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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단일팀이 짊어진 평화와 증오의 무게

2018년 02월 09일(금) 제544호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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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픽의 남북 협력은 현실을 반영한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남북 공동 입장은 당시 남북 정상회담이 준 선물이었다.
2018년 남북관계의 악화 국면에서 평창의 어깨가 무겁다.

‘평화 올림픽’을 위하여


2월4일 코리아 팀과 스웨덴의 여자 아이스하키 평가전이 열렸다. 경기 시작 전 국가가 연주되었다. 선수들도 관중도 스웨덴 국기와 나란히 걸린 한반도기를 보면서 아리랑을 불렀다. 구슬픈 노랫가락 때문인지, 한반도의 모호한 정세 때문인지 뭉클함이 새어나와 경기장을 덮었다.

1991년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 대회에서 코리아 팀은 세계 최강 중국을 꺾고 우승했다. 관중석에는 남북 분단만큼 갈라지고 대립했던 민단과 조총련이 하나가 되어 코리아 팀을 응원했다. 우승의 순간 한반도기가 올라가고 아리랑이 울려 퍼질 때, 선수들도 울었지만 남의 나라에서 분단의 모진 세월을 살았던 재일동포들이 더 많이 울었다.

ⓒ사진공동취재단
2월4일 인천 선학국제빙상장에서 열린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평가전 코리아 팀과 스웨덴의 경기를 마친 양 팀 선수들이 서로 인사하고 있다.

평창올림픽(이하 평창)은 그때와 다르다. 1990년대 초반의 코리아 팀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함께 울 수 있었다. 평창의 코리아 팀을 바라보는 시선은 처음부터 갈렸다. 보수 야당이 평창에 색깔을 칠하면서 초당적 협력도 멀어졌다. 코리아 팀이 처한 정세도 복잡하다. 북핵 문제로 오랫동안 남북관계의 악화 국면이 계속되었다. 악화 국면이 낳은 보수적 여론도 만만치 않다. 특히 젊은 세대는 남북관계의 좋은 시절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다.

평창은 ‘올림픽 휴전’이라는 선물을 주었지만 많은 이들은 올림픽 이후를 걱정하면서 평창을 본다. 평창은 한반도에서 열리는 두 번째 올림픽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북방정책의 배경이 되었고, 민주화의 문을 열었으며, 국제화의 출발을 알렸다. 2018년 평창의 어깨는 무겁다. 우리는 평창에서 북핵 문제 해결의 기회를 포착해서 한반도 평화의 문을 열어야 한다.

평화는 가장 중요한 올림픽 정신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올림픽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바로 도시국가들 사이의 빈번한 전쟁을 중단하기 위해서다. 2000년 9월 시드니 올림픽에서 남과 북은 처음으로 공동 입장했다. 남과 북의 기수들이 함께 한반도기를 들고 96번째로 입장했을 때,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시드니 올림픽 주경기장에 모였던 11만8000명이 모두 일어나 뜨거운 박수를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순간이 바로 올림픽 정신에 가장 어울렸기 때문이다. 공동 입장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까지 이어졌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악화된 남북관계를 반영했다. 2018년 평창에서 남과 북의 공동 입장은 과거처럼 지구촌 모두를 감동시킬 것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과거 동·서독이나 남북한처럼 분단국이 올림픽에서 손을 잡고 화해하고 협력하는 모습을 간절히 원한다. 냉전의 한가운데 있던 1963년 스위스 로잔에서 남북 체육회담이 열린 이유도 IOC의 적극적 중재 때문이다. IOC는 한반도가 1964년 도쿄 올림픽에 단일팀으로 출전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당사자가 원하지 않으면 어떤 중재도 소용없다.

우리는 평창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분단된 한반도, 나아가 분단된 강원도를 강조하고, 평화 올림픽에 가장 적합한 공간이라는 점을 홍보했다. 남북 분산 개최의 가능성을 밝힌 이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북핵 위기의 상황에서 평화 올림픽에 관한 많은 구상들을 논의할 수 없었다. 북한이 갑자기 평창 참가를 결정했고, 시간 부족으로 애로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평창만큼 올림픽 정신을 상징하는 장소가 어디에 있겠는가?

ⓒAP Photo
2000년 9월15일 시드니 올림픽에서 남북한 참가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흔들며 입장했다.


IOC의 적극적인 중재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의 남북 협력은 현실을 반영한다. 과거 냉전 시대에도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는 다양한 논의들이 적지 않았다. 1972년 뮌헨 올림픽을 앞두고 북한이 단일팀 구성을 제안한 적도 있고,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는 남북 분산 개최를 위해 실제로 체육회담을 열었다. 성과는 없었다. 시드니 올림픽의 남북 공동 입장은 사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이 준 선물이었다.

물론 합의는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결렬의 과정을 거치면서 만들어진다. 알고 보면 단일팀이 부르는 단가와 흔드는 단기의 역사는 길다. 1963년 분단 이후 처음으로 이루어진 남북 체육회담에서 단일팀의 단가가 결정되었다. 아리랑은 남북한이 의견 차이 없이 바로 합의할 수 있었던 공통의 노래였다. 한반도기가 단일팀 단기로 논의된 것도 1963년부터였다. 1990년 체육회담에서 현재의 한반도기를 합의할 때까지 27년 동안 다양한 논의를 거쳤다.

한반도기는 이념 갈등과 관련 없어

한반도기를 이념의 안경으로 보면 안 된다. 한반도기는 보수 정부 때 만들어졌다. 한반도의 지도 형태로 한반도기를 만들자고 의견 접근을 했을 때는 박정희 정부였고, 현재의 한반도기를 합의했을 때는 노태우 정부다. 이념 갈등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평창에서 남북한 공동 입장과 남북 단일팀 구성은 IOC가 가장 적극적이었다. 북미 아이스하키 리그가 올림픽 불참을 선언하고, 러시아의 국가 자격 출전이 어려워졌을 때, 남북 단일팀은 아이스하키와 평창을 살리는 유일한 흥행 카드였다.

평창이 만들어내는 열기는 뜨겁고, 코리아 팀의 감동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남북 간 접촉은 선입관이 가진 오해를 이해로 바꿀 것이다. 코리아 팀을 둘러싸고 경기장 밖과 안의 분위기가 다르다. 안에서는 아리랑의 합창소리가 들리고 감동의 파도가 치지만, 밖에서는 증오와 대립의 말이 넘쳐난다.

평창이 성공해야 하는 이유는 평화 때문이다. 한반도의 위기가 잠시 멈추었지만, 평창 이후의 전망은 불투명하다. 우리는 평창에서 평창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평창에서 북한과 미국의 대화 전망은 밝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창의 열기 사이에서 우리는 북핵 문제 해결의 기회를 잡고 평화의 문을 열어야 한다. 코리아 팀의 어깨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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