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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 비용’이 준 깨달음

2018년 02월 07일(수) 제542호
김소희 (학부모·칼럼니스트)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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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들은 교육부가 학부모들의 불안과 기대를 잘 아울러야 정책이 착근할 수 있다고 충고한다. 하지만 역으로 정책이 자리를 잡아야 불안도 줄고 기대도 충족된다.

아이가 다섯 살 때 유치원 마칠 시간에 데리러 가면 징징대며 영어 수업 교실로 가던 아이들이 보였다. 본 수업은 설렁설렁 해서 쉽지만 추가비용을 내는 방과후 수업은 ‘학부모 니즈’에 맞추느라 수준이 꽤 높다고 원장 선생님이 설명하셨다. 난 당시 막 나오기 시작한 ‘세이펜(단어나 그림 등에 갖다 대면 읽어주는 두꺼운 펜 모양의 도구)’을 구입했다가 본전은커녕 진을 뺀 터였다. 유치원을 통해 할인 구입한 고가의 세이펜은 마법의 방망이 같았다. 영어를 처음 접하는 아이가 즐겁게 하리라 여겼다. 꿈이었다. 내가 참을성이 없나 자책도 해보았지만, 그 펜으로 그림을 찍어가며 성실히 공부하는 ‘그림 같은 장면’을 연출한 아이는 주변에 한 명도 없었다. 첫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는 학부모는 참으로 ‘낚이기’ 좋은 상대이다.

ⓒ김보경 그림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학교 방과후 영어 수업을 신청했다. 딱딱한 책걸상에 앉아 몇 시간씩 수업하는 것만도 힘든데 친한 친구들이 놀 때 자기만 영어 수업하러 가는 걸 아이는 못내 억울해하고 힘들어했다. 두어 달 다니다 흐지부지했다. 이웃 학부모가 “학원이건 방과후건 아무것도 안 하건 어차피 5학년 되면 잘하는 애는 따로 있다”라고 말했다. “어떤 애요?” 반색하니 대답은 “똑똑한 애”였다. 풀썩. 속은 쓰리지만 일면 맞는 말이었다. 학교 공개수업 영어 시간을 참관해본 학부모라면 알 것이다. 성격 좋고 활달한 아이들이 수업에도 잘 참여한다. 실력 편차와 상관없이 꽤 재미있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교과서 출판사가 온라인으로 무료 제공하는 동영상 학습 자료도 훌륭하다. 

부모의 착각 “우리 아이는 영어를 좋아해요”  

유아기 자녀를 둔 부모 가운데 “우리 아이는 영어를 정말 좋아해요”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영어가 아니라 부모를 좋아하는 거다. 그래야 부모가 기뻐하니까. 영어 애니메이션을 특히 좋아한다고? 다른 거 안 틀어주니까 그거라도 보고 싶은 거다. 학령기에 들어서면 “애가 자기도 영어 학원 보내달라고 한다”라며 자발성을 강조하는 분들이 있다. 착각이다. 다른 거 시킬까봐 그러는 거다. 태권도·피아노·미술 ‘3종 세트’는 물론이고 바둑이니 한자니 줄넘기니 급수까지 착착 따 안겨주는 학원 수업이 널렸다. ‘뺑뺑이 도는’ 것보다 ‘단가 센 영어 하나’ 다니는 게 편하다는 것 정도는 아이들도 안다.

학부모들이 영어 교육과 관련해서는 유독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 같다. 취학 전 영어 학습은 통계도 말해주지만 내 경험에도 별무소용이다. 다섯 살 때 열 달 할 공부를 열 살에는 열흘이면 한다. 머리가 여문 덕이다. 3월부터 시행되는 초등 1, 2학년 방과후 영어 수업 금지에 대해 영어 학원 보낼 형편이 안 되는 사람은 어찌하냐는 항변도 있다. 주로 더 어린 연령대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우려다. 키워보니 꼭 그렇지는 않다고 조심스레 말하고 싶다. 학교 방과후 영어 수업은 정원이 덜 차는 경우가 많다. 실수요자가 적다. 저학년일수록 학년 말까지 계속 가는 비율은 현저히 떨어진다. 학원처럼 레벨 상승 효과를 ‘포장’해주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그 시기에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서다.

전문가들은 교육부가 학부모들의 불안과 기대를 잘 아울러야 정책이 착근할 수 있다고 충고한다. 나는 오히려 정책이 자리를 잡아야 불안도 줄고 기대도 충족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 영어 교육은 욕망의 영역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무수한 ‘삽질 비용’을 지불하고 깨닫는다. 이럴수록 공교육이 중심을 잡아주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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