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오래된 건물과 마주치면 그 앞에 잠시 서서 가만히 올려다보곤 한다. ‘이 건물은 어떤 기구한 운명을 지니고 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곳을 거쳐 갔을까’ 하고 생각해보는데, 건물 모습이 초라할수록 쓸쓸한 마음은 커진다. ‘근대 건축’이라 불리는 이 건물들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그리고 개발 논리에 따라 대부분 사라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서울·군산·목포·대구·부산 등지에는 그래도 꽤 남아 있다.

최근 들어 ‘역사적 의미’가 깃든 근대 건축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자칫 철거될 위기에 처했던 근대 건축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한다. 역사 교육의 장으로 이용되는가 하면, 원래 형태를 일부 보존하는 방식으로 리모델링해 공공건물로 사용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근대 건축의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현상이라는 점에서 무척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경성의 건축가들〉 김소연 지음, 루아크 펴냄

아쉬운 부분은 있다. 근대 건축의 역사성이나 건물 구조에 관한 이야기는 많지만 그 건물을 설계하거나 시공했던 건축가에 관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는 점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경성의 건축가들〉은 꽤 의미 있는 시도였다. 동경제국대학을 나와 총독부에서 근무한 당시 건축계의 실세이자 주류였던 일본인 건축가가 아닌, 조선인 건축가와 비주류 외국인 건축가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복원해냈기 때문이다.

일제가 세운 학교에서 건축을 배웠던 조선인 건축가들, 또는 꿈을 좇아 조선으로 온 외국인 건축가들은 수많은 차별과 편견을 어떻게 극복해냈을까? 일제의 지배와 수탈을 위한 건물을 짓는 일과 건축에 대한 이상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줄여나갔을까?

시대를 풍미했던 혹은 그러지 못하고 안타깝게 저물었던 일제강점기 건축가들의 삶과 그들이 남긴 건축물이라는 유산을 이제 한 번쯤 되돌아봤으면 좋겠다.

기자명 천경호 (루아크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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