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써야 할 글을 쓴다. 뒤로 미루면 뒤로 계속해서 밀리는 이야기라서 그렇다. 조개 줍는 이야기니까.

한 원로 시인의 성추행을 풍자한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과 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문단 내 성폭력 고발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라는 문장을 다시금 떠올렸다. 2016년에 나는 한 문예지에 ‘질문 있습니다’라는 글을 발표했다. 역시 여러 술자리에서 본 바 있는 남성 문인들의 젠더 폭력을 증언하고 바꿀 수 있는 건 바꾸기 위해 힘을 모아보자는 취지의 글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 글은 단독적인 것이 아니라 연쇄적인 것이었다. “우리는 계속되는 말하기와 행동으로 더 많은 변화를 만들어갈 것이다.” 그즈음 여성을 향한 무차별적 폭력과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혐오의 대상이 되었음을 고발하는 증언이 없었더라면,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에 대항하려는 외침이 없었더라면, 그 목소리들에 힘을 얻지 못했다면 나는 그 글을 감히 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 글은 연결되어 있었다. 이즈음 최영미 시인의 증언 역시 가깝게는 서지현 검사의 고발에 멀게는 미투(Me Too) 운동이 연결되어서 비로소 지금, 여기로 소환되어올 수 있었을 것이다.

ⓒ시사IN 윤무영최영미 시인의 문단 내 성폭력 고발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는 문장을 떠올린다.

그런 전 세계적인 연결을 떠올리면 당연히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 앞으로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문단 내 성폭력 연쇄 증언 이후 2년 동안 변화가 있긴 있었나, 새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때 그런 일이 있었어?’라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음은 물론이다. 내가 경험한 지난 2년 동안의 일은 다음과 같다.

몇몇 계간지에서 송년회를 겸해 열던 저녁 행사가 하나둘 없어졌고, 술자리에서 이제 누구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요즘 그런 말, 그런 행동 하면 큰일 난다’고 말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동안 한국 문학에서 볼 수 없던, 보기 어렵던 다양한 여성의 목소리와 소수자의 목소리를 담은 작품들이 활발히 생산되었고,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재평가받아야 할 작품과 평가받지 못했던 작품을 다시금 호명하는 비평 작업도 이루어지고 있다. 피해·생존·연대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담은 글을 쓰고, 직접 독립 잡지를 만들고, 좌담회를 열고, 대자보를 붙이고, 등단 제도와 문학 권력에 대한 성찰을 통해 또 다른 문학의 미래를 짊어질 각오를 다지고 있다. 젠더 폭력 문제에 예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일군의 젊은 작가들은 광장에 서고, 촛불을 들고, 차가운 바닷속에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한 낭독회를 지속하고, 강제 철거와 집행에 맞서는 공간으로 가서 보고 듣고 배우고, 무엇보다 인간의 과오와 인간의 긍지를 쓰고자 애쓰는 중이다. 퀴어문화축제에 가서 걷고 환호하고 몸을 흔드는 것으로 연대하고, 적폐 청산과 블랙리스트 진상 조사에 힘쓰고 있다. 또한 가해자들의 역고소에 맞서 홀로 어렵게 싸우며 버티고, 소송 중에 무너져 내릴 자신의 일상을 염려하여 숨어서 폭로와 욕을 일삼고 있다. 그러니까 그 후, 누군가는 계속해서 그 일을 하고, 누군가와 계속해서 그 일을 해야지 마음먹고 있다.

사라질지언정 증언하고자 했던

수전 손태그는 타인의 고통 앞에서 연민보다 필요한 건, 내가 연루됐다는 걸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6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위계폭력 재발 방지를 위한 운동은 이 ‘연루되어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라는 기초를 잊지 않으며 ‘지금도 여전히,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나아가고 있다. 최영미라는 이름은 어쩌면 2년 전 그때처럼 실시간 검색어에서 빠르게 사라질 것이다. 이름이 사라질지언정 그 이름이 증언하고자 했고 바꾸고자 했던 것은 ‘순삭(순간 삭제)’되는 게 아니다. 그런 걸 믿기에 “다 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 같이 바보가 되지는 말자.” 거대한 비극 앞에서 수전 손태그가 적어 내려갔던 이 말을 다시금 곱씹어본다.

기자명 김현 (시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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