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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 혐오가 돈 되는 세상

2018년 02월 19일(월) 제544호
최태섭 (문화평론가)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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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많이 사용되는 신조어 중 ‘TMI’라는 단어가 있다. ‘투 머치 인포메이션(Too Much Information)’의 앞 글자를 딴 것으로, 굳이 알 필요 없는 정보나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제는 우리의 일상에 TMI가 치고 들어오는 단계를 넘어서, 사람들이 TMI의 바다에서 표류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

출처 A로부터 B라는 정보가 등장하면 언론사 C, D, E, F, G…가 모두 ‘단독’이라는 말머리를 붙여 기사를 낸다. 그 언론사들이 운영하는 온라인에서 내용과 상관없는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어뷰징(abusing:동일한 내용의 기사를 반복적으로 노출)을 한다. 그 기사들은 곧 포털, 커뮤니티, 카페, 위키백과, 개인들의 블로그와 SNS에 내걸린다. 같은 내용을 누군가가 동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린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저리 가라 할 만큼 불어난 정보 비슷한 무언가가 온라인 공간을 가득 채운다. 물론 SNS를 타고 실려오는 수많은 ‘친구’들의 시시콜콜한 일상, 정념, 감상, 점심 메뉴도 빼놓을 수 없다.

이 광기 어린 움직임에는 하나의 합리성이 있다. 온라인 공간에서 가장 큰 경쟁은 어떻게 더 많은 이들의 주목과 관심을 끌 것인가이다. 왜냐하면 랜선을 타고 넘어오는 주목과 관심이 오늘날 온라인 공간의 거의 유일한 자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주목 경쟁’은 약한 자존감을 가진 개인들이 자신의 자아를 보상받기 위해 벌이는 가련한 게임이 아니다. 주목 경쟁은 오늘날 미디어 환경 내에서의 유일한 목표이자 결과이고, 그 자체로 산업이다.
ⓒ정켈 그림

제도권 정치에서부터, 개인 방송을 진행하는 개인까지 모두가 이 게임에 빠져들었다. 무뢰배가 되는 것이 게임에서 이길 수 있는 훌륭한 전략이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악담, 소수자에 대한 혐오, 불쾌한 욕설과 음담패설은 그것에 동조하는 사람이든, 반대하는 사람이든 관심을 끌어들일 수 있다. 이렇게 끌어들인 관심은 규모만 충분하다면 얼마든지 다른 것과 교환 가능하다. 죄책감이나 양심 같은 물러터진 것들을 접어둘 수 있다면, 그야말로 ‘혐오가 돈이 되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이 전략은 차근차근 명분을 쌓고, 사려 깊은 표현 방식을 궁리하고, 타인에게 성찰과 토론을 권유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남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어렵게 쌓아놓은 것을 그저 부수기만 하면 되니 말이다. 게다가 신문과 방송은 이들을 사랑한다. 이들의 자극적인 말을 퍼다 나르고, 스튜디오에 불러 마이크를 쥐여준다. 혹시라도 이들이 마음을 바꿔 회개한다면 사람들은 순식간에 이 무뢰배들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일부의 볼멘소리가 있겠지만 그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민주주의는 ‘이슈’에 묻힌 목소리를 건져 올리는 일


당연히 이 전략은 공동체의 가치와 합의의 기반을 파괴한다. 하지만 자본은 불만이 없다. 어쨌거나 돈이 벌리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본의 세계에서는 도덕과도 같은 것이다. 구성원 간의 신뢰가 바닥을 뚫고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치명적인 문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먹이’를 주지 않는 것이다. 혐오를 통해 얻은 반응을 이득으로 전환하는 메커니즘을 깨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동체와 구성원들의 조직적 무관심과 인내가 필요하다. 또 말이 몰고 다니는 관심이 아니라 그것의 정당성과 필요를 기준으로 판단의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

‘목소리’는 소수자들이 가진 가장 보편적인 도구다. 수많은 사람들이 은연중에 공모하고 있는 혐오 산업은 삶을 요구하는 절박한 목소리를 쓰레기 같은 말들의 하치장에 파묻는다. 누군가는 동조하고, 누군가는 환멸을 느끼며 떠나간다. 목소리의 ‘자유시장경제’는 여기에서도 불평등만을 양산할 따름이다.

목소리의 체계는 시장경제가 아니라 광장이어야 한다. ‘화제’와 ‘이슈’에 묻힌 목소리들을 건져 올리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가장 시급한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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