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양한모

제541호부터 제543호까지 이어진 ‘아동 학대 보고서’ 기사를 쓰며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겪었다. 종종 멍해지거나 불안해졌고 한번 화가 나면 잘 가라앉지 않았다. 수면이 불규칙해졌고 주변의 모든 상황이 부정적으로 느껴졌다. 어른이 아이를, 그것도 부모가 제 자녀를 학대하다가 죽이는 사건을 살펴본 뒤 기사로 풀어내는 일은 예상보다 훨씬 고통스러웠다. 취재하다가 수차례 ‘숨이 멎는’ 경험을 했다. 기사에도 차마 쓰지 못한 경악과 슬픔과 절망의 이야기들이 가슴속에서 잘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봤자 고작 한 달,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접한 사건도 기껏해야 20여 건이었다. 문득 절감했다. 이 정도로도 이렇게 무너지는데, 매일 일선에서 아동 학대 사건을 접하고 관리하고, (사실은 거의 나아지는 게 없는 상태에서) 종결해야 하는 현장 종사자들은 마음이 어떨까? “매일매일이 트라우마의 연속”이라던 한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의 말이 떠올랐다.

상담원들은 지역 내 모든 아동 학대 신고를 받고, 출동하고, 조사하고, 판단하고, 아이를 격리하고, 치료하고, 관리한다. 이런 일련의 긴 과정을 거쳐야 하는 아동 학대 사건이 한 해 1만8700건(2016년 기준). 그런데 이것들을 다 감당하는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은 전국을 합쳐 637명에 불과하다.

이 아이가 마음이 쓰여도 저 아이 사건이 터지면 놓고 갈 수밖에 없는, 그래서 놓쳤던 아이가 다시 학대당해 최악의 결말을 맞는 경우를 빈번히 목격하고 또 자초하면서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상담원들을 취재하며 많이 만났다. 결국 무뎌지거나 그만두거나. 빈자리는 신입이 채웠다가 다시 2~3년 뒤 비워지기가 반복됐다. 그만큼 아동 학대 ‘사후 관리’에도 구멍이 커졌다.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을 거쳐 간 많은 아이들이 비행 청소년이나 장애인, 심하게는 주검으로 돌아왔다. 자신이 맡은 아동 학대 사례를 끝까지 관리하지 못한 상담원들도 분명히 잘못이 있다. 그런데 이게 다 그들만의 책임일까? 이들도 시스템 없는 아동보호 체계 내에서 온몸으로 ‘갈리고’ 있는 건 아닐까? 아무런 투자 없이 문제만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무책임한 우리 사회 구조가 아동 학대 영역에도 그대로 작동하고 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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