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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책

2018년 02월 08일(목) 제543호
시사IN 편집국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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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노래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지음, 노승영 옮김, 에이도스 펴냄

“생물학적 음향 다양성을 이해하고 들어보는 숲의 교향악.”


우리는 외부 정보를 파악할 때 대부분 시각에 의존한다. 시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상상력도 시각적으로 발휘된다. 청각으로 정보를 받아들인다면 상상력도 청각적으로 발휘되지 않을까? 이 책은 이 어려운 걸 해낸다. 나무를 설명하는 데 시각 정보가 아닌 청각 정보로 묘사한다. 소리를 들려주는 것도 아니다. 단지 상상하도록 이끈다.
에콰도르 야수니 생태보호구역의 케이폭나무를 비롯해 저자가 묘사하는 ‘나무 가수’는 단 열두 그루뿐이다. 이 열두 그루의 나무로 세상 모든 숲을, 세상 모든 숲의 동물을, 세상 모든 숲의 사람을, 세상 모든 숲의 동물과 사람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생태계를 설명한다. 박학다식과 섬세한 감수성이 빚어내는 절정의 화음이다.



길 위의 독서
전성원 지음, 뜨란 펴냄

“글을 읽는다는 것은 망망대해의 저 너머에서 온 유리병 편지를 집어 드는 것과 같다.”


문학평론가 김명인은 저자를 일컬어 ‘책과 원수라도 진 듯이 책을 사들여 읽었고, 오로지 책을 통해 세상의 절망과 대결하는 자기 존재의 힘을 키웠다’라고 평했다. 그는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이자 ‘바람구두’라는 별칭으로 알려진 전성원씨다. 그동안 자신이 읽었던 수많은 책 가운데 30여 권을 골라 서평집을 냈다.
책의 부제가 ‘인생 서평’이다. 저자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각각의 서평을 써냈다. 로버트 코마이어의 <초콜릿 전쟁>, 조세희의 <침묵의 뿌리>, 니콜 라피에르의 <다른 곳을 사유하자> 같은 책을 통해 굴곡 많았던 자신의 삶을 고백한다. 그는 ‘글쓰기란 세상 모든 이에게 절망하면서 동시에 그들에게 희망을 거는 일’이라고 말한다.



나르시시스트 리더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이지혜 옮김, 와이즈베리 펴냄

“나르시시스트들은 갈등을 분석하고 해결하는 대신 공격적으로 반응하며 책임을 떠넘긴다.”


트럼프, 푸틴, 에르도안…. ‘문제적 리더’들이 전 세계적으로 떠오르고 있다. <따귀 맞은 영혼> 등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심리학자 바르데츠키는 이들이 나르시시즘에 젖어 있다고 분석한다.
세계는 ‘다른 이들이 망쳐놓은 일을 내가 바로잡겠다’는 나르시시즘적 리더십에 미래를 맡겼다.
나르시시스트들은 달변가이고, 선봉에 선다. 때로는 자신의 능력에 비해 더 큰 지위에 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목적을 위해 거짓말을 불사하고 반대 의견은 공격으로 받아들여 복수하려 든다. 그럼에도 대중이 나르시시스트에게 쉽게 매혹되는 이유도 분석했다. 수상쩍은 정치 지도자들과 일상의 문제적 인간들을 분석하는 도구로 적합한 책이다.




고용은 끝났다, 일이여 오라!
베르나르 스티글레르·아리엘 키루 지음, 권오룡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고용이라는 것은 생산자나 소비자 개개인의 정신 상태를 파괴합니다.”


철학이 인공지능 시대를 어떻게 다루는지 엿볼 수 있는 짧고 단호한 텍스트다. 대담집의 성격상 매우 쉽게 이야기한다. 책의 큰 장점이다.
저자가 표명하는 ‘고용과 일의 대조’ 자체는 새로운 프레임이 아니다. 마르크스로부터 네그리에 이르기까지 급진적 계보의 철학자들이 계승해온 일종의 지적 전통. ‘앎’을 습득하고 키우고 실행하며 새로움을 창조하는 활동으로서의 ‘일’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을 궁핍한 바보로 만드는” ‘고용’일 뿐이다. 인공지능으로 인한 고용의 종말이 기쁜 소식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스티글레르는 고용의 몰락을 ‘일’을 부활시키는 기회로 삼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위한 사회협약을 상상하고 구성해 나가자고 제안한다.



위험한 요리사 메리
수전 캠벨 바톨레티 지음, 곽명단 옮김, 돌베개 펴냄

“저는 어떻게든, 언젠가는, 정당한 대우를 받게 될 겁니다.”


메리 맬런은 미국 뉴욕의 상류층에 걸맞은 가사 노동자였다. 건방지지 않았고, 분수를 알았으며, 입이 무거웠다. 게다가 요리 솜씨가 좋았다. 그러나 메리는 어느 집에서도 오래 일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자꾸만 아팠다. 장티푸스라고 했다. 같은 재료로 만든 음식과 물을 마시고도 메리는 건강했다. 조사 결과 메리는 미국에서 최초로 발견된 ‘건강 보균자’였다. 언론은 메리 맬런의 삶을 선정적으로 소비했다. ‘장티푸스 메리’로 불리게 된 메리는 26년간 격리병동에서 갇혀 지내다가 삶을 마감한다.
공중보건과 인권이 첨예하게 부딪치는 와중에도 무지와 혐오는 이주노동자이자 가난한 여성에게 선택적으로 작동했다. 메리는 그 가운데서도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애썼다.



죽은 숙녀들의 사회
제사 크리스핀 지음, 박다솜 옮김, 창비 펴냄

“중요한 건 우리를 지배하는 이야기를 이해하고 다시 써나가는 것이다.”


자살에 실패했다. 남은 삶의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죽은 사람들만이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들이 남긴 글이, 음악이, 그림이, 뒤척이는 긴 밤을 지켰다. 집을 떠나기로 결심했을 때 지도가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밤을 함께 견뎠던 예술가 아홉 명이 머물렀던 도시로, 저자는 최소한의 짐만 꾸려 떠난다.
‘천재’ 제임스 조이스의 아내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 살기 위해 애썼던 노라 바너클,
‘위대한 시인’ 윌리엄 예이츠의 뮤즈가 아니라 혁명가로 살았던 모드 곤을 비롯한 아홉 명의 예술가를 ‘죽은 숙녀들’로 묶었지만 모두 여성은 아니다. 저자는 동성애자임을 평생 숨기고 살아야 했던 서머싯 몸처럼 시대가 규정한 ‘남성성’과 싸워왔던 이들과도 기꺼이 손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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