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의 분기점에는 언제나 ‘하이테크’가 자리 잡고 있어. 돌도끼를 들고 “우가우가” 하던 사람들 눈에 별안간 빛나는 청동검을 휘두르는 이들이 어떻게 보였을지 생각해보렴.

중국은 세계사적인 하이테크를 여럿 보유했던 나라야.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개막식 연출을 맡았던 장이머우 감독은 중국의 4대 발명품, 즉 종이·나침반·인쇄술·화약을 개막식 공연 주제로 삼아 화제가 된 바 있단다. 이 발명품들이 세계 역사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말하자면 그야말로 1000일의 밤이 필요할 것 같아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특히 외국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인 발명품은 화약이었어. 중국에서 화약 무기 사용법을 배운 몽골인들이 서방 원정에서 써먹은 이래 화약 무기는 세계적 하이테크로 각광받게 되지.

ⓒ영천뉴스24경북 영천시는 2012년 최무선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최무선과학관을 개관했다.

고려 말, 가장 큰 골칫거리는 왜구(倭寇)였어. 이들은 단순한 도둑떼가 아니었거든. 고려의 조운선, 즉 세곡 나르는 배를 습격하고 교통로를 장악하여 수도 개경의 신하들 월급을 못 주는 파국을 만들기도 했고, 남해안 일대는 물론이고 평안북도나 함흥 등 동해안 북부까지 휩쓸고 심지어는 아예 내륙으로 들어와 설치고 다니는 준군사 집단이었어. 최영·이성계 등 몇몇 용장이 분투했지만 승전보다는 패전 소식이 훨씬 더 많았고, 특히 수군(水軍)은 참혹할 지경이었어. 더 많은 함선을 가지고도 왜구들에게 탈탈 털리는 일이 수시로 일어났으니까.

고려 조정은 왜구를 무찌르기 위한 최선의 방안으로 화약을 생각해낸다. 고려는 새로이 대륙의 주인이 된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 화약을 좀 달라고 간청하게 돼. 이에 대한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반응을 들어보자. “고려에서 화약을 요청해왔다니 좋은 일이다. 고려 왕에게 편지를 보내라. 고려에서 초(硝) 50만 근을 수집해 모으고 유황 10만 근을 구해서 가져오라고. 그러면 우리가 그 재료들로 화약을 만들어 고려로 보내줄 것이다.” 훗날 조선 시대에도 유황은 수입에 의지했으니 고려에 유황 10만 근이 있을 리 없었어. 즉 주원장은 약을 올린 거야. 요즘 식으로 하자면 나일론 옷 좀 원조해달라고 하니 “석유를 보내주면 그걸로 만들어 보내주겠다”라고 한 셈이야.

이 어이없는 상황 속에서 화약에 대한 집념을 불태운 사람이 있었다. 너도 그 이름을 익히 아는 최무선이야.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최무선의 기록을 보면 그는 젊어서 항상 이렇게 되뇌었다고 해. “왜구를 물리치는 데에는 화약만 한 것이 없는데 우리나라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 최무선의 아버지는 국가의 창고인 광흥창의 관리를 지낸 바 있어. 남쪽 지방의 세곡이 왜구에 의해 끊겼을 때 심각한 위기 상황을 체감할 수 있었다는 얘기지. 화약의 필요성을 절감한 사람들은 많았어. 그러니 명나라에 화약과 무기 좀 주십사 빌기도 했겠지. 그러나 화약을 만들어보겠다고 나선 건 최무선뿐이었어.

일단 최무선은 외국어에 능통했던 것 같아. 〈조선왕조실록〉에는 최무선이 중국에까지 들어가 화포를 연구해왔다는 기록이 나오고 다른 기록에는 “중국 강남(江南)에서 오는 상인이 있으면 곧 만나보고 화약 만드는 법을 물었다”라고 나와 있으니까 그의 열정과 능력을 짐작할 수 있을 거야. 누구든 화약에 관해 아는 체를 하면 즉시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먹이고 입히며 수십 일을 보냈다고 해. 나랏돈으로? 아니, 자기 재물로.

돈 들이고 노력 쏟고 죽을 고비 넘기며

ⓒ연합뉴스고려 말, 최무선은 화약과 화약을 이용한 무기를 최초로 만들었다.
최무선의 핵심 관심사는 염초였어. 화약의 재료인 목탄과 유황은 어떻게든 구할 수 있었지만 그 주재료라 할 염초, 즉 질산칼륨을 만드는 법과 배합 비율은 도무지 풀 수 없는 수수께끼였거든. 염초 제조법을 안다는 이원이라는 중국인 상인이 벽란도(고려 수도 개경 근처 무역항)에 왔다는 소문이 들리자 그는 끈질기게 이원을 잡고 늘어진다. 염초 제조법은 국가적 비밀로 관리했고 그걸 외국인에게 가르쳐주는 건 그 나라의 법을 어기는 것이었지. 이원은 최무선에게 지고 말았어. 아마도 최무선은 실록에 실렸던 말을 반복하지 않았을까? “왜구들이 저렇게 극성인데 막을 방법은 화약밖에 없고 고려에는 이를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대인.” 이원은 물었겠지. “고려 조정에서 이 일을 하라고 시켰소?” 아마 거기서 최무선은 더듬거렸을 거야. “그…그건 아니오.” 이원은 최무선을 요모조모 뜯어보지 않았을까? 대체 이 사람은 무엇 때문에 이럴까 하고.

마침내 최무선은 화약을 만들어내지만 벽은 또 있었어. “대강 요령을 얻은 뒤, 도당(都堂)에 말하여 시험해보자고 하였으나, 모두 믿지 않고 무선을 속이는 자라 하고 험담까지 하였다(〈조선왕조실록〉).” 자기 돈 들이고 노력 쏟고 죽을 고비도 넘기면서(최무선은 화약 재료를 가마솥에 넣고 굽는 위험천만한 실험도 했어) 뭔가 만들어냈더니 “그게 말이 되느냐”는 둥 “포상을 노린 사기꾼”이라는 둥 비난이 쏟아졌다는 얘기야.

최무선은 피를 토하듯 고관들에게 통사정을 하고 시범도 보여주었을 거야. 퇴짜 맞으면, 내가 왜 이런 짓을 하고 다니나 탄식도 했을 거야. 그래도 최무선은 포기하지 않았어.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최무선이 만들었다는 무기들을 기나길게 언급하고 있다. ‘대장군포(大將軍砲)·이장군포(二將軍砲)·삼장군포(三將軍砲)·육화석포(六花石砲)·화포(火砲)·신포(信砲)·화통(火㷁)·화전(火箭)·철령전(鐵翎箭)·피령전(皮翎箭)·질려포(蒺藜砲)·철탄자(鐵彈子)·천산오룡전(穿山五龍箭)·유화(流火)·주화(走火)·촉천화(觸天火)….’ 단순히 화약과 대포를 만든 정도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때와 장소에 따라, 상대하는 적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는 화약 무기 편제를 만들었다는 뜻이야.

1380년 전라도 진포에 왜구 함대 무려 500척이 들이닥쳤을 때 최무선은 부원수로 출진한다. 허구한 날 왜구에 농락당하던 고려 수군 함대는 자신들을 발바닥의 때 이상은 쳐주지 않던 왜구들의 배를 삽시간에 불쏘시개로 만들어버렸다. 왜구들에게 전 국토가 유린당한 이래 바다에서 거둔 최대의 승리였어. 이후 남해 관음포 해전에서도 왜구들은 최무선의 화포에 몰살당했고 왜구들의 기세는 결정적으로 꺾이게 돼.

역사책 속에서는 “이런 게 있으면 참 좋겠는데 어떻게 할 도리가 없네” 하는 한탄들이 빗자루로 쓸어낼 만큼 많이 등장한다. “그걸 알면 뭐라도 해봐야지!” 하면서 소매 걷어붙이는 사람들은 그 10분의 1도 되지 않아. 또 소매를 걷어붙였으되 난관에 부딪혀서는 “에이 내가 뭘 한다고” 포기하는 사람이 또 십중팔구다. 끝내 집념과 의지로 자신의 꿈을 이루는 이는 참으로 드물지. 넓디넓은 사막 속 사금 알갱이 하나 정도랄까.

역사는 그들이 내뿜는 집념의 광채에 곧잘 눈이 먼단다. 최무선이 개척한 화약 무기 체계가 조선 전기에 개량을 거쳐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의 수군 함대가 일본의 수군 함대를 압도적으로 쳐부수는 근간이 됐다면 이해하겠니? 물론 이 모두를 최무선 개인의 공으로 돌릴 수는 없겠지. 하지만 아빠는 생각한다. ‘화약에 미쳤던’ 최무선이 없었다면 결코 이뤄지지 않았을 일이라고 말이야. 우리는 평소에 “당신이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냐?”라는 힐난 반 농담 반의 질문을 즐겨 던지고 살지. 그런 말을 들을 때 최무선은 싱긋 웃으며 대답할지도 몰라. “당신이 아무것도 안 하면 세상은 언제 바뀌나? 뭐라도 해야지.”

기자명 김형민(SBS Biz 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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