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가 앞다투어 ‘인권조례’를 제정하기 시작한 시기는 보수 정권 집권 시기와 겹친다. 2008년 광주에서 시작된 인권조례 제정 활동은 각 지자체로 퍼져나갔고, 2012년 4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조례 제·개정 권고’ 결정을 내리면서 확대됐다. 그 결과 전국 17개 광역시·도 중 인권조례를 제정·운용하지 않는 광역시는 인천이 유일했다. 그리고 2월2일 충청남도가 인천 곁에 섰다.
충남도의회는 2월2일 임시회 제2차 본회의를 열고 ‘충청남도 도민인권 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이하 충남인권조례) 폐지조례안’을 찬성 25, 반대 11, 기권 1표로 가결했다. 충남인권조례는 2012년 5월, 당시 자유선진당 소속이던 송덕빈 도의원(현 자유한국당)과 과거 새누리당 도의원들의 주도로 제정됐다. 이후 충청남도는 충남인권조례 제8조 ‘인권선언 이행’을 근거로 2014년 10월 ‘충남도민인권선언’을 공포했다. 선언의 제1조는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전과 등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이다.
이 조항은 뒤늦게 충남 지역 일부 개신교계와 시민단체에 ‘발견’됐다. 2017년 2월 안희정 충남도지사와의 면담에서 조항 삭제 거부 의사를 확인한 이들은 5월 인권조례 폐지를 위한 서명 작업에 돌입했고, 11월에 11만명의 서명지를 제출했다(이 중 중복 서명 등을 제외한 7만7700여 장이 인정됐다). 이들은 ‘인권조례가 동성애와 에이즈를 조장한다’라는 내용의 집회를 열고, 현수막을 걸고, 도의원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등 ‘압박’ 전술도 사용했다.
10월17일 안희정 지사는 페이스북에 조례 폐지 집회를 언급했다. “성별·인종은 물론이고 성 정체성 또한 차별의 근거가 될 순 없습니다. 성 소수자는 우리 곁에 존재하는 이웃이며, 그 자체로 우리의 현실입니다.” 11월24일 본회의에서는 도지사와 김종필 도의원(자유한국당) 간 설전이 오가기도 했다.
안희정 지사:성병의 문제가 인권선언이랑 무슨 연관이 있다는 겁니까, 도대체?
김종필 의원:보세요. 동성연애를 하게 되면 에이즈가 발생할 수 있다. 아닙니까?
안희정:에이즈와 동성애는 연관성이 없습니다.
김종필:실질적으로는 동성애를 통해서 성 접촉이 이루어지는 것이고요. 성병이 없다고 하면 저희도 용인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안희정:에이즈가 전파되고 전염되는 종류로 본다면 이성애 간의 전파 감염 경로가 더 많습니다. 그러니까 제 얘기는 뭐냐 하면 동성애와 인권선언의 문제를 바로 에이즈 논쟁으로 하는 것은 적합지 않다, 이 말씀을 드립니다.
김종필:하여간 우리 도는 뾰족한 대책도 없이 인권정책을 펴면서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까지 어떤 이유로도 차별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상당히, 저는 흠결이 있다고 봅니다.
안희정:인권을 존중하고 그것을 향상시키자는 데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습니까?
김종필:그거는 없지만, 거기다 성적 지향과 성적 정체성까지 남자와 여자의 구분 있는 것을 구분 않는다는 것은 동의를 안 합니다.
결국 1월16일 김종필 도의원의 대표 발의로 충남인권조례 폐지안이 도의회에 올라왔고 2월2일 가결됐다. 김종문 도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의사 진행 발언을 통해 “의사를 표시하지 않은 대다수 도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공식 절차를 밟아 들어보지 않고 본회의에 상정하는 것은 의회 기능 상실”라며 의사 일정 변경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도의회 의장이 자유한국당 탈당한 이유는?
충남인권조례안이 아직 완전히 폐지된 건 아니다. 안희정 지사는 2월11일 오스트레일리아 방문을 마치고 도정에 복귀해 폐지안 재의를 요청할 계획이다. 충남도청 핵심 관계자는 “인권조례 폐지 상황을 잘 모르는 도민들도 도지사가 재의를 요청하면 ‘무슨 일이 생겼나’ 제대로 알게 될 것이다. 폐지에 찬성한 의원 개개인으로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폐지안 통과 이후 의원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대표적으로 윤석우 도의회 의장(자유한국당)은 탈당계를 제출했다. 당이 충남인권조례를 당론으로 정해 폐지한 데 부담을 느꼈다고 전해진다.
충남도청은 만에 하나 도지사의 재의 요청이 도의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대법원까지 끌고 갈 방침이다. 이 같은 강경 대응에는 6월 지방선거에 대한 자신감이 깔려 있다. 여권 측에선 충남도지사 선거의 경우 사실상 예선이 결선이고, 도의원 선거도 ‘잘하면’ 지금과 달리 여야 5대5 구도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럴 경우 폐지안 복구에 목매달 일 없이 ‘새 의회에서 인권조례를 다시 제정하면 된다’라는 계산이다.
인권조례는 인권 친화적인 지역 공동체를 만들어간다는 결의이자, 이를 추진하는 사회적 장치이기도 하다. 김중섭 경상대 사회학과 교수는 “인권조례 이행으로 미진하지만 행정에 인권이라는 요소가 스며들기 시작했다”라는 점에 주목한다(〈인권조례와 지역사회의 인권 발전〉 2015).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 역시 “인권조례는 헌법과 법률이 규정한 국가의 인권 책무를 지자체도 분담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함과 동시에 추상적 인권 규범에 현장성과 구체성을 더욱 강화한 것”이라고 평가한다(〈지방자치단체의 인권조례에 대한 연구〉 2012).
이번 충남인권조례 폐지안 통과는 일부 개신교계가 ‘하면 된다’를 다시 한번 학습한 기회였다. 이들은 ‘빨갱이’를 대체할 새로운 적으로 ‘성 소수자’를 지목했고(〈시사IN〉 제531호 ‘빨갱이를 잡자에서 동성애를 막자로’ 기사 참조), 인권조례는 그 먹잇감이 되었다. 이들의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정치인들은 성 소수자 문제에 모호한 스탠스를 취하곤 한다. ‘동성애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차별에는 반대한다’라는 식이다. 동성애가 찬반의 문제가 아님에도 그렇다. 유엔 사무총장 시절 동성애자 인권을 적극 옹호했던 반기문 전 총장도, 인권 변호사 출신인 박원순 서울시장도, 문재인 대통령도 이 지점에서는 자유롭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충청남도의 행보는 주목할 만하다. 충청남도는 인권조례를 폐지한 첫 번째 도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남을까, 앞으로 나아갈까. 결국 6월 지방선거가 ‘인권의 키’를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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