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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책

2018년 02월 07일(수) 제542호
시사IN 편집국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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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의 틈새에서
김시종 지음, 윤여일 옮김, 돌베개 펴냄

“어떻게 사고해야 재일을 산다는 것의 의미에 다다르는가. 무엇보다 나는 왜 재일 조선인인가.”

1949년 스무 살 김시종은 옷가지와 50전 지폐를 지닌 채 제주에서 일본으로 향하는 밀항선에 올랐다. 남로당에 몸담고 제주 4·3에 참여한 까닭에 ‘빨갱이’가 된 그는 다시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일본에서도 사회주의 운동을 적극적으로 이어갔지만 김일성 우상화에 반발하면서 결국 조총련과도 불화한다. 남한과 북한, 일본에도 속할 수 없었던 그는 그저 쓰고, 말했다.
책은 1973년부터 재일 외국인 최초의 공립학교 교사로서 15년간 일본 학교에서 조선어를 가르치는 시기에 쓴 평론과 에세이다. 그의 글에는 경계인이면서 경계를 넘는 여러 사상과 인물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재일의 틈새’에서 응축된 통찰이 문장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발상
이리스 되링·베티나 미텔슈트라스 지음, 김현정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정신적 준비와 새로운 자극의 우연한 만남을 의도적으로 발생시킬 수 있을까? 예스.”

세균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은 실수로 배양접시를 세척하지 않았다가 페니실린을 발견했다. 이 장면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살린 우연으로 손꼽힌다. 깨달음의 순간은 너무나 종잡을 수 없이 찾아와서 오로지 우연에 맡길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렇지 않다고 이 책은 말한다. 광고 커뮤니케이션과 저널리즘 영역에서 일하는 두 저자는, 인간의 뇌에서 번쩍 하고 창의적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 흔히 ‘유레카 모먼트’라고 부르는 그 결정적 장면에 매혹되었다. 책의 부제인 ‘스치는 생각은 어떻게 영감이 되는가’야말로 저자들이 해결하고자 하는 질문이고, 무기는 저자들의 영감이 아니라 뇌과학과 심리학이다. 스쳐가는 엉뚱한 단서를 위대한 깨달음으로 바꾸는 힘은 우연이 아니라 우리 뇌의 준비에 달려 있다.



거실의 사자
애비게일 터커 지음, 이다희 옮김, 마티 펴냄

“고양이는 지구 전체를 발치에 무릎 꿇린 조그만 정복자이다.”
 

과감한 표지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제목이나 저자 이름 같은 정보 값이 하나도 없다. 제목은 책등으로 밀려났고, 표지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독자를 쏘아보고 있다. 원서와 비교해봐도 압도적인 디자인이며, 책의 내용을 완벽하게 이미지화했다.
과학 저술가인 저자는 자신이 기르는 이기적이고 식탐 많은 고양이 ‘치토스’에게 헌신하는 스스로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그날 이후 고양이와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기 시작한다. ‘고양이의 용도’라는 파일까지 만들어 사례를 수집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고양이는 실용성을 초월하는 존재라는 것.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밖에도 고양이에 대한 흥미로운 과학적 사실로 가득한 책이다.



장자, 제자백가를 소요하다
정용선 지음, 빈빈책방 펴냄

“장자는 세상이라는 텍스트의 실상을 보려는 사유라고 볼 수 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에 만개한 제자백가의 핵심적 사상들과 더불어 <장자(莊子)>에 대한 이해를 강의식으로 풀어냈다.
제자백가의 사상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무위(無爲)’와 ‘유위(有爲)’의 변증법이다. 본성에 따르는 무위로 향할수록 인간과 자연을 선(善)으로 보고 자연과 가까워지려 한다. 맹자의 왕도 사상이나 노자의 자연주의가 그것이다. 그 반대인 유위로 향할수록 인간과 자연을 악(惡)으로 보고 개조하거나 통제하려 한다.
장자는 그런 상황에서 등장한다. 자크 데리다의 말처럼 세상이 하나의 텍스트라면 장자는 텍스트의 이런저런 해석이 아니라 ‘텍스트의 실상’을 본다는 면에서 우리에게 ‘철학하기(to philosophize)’를 보여준 사상가로 자리매김한다.



짐승
신원섭 지음, 황금가지 펴냄

“아무리 근육을 키우고 강해 보이려 애써도 소용없어. 넌 세상에서 제일 나약한 새끼라고.”


‘편의점 알바’가 자신의 반지하 자취방에서 처음 보는 여성의 시체를 발견하고, 그다음부터 서로 연관성을 알 수 없는 인물들이 미친 듯 뛰고 싸우고 흉계를 꾸미다가 어느덧 믿기 힘든 진실에 도달하게 된다.
간만에 가책 없이 추천할 수 있는 ‘한국산’ 장르 소설이 나왔다. 돌발적 수수께끼로 출발하지만 합리적 해결이 제시된다는 점에서 미스터리로서의 합격선을 거뜬히 넘었다. 쉬지 않고 깔아놓은 복선을 끝끝내 빠짐없이 회수하는 솜씨도 깔끔하다. 각 장의 주인공으로 다른 인물들을 등장시키는 구성은 장르 소설에서 드물지 않은 형식이지만, 그 형식의 합리성을 내용으로 입증한다는 것이 장점이다. 공감 가는 캐릭터가 단 한 명도 없지만 거부감 없이 빠르게 읽힌다는 것도 간만에 느끼는 기쁨이다.



얼굴
연상호 지음, 세미콜론 펴냄

“오직 악한 의지로 움직이는 인간, 그들의 우울한 복음.”


연상호 감독은 인간의 ‘악한 의지’를 파고드는 연출가다. 선한 의지는 찾아볼 수 없고, 악한 의지와 악한 의지가 서로 부딪쳐 갈등을 만들어낸다. 주인공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위선이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와중에 캐릭터들의 민낯이 드러나고 불편한 진실을 알려준다.
<돼지의 왕> <사이비> 같은 애니메이션이 연 감독의 이런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1100만 관객을 모은 <부산행>은 조금 결이 다른 작품으로, 블록버스터 영화여서 그런지 대중성을 의식해 선한 의지를 강조했다. 그래픽노블 <얼굴>은 연 감독 특유의 착잡하고 씁쓸한 뒷맛을 느끼게 한다. 우리 중 누구도 선하지 않으며 선한 사람은 그저 희생양이 될 뿐이라는 ‘우울한 복음’을 설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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