큼, 거래소 규제 없이는 투기 열풍을 잠재우기 어렵다. 1월2일 유진투자증권의 발표에 따르면 업비트와 빗썸의 일평균 수수료 수익은 각각 36억원, 26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연합뉴스1월16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거래소 폐쇄도 살아 있는 옵션이다”라고 말했다(위).
거래소가 큰돈을 벌고 있고 투기 수요가 몰리는 ‘현장’이라서 논란의 중심에 선 것만은 아니다. 제도가 기술 발전을 따라잡지 못하면서 국내 거래소를 둘러싸고 여러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먼저 거래소는 법적 지위부터 모호하다. 가상통화에 대한 법적 규정이 없다 보니 거래소 역시 전자상거래법상 통신판매업자로 등록되어 있다. 금융위원회가 신규 유입을 틀어막기 위해 거래소를 직접 규제하지 않고 시중은행을 규제한 것도 이 때문이다. 법적으로 가상통화는 화폐가 아니다. 거래소도 금융업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현행법상 금융위원회가 거래소를 제재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법적 모호함은 거래소와 이용자 사이 다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법률로 거래 원칙이 정해진 게 아니라 거래소의 ‘약관’에 따라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약관에 위법 요소가 있는지 조사 중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1월17일 CBS 라디오에서 “전자상거래법상으로 가상통화 거래소를 폐쇄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거래 상대방의 출금을 제한하거나 과도한 면책 규정을 두는 등 약관법을 위반한 혐의가 있는지는 조사 중이다”라고 말했다.

법적 지위 모호한 가상통화 거래소

거래소 업계에서는 법적 지위를 확보해 제도권으로 들어가기를 바란다. 업계 처지에서는 규제를 받더라도 가상통화 자체를 공인받고 시장을 키우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실 거래소의 난립을 막는 효과도 있다. 반면 투기를 막아야 하는 정부 처지에서 가상통화를 섣불리 공인하는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 지난해 거래소에 대해 정부 차원의 대응이 늦어졌던 것도 정부가 가상통화를 법적으로 규정하는 순간 가상통화를 인정하는 역설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거래소의 보안 문제도 논란이 한창이다. 비트코인의 기반이 되는 블록체인 시스템은 거래 원장(장부)이 전 세계로 분산되어 기록되기 때문에 단일 서버에 거래 기록이 남는 기존 시스템보다 보안성이 상대적으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반인의 거래를 중개하고, 거래대금을 일시 보관하는 거래소는 개별 서버에 불과하다. 이용자와 블록체인 사이에 거래소라는 중간지대가 놓여 있는데, 이 중간지대는 얼마든지 해킹에 노출될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4월 국내 중소 거래소인 야피존은 사이버 공격에 의해 약 3831비트코인(당시 원화 환산 시 약 55억원)를 잃기도 했다. 이후 야피존은 ‘유빗’으로 사명을 바꿔 운영하다 지난해 12월19일 2차 해킹 피해를 입으며 끝내 파산했다. 국내 2위 업체인 빗썸 역시 지난해 6월 직원 PC가 해킹당해 3만1000여 명의 고객 정보가 유출되기도 했다.

잦은 서버 접속 장애는 이용자와 거래소 간 주요 다툼의 원인이다. 가상통화 가격이 급등하거나 급락할 때, 매수-매도 주문이 몰려 거래소 서버가 접속 장애를 일으켜 이용자들이 손해를 보았다. 실제로 비트코인 가격이 급락했던 지난해 11월12일 빗썸 거래소 접속 장애로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하는 일부 이용자들이 거래소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국내 가상통화 거래소에 대한 다양한 논란을 해결하려면 결국 입법이 수반되어야 한다. 1월18일 국회 정무위에 출석한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가상통화 거래소 문을 닫게 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필요한데, 관계 부처 협의를 통해 확정하겠다”라고 말했다. 폐쇄라는 극단적 방법에도 ‘법’이 필요한 만큼 정부가 가상통화와 거래소의 법적 지위를 만드는 것은 필연적인 순서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여론 반발이 큰 거래소 전면 폐지보다는 거래소 인가제나 등록제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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