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고위 간부의 여성 검사 성추행 의혹을 둘러싼 뉴스를 지켜보는 마음이 착잡했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면서도 자기가 당한 범죄 앞에서 오랫동안 번민했다는 역설 때문이었다. 한편 이 고백이 ‘미투(나 역시)’ 운동으로 번질 조짐을 보면서, 어쩌면 직장 내 성추행이나 2차 피해 문제 등이 해결되는 계기가 될지 모른다는 희망도 생겼다.
〈나쁜 여자 전성시대〉는 이매진이 꾸준히 펴내려는 페미니즘 관련 책들 사이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단순한 이론서에 그치지 않고 ‘페미니즘 운동’의 관점에서 문제를 새로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침 한국에서는 이론의 쳇바퀴에 갇히지 않고 현실로 뛰어든 용감한 여성들이 ‘나쁜 여자’가 돼 목소리를 내던 참이었다. 미국에서 급진 페미니즘의 교과서처럼 읽히는 이 책은 한 사회의 문화와 정치의 풍경이 바뀌는 변화의 시작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독자들의 반응은 영 신통치 않았다. 제목이 문제일까? 표지가 안 좋았나? 너무 늦었나? 아니 빨랐나?
아직 답은 못 찾았지만, 〈나쁜 여자 전성시대〉에 새겨진 미국 급진 페미니스트 역사의 뿌리는 지금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이 꾸려가는 삶으로 이어진다. 어떤 장면들은 한국의 페미니즘‘들’과 완전히 포개지지 않지만, 날 선 구호와 이론 뒤에 가려진 지혜를 길어 올려 성찰의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페미니즘의 오류와 실패만 유난히 과장해서 편협하다고 공격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지난 세기 미국 급진 페미니즘의 주역들이 껴안은 성찰은 지금 여기에서 또 다른 ‘나쁜 여자’들의 ‘전성시대’를 열고 싶어 하는 우리들에게 어떤 깨달음을 건네준다. 우리에게도 우리의 ‘계보’가 필요하며, 페미니즘은 ‘더 편협한 삶’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약속해야 한다는 교훈 말이다. 그래서 궁금하다. 우리, ‘나쁜 여자’들은 어디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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