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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과 민주는 합체 가능한가

2018년 02월 08일(목) 제543호
문정우 기자 w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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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세속적인 권력이 한 인물에 집중된 칼리프 국가가 1000년 동안이나 이슬람 정치의 유일무이한 모델이었다. 현대에 들어와 이 중세의 유물을 되살려내려는 무슬림형제단 역시 민주주의 체질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형제단의 창시자 하산 알반나는 민주주의와 선거를 외국에서 수입한 잡스러운 문화라고 비난했다. 정당이나 공화정에도 반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슬람교 국가로 가려면 단계를 밟아야 하며, 각 단계에서는 서로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를 추종하는 이슬람주의자들은 초기에 그들의 목표를 성스러움과는 거리가 멀게 ‘낮추어’ 잡는 경향을 보였다. 제도권 진입을 위해 선거에 참여하는 일도 불사했다. 길게 보아 유리하다면 민주주의를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여도 좋다고 생각하는 그룹이 늘어나게 되었다. 1950~1960년대에 무슬림형제단을 이끌었던 사이드 쿠틉 같은 이는 이런 흐름을 못마땅해했다. 그는 정치권력이 신성을 모독한다는 판단이 서면 무장투쟁도 서슴지 않았다. IS나 알카에다, 이집트의 이슬람주의 과격파 등이 사이드 쿠틉의 가르침에 충실하려는 그룹이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지금까지도 노선을 둘러싼 논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실현한 국가 가운데서도 정치에 종교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곳이 많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이끄는 인도의 여당 인도국민당(BJP)은 노골적으로 힌두 민족주의자를 지원한다. 이스라엘 역시 유대교 국가를 지향하는 정당을 여럿 거느리고 있다. 유럽에는 집권 경험과 가능성이 있는 기독교민주당이란 이름의 정당이 허다하다. 미국의 공화당 강령은 신이 부여한 자연적이고 포기할 수 없는 권리가 정부, 법원 그리고 인간이 인정한 권리와 갈등을 빚을 경우 전자가 우세하다고 명시해놓았다. 강령에 이슬람주의자들이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한 내용을 못 박아놓은 미국 공화당 출신의 트럼프 대통령이 전제군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 등을 지원하며 그들을 핍박하는 데는 사실 희극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주의자들이 장악한 정부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향해 나아가리라고 낙관하기 힘든 것 또한 사실이다. 나쁜 선례가 있어서다. 2001년 터키의 무슬림형제단 지도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이 정의개발당(AKP)을 설립할 때만 해도 그는 민주와 시장 자유를 기반으로 새로운 이슬람 정치를 대표하는 것처럼 비쳤다. 언론 인터뷰를 통해 본 그는 유연한 종교관, 자유개혁을 열망하는 마음을 품은 인물이었다. 에르도안은 이듬해 선거에 뛰어들어 승리한 뒤 민주개혁을 밀어붙이고 군부를 무릎 꿇렸다. 인권이 놀랍도록 개선돼 AKP는 이슬람 정당의 본보기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에르도안은 표변했다. 갑자기 칼리프의 군왕처럼 굴기 시작했다. 권력을 손아귀에 집중했다. 정부와 군대, 그리고 법원에서 반대자들을 몰아내고 언론을 장악했다. AKP 당내의 대표적인 온건 지도자 압둘라 굴 같은 이들이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했다. 2016년 쿠데타를 모면한 뒤에는 전면적인 숙청을 단행했다. 수천명에 이르는 실제 반대자와 상상 속 비판자들이 감옥에 갔다. 지난해 4월 부정으로 얼룩진 국민투표를 통해 그는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많은 권력을 거머쥐게 되었다. 이슬람주의자들에게 민주주의란 단계적 전략에 불과하다는 비난이 떠오르게 만드는 행보였다.

ⓒ한성원 그림

이슬람주의자들을 색안경을 끼고 볼 수밖에 없도록 만든 또 다른 나라는 이집트이다. 아랍의 봄 혁명을 틈타 대통령에 당선한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의 지도자 무함마드 무르시는 처음부터 분파적이었다. 그는 임기 첫해 말에 자기는 헌법에 구속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도 세속주의 정당들이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독소 조항이 포함된 헌법 개정을 밀어붙였다. 정부 내에 이슬람주의자들이 홍수를 이뤘다.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대부분의 민중은 군대 편이었다. 하지만 이집트 국민은 무함마드 무르시보다 나은 인물을 맞았다고 볼 수 없다. 무르시를 축출한 압델 파타 엘시시 장군은 지난 4년 동안 이집트 역사에서 가장 추악한 대량 학살을 자행했다. 2013년 카이로에서 무르시의 추종자 수백명을 살해했다. 이집트 무슬림형제단 지도자들은 죽거나 감옥에 가거나 해외로 도망쳤다.

터키와 이집트는 성공했거나 실패했거나 차이만 있을 뿐 이슬람 정당화의 나쁜 사례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변명거리는 있다. 터키와 이집트에는 강력한 군대와 관료, 그리고 법원이라는 뿌리 깊은 세속 조직이 있다. AKP가 전면에 등장하기 전 터키의 이슬람 정당은 쿠데타나 법원의 명령에 따라 네 번이나 폐쇄되었다. ‘깊은 집권 세력’이라 불리는 터키 군부 내의 세속주의 그룹은 2007년 이 당의 대통령 후보가 선거에 나서는 것을 막으려고 시도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으로 하여금 선제 전면전이란 카드를 만지작거리게 만든 동기는 충분히 있었다.

이집트에서도 무슬림형제단은 군부와 관료, 법원으로부터 계속 비슷한 공격에 시달렸다. 무르시 치하에서 경찰은 순찰을 거부해 거리에 범죄가 창궐하게 만들었다. 가스와 전기 회사 직원들이 태업을 해 연료가 부족해졌다. 무르시의 전임자가 임명한 판사는 대통령 선거가 무효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이런 일들로 에르도안이나 무르시의 독재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두 나라에서 이슬람주의 정당이 극단으로 치닫게 된 것은 그 자체가 가지는 비민주적 속성 탓이라고만 보기도 힘들다.

이슬람주의 정당이 전체 무슬림 세계에 복음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조짐도 많다. 전제군주국인 요르단과 쿠웨이트에서 무슬림형제단 지부는 수년 동안의 억압을 견뎌내고 지난해 선거를 통해 성공적으로 의회에 진입했다. 모로코에서도 무슬림형제단 분파인 정의개발당(PJD)이 최근 두 차례 선거에서 모두 승리하고 현재 정부를 이끌고 있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파키스탄에서도 이들의 약진은 두드러진다. 오랫동안 기득권에 저항했던 이들이 권력에 다가가 왕정이나 독재에 짓눌렸던 정치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들은 1987년 6월항쟁 이후 한국의 운동권이 대거 제도권에 진입해 권력의 정점을 향해 나아간 것과 비슷한 경로를 걷고 있다.

정치와 종교가 성공적으로 결별할 수도 있다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곳은 ‘아랍의 봄’ 혁명에 불길을 당긴 튀니지이다. 이곳에서 무슬림형제단의 분파인 엔나흐다 당은 온건함과 타협할 줄 아는 드문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운동 역시 튀니지의 독재자 제인 엘아비디네 벤 알리에 의해 수십 년간 모진 박해를 받았다. 2011년 벤 알리가 실각하고 처음 치러진 민주 선거에서 엔나흐다 당은 다수석을 차지하는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처음은 미미했다. 정부 안에서 엔나흐다 당에 회의적인 이들을 배제했고 유력한 좌익 정치인 두 명이 극우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살해당하는 걸 지켜보기만 했다. 시위대가 거리로 뛰쳐나왔고 약한 민주주의는 한없이 흔들렸다. 엔나흐다 당은 민중을 억압하는 대신 땅에 엎드렸다(이집트 쿠데타가 반면교사 노릇을 톡톡히 했다). 광범위한 의견을 수렴해 민주주의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의원 모두가 ‘모두를 위한 축복’이라고 찬양한 헌법을 통과시켰다. 엔나흐다 당은 2014년 테크노크라트 정부에 권력을 넘겨줬다. 엔나흐다 당은 의회 내 제1당이지만 그 특혜를 누리려고 하지 않는다. 엔나흐다 당은 유럽의 기독교 민주주의자들처럼 정치와 종교를 떼어놓으려고 한다. 튀니지 정치인은 이제 모스크에서 연설할 수 없다. 목회자는 정당을 이끌 수 없다. 엔나흐다 당 지도자 라치드 간누치는 “우리는 이슬람주의자가 아니라 무슬림 민주주의자(Muslim Democrat)이다”라고 말한다. 튀니지는 이슬람 세계에서도 과거에 미국이나 유럽에서 그랬던 것처럼 정치와 종교가 성공적으로 결별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슬람주의의 돈줄 구실을 한다고 해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등으로부터 공격당하는 카타르야말로 주목할 만한 나라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나라는 주로 스포츠 면에서 좋지 않은 쪽으로 알려져 있다. 2022년 월드컵을 매우 석연치 않은 방식(주로 매수)으로 유치한 나라. 실력은 없으면서도 돈은 많아서 국제사회에서 갑질하기를 즐기는 나라쯤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지만, 그걸로 이 나라를 다 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나라는 매우 신중하게 ‘모두와 친구가 되려는’ 외교정책을 펴고 있다. 무슬림형제단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테러리스트라고 딱지를 붙인 지하디스트 그룹도 조용하게 지원한다. 그런가 하면 미군에게 기지를 제공하고, 이스라엘과 무역을 한다. 아랍 세계에서는 도살자라고 불리는 이스라엘의 시몬 페레스 총리에게 도하에서 연설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으며 대학생 수학여행단을 예루살렘에 보냈다. 기독교 세계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으며 에리트레아와 가자 지역을 도우려 애쓴다. 전 세계 망명자와 반체제 인사에게 피난처를 제공해 그들이 정치적·종교적 견해를 마음껏 피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수도 도하에서 매년 개최하는 상호 신뢰 콘퍼런스에는 이슬람교·기독교·유대교 등의 지도자가 함께 초청을 받는다. 아랍 세계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는 매체 ‘알자지라’에 무한의 언론 자유를 부여하고 있기도 하다. 이 방송사는 반체제 인사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지도자와 아랍의 독재자에게도 마이크를 준다. 이슬람교 국가 중에서는 드물게 여성이 자기 차를 운전할 수 있다. 이 나라에서도 여성의 학력이 남성을 앞지르는 중이다. 군주 가족을 비판할 때만 흥분하는 카타르야말로 이슬람주의가 진정으로 발현될 때 어떤 모습일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한국 정부가 이슬람주의와 정면으로 맞서는 이면계약에 서명했다는 것은 무슬림 세계에서만이 아니라 양심적인 글로벌 지식인 사회로부터도 눈총을 받을 만한 ‘스튜핏’한 짓이었다.

참고한 활자:<전사의 시대>(도서출판 경계), <라틴어 수업>(흐름출판), <이코노미스트>, <워싱턴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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