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 생활 33년 동안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한 초등학교의 김정임 교장(가명·56)은 얼마 전 교장실에 놀러 온 저학년 학생들에게 루빅스 큐브(정육면체 퍼즐)를 쥐여주었다. 지능 발달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쉽지 않은 퍼즐에 끙끙댈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뜻밖의 반응이 돌아왔다. “교장 선생님, 스마트폰 좀 빌려주세요.” 잠시 큐브를 들여다보던 아이들은 스마트폰으로 유튜브에 접속했다. 유튜브 검색창에 ‘큐브 풀기’를 입력한 아이들은 ‘3×3 큐브 공식’ 영상을 찾아내 곧바로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풀이법을 따라 했다. 큐브 퍼즐이 교육적 효과를 주리라 기대했던 김 교장으로서는 당혹스러운 순간이었다.

‘검색’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문자보다 영상이, 포털 사이트보다 유튜브가 익숙한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 10여 년간 국내 인터넷 환경을 지배하던 포털 사이트의 영향력은 20대부터 서서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글과 사진으로 구성된 블로그 포스트 대신 유튜브에서 ‘꿀팁 영상’을 찾아 빠르게 정보를 흡수한다. 나이가 더 어릴수록 변화의 폭은 크다.

모바일 앱 분석 업체 와이즈앱에서 발표하는 ‘주간 스마트폰 앱 실사용 랭킹(왼쪽 〈표 1〉 참조)’에는 이런 경향성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1월29일부터 2월4일까지 국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표본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들이 일주일 동안 가장 많이 활용한 스마트폰 앱은 카카오톡(1위)과 유튜브(2위)였다.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을 제외하면 네이버(3위), 크롬(웹브라우저·4위), 구글(6위), 페이스북(9위)보다 유튜브 이용 빈도가 더 많았던 셈이다. 와이즈앱이 실시한 지난해 9월 월간 조사에서는 유튜브가 처음으로 카카오톡을 제치고 월간 사용량 1위로 뛰어오르기도 했다.

유튜브의 약진은 세대별 분석(왼쪽 〈표 2〉 참조)에서 두드러진다. 위 주간 조사에서 유튜브를 가장 많이 활용한 세대는 10대(전체 사용자 중 22.3%)로 나타났다. 20대(18.2%), 30대(20.6%), 40대(20.8%)보다 높은 비율이다. 유독 유튜브를 열심히 보는 사람을 가늠할 수 있는 ‘충성 사용자층 조사(앱 사용자 전체의 평균 사용 일수보다 더 많은 일수를 사용한 사람)’에서도 10대의 유튜브 선호를 뚜렷하게 읽을 수 있다. 유튜브 ‘충성 사용자층’에서 10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33.5%. 유튜브 단골 고객 3명 중 1명이 10대인 셈이다. 충성 사용자층 가운데 30대(24%)의 비중이 가장 높은 네이버와 비교하면 차이를 더욱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10대 청소년은 유튜브에서 무엇을 볼까? 애초 이 질문은 잘못됐다. 이제는 “모든 걸 유튜브로 찾아본다”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 경기도 이천시의 한 고등학교 교사도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를 살펴보면 정보 출처라며 유튜브 링크를 적어두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성균관대에 재학 중인 채수혁씨(가명·21)는 대입 수시모집 자기소개서에 ‘평소 유튜브를 자주 본다’라고 써냈다. 채씨는 “고등학생 때 매일 밤 테드 강연을 보다 잠들었다. 자소서 쓸 때 어떻게 관심 분야를 발전시켰는지 서술하는 항목이 있는데, 괜히 이해하기 어려운 책 내용을 언급하기보다는 테드처럼 공부하고 싶은 분야 강연 영상을 자주 봤다고 솔직하게 썼다. 유튜브를 보는 것도 공부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영상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것도 이들의 특징이다. 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 고학년 담임을 맡은 양원선 교사(가명·31)는 최근 아이들의 변화를 이렇게 설명한다. “여유 시간에는 무조건 영상과 함께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직접 찍어서 유튜브에 올리는 게 아이들에게는 무척 익숙하다. 옥상에서 라면을 끓여먹거나, 매운 볶음면을 먹는 장면처럼 아무 특징 없는 일상을 찍어서 올리는 식이다. 조회수가 100회만 돌파해도 아이들은 기뻐한다. 캠코더나 PC 없이도 촬영과 편집 모두 스마트폰으로 해결하고, 앱으로 영상 편집을 잘하는 애들은 반에서 센스 있다고 인정받는다.”

ⓒYouTube 갈무리키즈 크리에이터 마이린이 제작한 ‘불닭볶음면’ 먹는 영상. 10대들은 일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린다.


특징 없는 일상도 영상에 담아

이들 사이에서 ‘일상성’은 무척 중요한 화두다. 늘 영상을 찍고 일상을 공유한다. 페이스북에서도 영상은 중요한 소통 문법이다. 특히 ‘라이브(실시간 중계)’ 기능이 일상화되면서 웃지 못할 사건도 일어난다. 경기도 포천시에 위치한 한 고등학교 교사는 자신이 겪은 황당한 일을 예로 들었다. “얼마 전, 학생들이 학교 체육관 뒤편에서 흡연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페이스북 라이브 기능을 이용해 담배 피우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더라. 교무실에서 한 선생님이 페이스북에 접속했다가 이 장면을 보고 깜짝 놀라 뛰어나간 적이 있다.” 특별할 것 없는 사소한 일상도 이들에게는 충분히 ‘생중계’ 소재가 된다.

이런 흐름은 10대를 넘어 20대까지 확산되고 있다. 영상이 단순히 정보를 만들고 공유하는 데 쓰이는 게 아니라 실시간으로 서로를 다잡아주는 용도로 활용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캠스터디다. 자신이 공부하는 모습을 유튜브로 공유하는 일종의 ‘공부 방송’이다. 원래 공부 방송은 영미권 유튜버들이 ‘Study with me’라는 제목으로 Vlog(비디오 블로그라는 뜻. 일기장처럼 하루 동안 무엇을 했는지 촬영하고 편집한 영상)를 만들며 시작됐다. 짧게는 수십 분, 길게는 몇 시간 동안 자신이 공부하는 모습을 올리면, 시청자들은 이 영상을 틀어두고 각자 공부하는 식이다. 페이지를 넘기거나 필기하는 소리, 영상 속 공부방에 틀어둔 배경 음악마저도 이들에게는 일종의 ‘백색소음’으로 작동한다.

공부 영상 틀어놓고 각자 공부하는 식

이 문화가 한국 수험생의 ‘생활 스터디’와 결합한 게 한국식 캠스터디다. 특징은 ‘라이브’다. 지난해 3월 방송을 시작한 유튜브 〈공팟수〉 채널은 하루 12시간씩 채널 운영자가 공부하는 모습을 매일 실시간 중계한다. 지난해 10월부터는 화면 공유 서비스 ‘어피어인’을 활용해 5인 중계방송을 시작하기도 했다. 한 화면 속에 5명이 공부하는 장면이 실시간 중계된다.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공시생이 만든 이 채널은 개통 11개월 만에 구독자 1만명을 돌파했다. 정작 방송에서는 아무런 정보가 오가지 않지만, 방송을 하는 쪽도, 방송을 보는 쪽도 공부 의지를 다잡으려고 이 채널에 접속한다. 이 같은 유행을 감지한 한 공무원 시험 인터넷 강의 업체는 최근 프리미엄 수강권 고객을 대상으로 ‘학원 자습실 라이브 방송’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시사IN 윤무영유튜브 ‘공팟수’ 채널은 매일 12시간씩 채널 운영자가 공부하는 모습을 실시간 중계한다. 시청자들은 이 영상을 틀어두고 각자 공부한다.

유튜브는 ‘커뮤니티’ 기능도 한다. 본래 유튜브는 동영상을 제공하는 데 특화된 서비스다. 그러나 ‘동영상’을 ‘게시판 글’로, 각 동영상에 달리는 댓글을 ‘게시글 아래 달리는 댓글’로 이해하면 여느 커뮤니티와 다를 바가 없다. 초등학생 사이에서 ‘동영상 업로드’가 ‘오유’ ‘클리앙’ ‘엠엘비파크’ 같은 커뮤니티 사이트의 ‘불판(댓글을 달기 위해 올려둔 게시물)’ 기능을 하기도 한다.

댓글 참여가 활발한 만큼, 영상 제작자 처지에서는 피드백이 다양하고 풍성하다는 이점도 있다. 그동안 페이스북을 기반으로 활동한 뉴미디어 ‘닷페이스’는 지난해 여름부터 페이스북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유튜브에 공을 들여왔다. 조소담 닷페이스 대표는 “같은 영상을 페이스북과 유튜브에 동시에 올려 비교해보니 유튜브 사용자의 인게이지먼트(댓글 등 일종의 참여도)가 훨씬 좋았다. 아직 조회수는 페이스북이 앞서지만, 영상을 본 사람들이 자기 의견을 활발하게 개진하는 쪽은 유튜브였다. 페이스북에서는 주로 20대가 우리 영상을 살펴봤지만, 유튜브에서는 10대의 비중도 늘었다”라고 말했다. 실명제로 운영되는 페이스북보다 익명으로 댓글을 남기는 유튜브에서 더 다양한 반응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유튜브가 거대한 커뮤니티로 기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유튜브 세대에게 영상은 이미 라이프스타일이다. 하지만 이들이 빠르게 수용하는 영상이 얼마나 정확하고 신뢰할 만한 정보인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유튜브 생태계를 유지하는 두 가지 알고리즘을 고려하면 정보에 대한 신뢰보다 우려가 커지는 게 사실이다. 유튜브 생태계 제1원칙은 ‘보는 만큼 번다’이다. 유튜브 영상은 노출(조회수)에 따라 광고 수익을 얻을 수 있다. ‘○○한 썰’ ‘○○가지 이유’처럼 출처가 불분명한 정보에도 광고 수익이 배분될 수 있다. 상업적인 목적이 두드러질 경우,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내용과 관계없는 선정적인 장면을 편집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자극적인 내용으로 영상을 구성하기도 한다. 텍스트가 중심이 되는 웹과 달리 가짜 뉴스를 제작하게 유인하는 동기를 플랫폼 시스템이 적극적으로 제공하는 셈이다.

비슷한 주제 영상이 연달아 이어지는 알고리즘도 정보 편향성을 심화시킨다. 가짜 뉴스 영상을 본 후, 곧바로 다른 가짜 뉴스로 이어지기 쉽다. 가령 4만여 명이 구독 중인 유튜브 채널 〈프리덤뉴스〉에 올라온 ‘5·18, 북한군이 전남도청 지하에서 지휘했다’라는 영상 옆에는 추천 영상으로 8만여 명이 구독 중인 〈뉴스타운〉 채널의 ‘전라도=친일, 지역감정이 아닌 과학이다’라는 영상이 올라온다. 두 채널 모두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서 가짜 뉴스를 만들어 배포한 바 있다(〈시사IN〉 제493호 ‘겨울 광장의 웃픈 풍경’ 기사 참조).

‘교장실 유튜브 충격’ 이후 김정임 교장은 제도권 교육 전반을 되돌아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활자로부터 멀어졌다는 이유로, 이들의 학력이 떨어졌다고 보는 게 과연 온당할까? 이 친구들이 훗날 활자 위주로 평가하는 공교육 체계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새 세대는 이미 등장했다. 숙제는 이제 어른들 몫이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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