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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참사를 향한 염력 혹은 기억력

2018년 02월 08일(목) 제543호
박지훈 (영화평론가)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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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염력>은 상업 영화를 통해서라도 용산 참사를 기억해야 한다는 감독의 소신이 반영되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공동정범>은 관객이 철거민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이끈다.

영화 <염력>은 <부산행>으로 관객 1100만명을 모은 연상호 감독 작품이다. 류승룡·심은경 등 캐스팅도 화려하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화제가 된 건 2009년 1월20일 발생한 용산 참사를 다뤘기 때문이다. 때마침 <염력>보다 먼저 막을 올린 <공동정범> 또한 같은 소재를 담았다. 130억원과 1억6000만원이라는 제작비 차이만큼이나, 두 영화의 성격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공동정범>은 2009년 서울 용산에서 있었던 일을 객관적으로 밝히기보다, 철거민들의 현재 삶을 드러내는 데에 집중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대상은 실존 인물 다섯 명으로, 당시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이었던 이충연씨, 다른 지역 철거민대책위원회 소속으로 연대투쟁을 했던 김주환·김창수· 천주석·지석준씨이다. 이들은 함께 투쟁했고 함께 망루로 올라갔다. ‘공동정범’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은 뒤 모두 수형 생활을 했다. 이후 출소한 이들은 여전히 그때의 기억을 트라우마로 가지고 있으며 서로를 불신하게 되었다. 김일란 감독과 영화를 공동 연출한 이혁상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를 “국가 폭력으로 인한 마음의 참사, 관계의 참사”라고 표현했다. 철거민들의 보이지 않는 상처를 통과하지 않고는 국가 폭력의 본질을 온전히 볼 수 없다는 게 <공동정범>의 결론이다.

<염력>(왼쪽)은 철거민을 괴롭히는 용역 깡패와 폭력 경찰에 대한 통쾌한 복수를 그렸다.
<염력>은 초능력을 얻게 된 한 아버지가 철거민들의 투쟁에 연대하게 되는 이야기다. ‘염력’이라는 판타지 요소는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동시에 현실을 풍자하는 수단이다. 주인공 석헌(류승룡)이 염력을 이용해 용역 깡패를 압도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용역은 석헌의 염력을 촬영하지만, 이 채증 영상은 폭력이 보이지 않기에 증거로 채택되지 못한다. 용산 참사의 채증 영상을 풍자한 것이다. <공동정범>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경찰 측 채증 영상에는 용산 참사의 생존자들이 느꼈던 공포 같은 ‘망루 안의 진실’이 없었다. 채증 영상은 사건의 표피만을 재현한 일종의 ‘나쁜 영화’에 지나지 않았다.

연상호 감독은 악의 원인을 몇몇 악당에게서 찾지 않는다. <염력>의 악역 ‘홍상무’라는 인물 역시 악의 근원이라고 보기 어렵다. 거대한 악보다 더 큰 문제였던 것은 평범한 개인들이 나눠가지는 사소한 악의와 무관심이었다. 이 점은 영화 도입부에서 석헌의 대사로 드러난다. 석헌은 약수터의 물이 쉬었다고 말하지만 누구도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그는 “왜 내 말을 안 믿지?”라며 의아해한다. 용산 참사의 원인은 평범한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도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연상호 감독은 전작들에서도 비슷한 주제에 천착했다. ‘학교 폭력(<돼지의 왕>)’ ‘사이비 종교(<사이비>)’ 등은 모두 평범한 개인들이 만들어내는 사회 구조적 악에 가깝다. <부산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부산행>의 ‘좀비’는 한국 사회를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상징적 소재였다. <염력> 역시 이런 연상호 작품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 점에서 <염력>이 오락물을 만들기 위해 용산 참사를 이용했다는 비판은 과한 듯하다. 감독의 처지에서 용산 참사라는 역사적 사실은, 판타지를 ‘마음껏, 재미있게’ 풀기에는 무거운 구속이다. 그럼에도 굳이 용산 참사라는 구체적인 사건을 지목한 데는 상업 영화를 통해서라도 용산 참사를 기억해야 한다는 감독의 소신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공동정범>은 용산 참사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살고 있는 철거민의 현재 모습을 담았다.
<염력>이 지니는 한계는 판타지라는 장르가 아니다. 문제는 ‘영웅신화’ 형태의 서사 구조다. <염력>의 서사는 전형적이다. 주인공 석헌은 영웅으로서의 소명을 거부하다가 관문을 통과하고, 적을 만나 시련을 겪은 뒤 귀환한다. 문제는 석헌이 영웅으로서 각성하면 할수록 다른 철거민들의 존재는 지워진다는 점이다. 영웅 서사에서 영웅이 되지 못한 개인들은 주체로 등장하지 못한다. 영화 속에서 석헌을 제외한 철거민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언어를 가지지 못했다. 철거민들은 그저 민중이라는 이름의 집단으로 묶여서도, 영웅 서사를 보조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일시 정지의 사유”


<공동정범>은 다르다. 이 영화는 철거민들 개개인의 처지에서 사유하며, 철거민들을 사회정의 구현의 수단으로 대하지 않는다. 카메라가 이런 태도를 취할 때, 관객은 인물의 내면을 완전히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관찰하고 생각해야 한다. 예컨대 당시 철거민 대책위원장이었던 이충연씨는 용산 참사의 생존자인 동시에 같이 망루로 올라간 아버지를 잃은 유가족이기도 하다. 이충연씨는 “카메라 앞에서 울지 않기로 다짐했다”라고 말한 뒤에 눈을 감는다. 잠시 동안의 정적이 흐른 뒤 떨리는 눈꺼풀 밑으로 눈물이 떨어진다. 이 모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이해하기는 힘들다. 관객들은 이충연씨의 내면에서 현재 진행하는 과거, 모순을 생성해내는 현재와 과거의 대립을 볼 뿐이다. 단지 외양이 아니라 한 인간의 시간과 고통까지 사유할 수 있는 길이 스크린 안에서 열린 것이다.

사실인지 알 수 없는 한 인물의 착오 또한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지석준씨는 자신이 망루에서 탈출할 때 자신을 도와 함께 탈출한 철거민이 두 명 있었다고 기억한다. 그런데 이 두 명은 망루 안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고, 이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이 계속 지석준씨를 괴롭혀왔다. 영화 말미에 지석준씨는 자신의 기억이 착오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게 되는데, 이때 관객은 그의 착오가 왜 일어났는지를 사유하게 된다. 착오에 대한 사유 끝에 발견하게 되는 것은 살아남은 지석준씨의 죄책감이다. 그의 착오를 지켜본 관객은 얄팍한 사실보다 훨씬 더 풍부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염력>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이 영화가 갈등을 완전히 봉합한다는 점 때문이다. 용산 참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염력>은 영웅 신화를 위해서 잔존한 갈등과 상처를 은폐하고 봉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공동정범>은 관객에게 철거민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함으로써 관객을 ‘철거민의 현재’로 밀어넣는다. 철거민의 세계에서 사유하는 관객은 더 이상 관객이라는 안전한 위치에 남아 있을 수 없게 된다. 이송희일 감독은 <공동정범>에 대해 “한국 사회에서 ‘일시 정지’의 사유가 얼마나 긴요한지를 증명하는 영화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일시 정지의 사유를 다르게 말하자면 ‘사유의 무능력에 대한 사유’라 부를 수도 있다. 사유의 무능력 앞에서 우리는 관점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공동정범>이 단지 <염력>처럼 정치적인 메시지를 채택한 영화가 아니라 근원적으로 정치적인 영화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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