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1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뤄첸첸 박사는 중국의 SNS 웨이보에 긴 글을 올렸다. 12년 전 베이징 항공항천대학 박사과정 당시 지도교수인 천샤오우가 성폭행을 시도했다는 피해 경험을 털어놓았다. 뤄 씨는 그동안 피해 사실을 묻어둔 채 우울증과 환청 등에 시달렸다.

지난해 10월 뤄 씨는 지식 공유 플랫폼인 즈후(知乎)에서 같은 학교, 같은 교수한테 비슷한 일을 겪은 한 학생이 올린 익명 글을 보았다. 그는 용기를 내어 자신의 경험을 댓글로 적었다.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 학생들의 사례와 증거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 후 미국에서 커진 미투(me too) 운동에 힘입어 해시태그 #WoYeShi(워예스·我也是:‘나도 그래’라는 뜻)를 달았다. 그녀가 올린 이 글은 첫날부터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공분을 일으켰다.

파장이 커지자 베이징 항공항천대학은 1월11일 천샤오우 교수를 파면했다. 1월14일 교육부는 천샤오우의 장강학자(長江學者) 지위를 박탈했다. 장강학자상은 중국 교육부가 매년 국내외 학자 50명에게 주는 중국 내 최고 영예의 상이다. 교육부는 그에게 준 상금 역시 회수하겠다고 밝혔다. 1월16일 교육부는 언론 브리핑 자리에서 고등교육기관의 성폭력 예방을 위해 장기적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뤄첸첸은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교육부의 발표에 놀랐고, 국가가 이러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에 고무되었다”라고 말했다.
 

ⓒSCMP 갈무리중국에서도 성추행·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me too)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미투 운동은 다른 대학으로 확산되었다. 또 다른 피해 학생이 익명으로 대외경제무역대학 쉐웬 교수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했다. 글쓴이는 “뤄 씨의 용기와 베이징 항공항천대학의 적극적인 대응이 용기를 주었다”라고 밝혔다. 대학 측은 해외에서 열린 학회에 참여 중인 쉐웬 교수를 소환해 조사했다.

뤄 씨의 용기가 일으킨 바람은 과거 피해 사실 폭로에만 그치지 않았다. 대학 내에서 성추행·성폭력 예방을 위한 광범위한 연대 운동이 일어났다. 1월2일 한 학생이 시안 외국어대학 왕쥔저 총장에게 성폭력 근절 대책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후 각 지역 학생들과 졸업생들이 편지 보내기 운동을 벌였다. 1월20일까지 전국 74개 학교 8000여 명이 이 활동에 참여했다.

중국 정부, 미투 운동 확산될까 긍긍

편지 보내기 운동에 대학도 응답했다. 지난 1월7일 다롄 외국어대학 학생들이 학교 측에 편지를 전달했다. 당일 리우훙총장은 학생을 초청해 의견을 들었다. 학생들은 ‘교내의 모든 교직원들에게 성폭력 예방 교육을 실시할 것’ ‘우편·전화·이메일 등을 통해 성폭력 신고를 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할 것’ ‘성폭력 관련 업무를 담당할 부서를 확정 짓고 담당자를 명확히 할 것’ 등을 요구했다. 푸단 대학, 베이징 임업대학, 선양 사범대학 등도 성폭력 근절을 위한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물론 중국 정부는 중국판 미투 운동이 과도하게 확산되거나 단체행동이 활발해지는 것을 경계한다. 온라인에서는 미투 운동 관련 글들이 간헐적으로 삭제되고 있다. 1월3일 #MeToo 페이지가 웨이보에 처음 만들어진 후 방문자 수가 450만명에 달했지만, 2주 만인 1월17일에 해당 페이지가 삭제되었다. 그러자 #MeToo를 #米兔(me too의 동음어)로 살짝 비틀어 만든 새로운 페이지가 등장하기도 했다. 해시태그 역시 #米兔로 바꾸어 달며 정부 당국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검색 엔진을 활용하는 정부의 온라인 검열 방식을 피하기 위해 작성한 내용을 이미지로 갈무리해 올리기도 한다. 뤄첸첸이 만들어낸 중국판 미투 운동이 조용하지만 꾸준하게 확산 중이다.

기자명 베이징·정해인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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