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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를 흔든 ‘공정의 역습’

2018년 03월 05일(월) 제546호
천관율 기자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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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인천공항 비정규직 정규직화, 비트코인 논란에서 문재인 정부는 공정성 이슈로 공격받았다. 대중이 생각하는 공정함에 대해 들여다보았다.

‘공정’은 우리 시대의 성배다. 국가가 공정의 수호자가 아니라는 현실이 폭로되면서 2016년 촛불집회가 터져 나왔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논란은 시대정신의 시상대 꼭대기에 공정을 세웠다. 문재인 대통령은 2월9일 올림픽 개회식 사전 리셉션에서 세계 각국의 손님들을 앞에 두고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지난겨울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위해 촛불을 들었고, 이번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면서 공정함에 대해 다시 성찰하게 되었습니다.”

ⓒ시사IN 조남진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에 대한 공정성 논란은
2030 세대가 공정에 대한 감수성이 민감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1월25일 방송된 JTBC 프로그램 <썰전>은 단일팀 논란을 다뤘다. 출연자인 유시민 작가(노무현 정부 보건복지부 장관)는 “젊은 세대의 공정성에 대한 예민한 감각은 되게 좋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토론 파트너인 박형준 동아대 교수(이명박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도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 2030 세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공정함이다. 그 기준에서 얼토당토않은 일(단일팀)이 벌어진 것이다”라고 말했다. 노무현·이명박 두 정부를 대표할 만한 좌우 지식인이 손쉽게 의견 일치를 봤다. 청년 세대는 공정에 민감하고, 그건 좋은 일이다. 끝.

그러나 이것은 해피엔딩이 아니다.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무엇이 공정인가? 사람들은 어떨 때 공정하다고 느끼고 무엇을 불공정하다고 느끼나? 간단해 보이는 질문이지만 답하기는 대단히 복잡하고, 거기서부터 놀랍도록 풍부한 이야기가 풀려 나온다. 그러니까 이것은 우리 시대를 휩쓴 공정의 역습에 대한 이야기다.

최순실 국정 농단과 정유라 특혜 논란이라는 희대의 불공정 사태로 2016년 촛불집회가 폭발했고, 그 흐름에서 정권을 잡은 사람이 문재인 대통령이다. 공정 이슈가 터질 때면 청년 세대들은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내걸었던 슬로건을 떠올린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박형준 교수가 짚었듯 문 대통령은 공정의 아이콘이라 해도 좋은 위치에 있다.

그런데 출범 9개월 동안 문재인 정부를 가장 많이 괴롭힌 주제도 바로 이 공정이었다. 단일팀 논란은 정권 출범 이후 지지율을 가장 크게 떨어트린 이슈다. 지난해 연말에는 인천공항 비정규직 정규직화 문제가 뜨거운 감자였다. 시험과 같은 공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해주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연말연초를 강타한 비트코인 열풍은 또 다른 차원의 공정에 대한 감각을 반영했다. 개인이 자기 책임으로 투자하고 결과를 감수하는 게임의 룰은 ‘공정’하다. 그러므로 가상통화 시장에 대한 국가의 규제는 열린 기회에 대한 ‘불공정한 개입’으로 간주됐다.

ⓒ연합뉴스
2017년 5월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에서 열린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 행사에 참석했다.

여론의 심연에는 무엇이 있을까. <시사IN>은 데이터 분석 기업 아르스프락시아의 도움을 받아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인천공항 비정규직 정규직화’ ‘비트코인’ 세 주제에 대한 온라인 여론 지도를 그렸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세 이슈가 가장 뜨거웠던 시점인 2017년 11월23일부터 2018년 2월1일까지 해당 주제를 다룬 기사의 댓글을 수집했다. <연합뉴스> <조선일보> <한겨레> 세 매체 기사를 사용했다. 그 결과가 <그림 1>이다. 이슈 덩어리의 외곽에 있는 키워드는 담론에 끼치는 파장이 커서, 이 개념으로부터 담론이 퍼져 나가는 ‘격발 키워드’다. 가운데 있는 키워드는 담론이 결국 말하고픈 속내가 드러나는 ‘깔때기 키워드’다. 별개의 두 이슈에서 공통으로 중요하게 포착된 키워드도 있다. 서로 다른 이슈 덩어리를 연결하는 가교 구실을 한다.

<그림 1>에서 위쪽 단일팀 이슈 덩어리를 보자. 여론은 아이스하키 단일팀 남한 선수들을 정치 논리를 ‘강요’당해 ‘무시’받고 ‘희생’당한 ‘불쌍’한 피해자로 파악했다. 불공정의 희생자다. 북한 선수들이 공정한 자격을 갖추지 않았다는 대목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래서 담론이 모여드는 깔때기 키워드는 ‘공정’이었다. 

<그림 1>의 오른쪽 인천공항 비정규직 정규직화 이슈 덩어리에서는, ‘스펙’도 없고 ‘시험’도 거치지 않은 비정규직들이 정규직이 된다는 대목에서 여론이 격발했다. 그 결과 인천공항 기존 정규직은 역차별을 당한 피해자로 동정을 받았다. 온라인 여론 지형에서 정규직에 감정이입하는 보기 드문 예외를 만들어낼 만큼 공정의 위력은 강했다. 그래서 담론이 모여드는 깔때기 키워드는 ‘역차별’이었다.

<그림 1>에서 왼쪽 비트코인 이슈 덩어리에서는, 2030 세대가 희망을 가질 몇 안 되는 ‘시장’에 ‘정부’가 ‘규제’로 대응했다는 대목에서 여론이 격발했다. 물론 ‘투기’라는 여론도 만만치는 않지만, 이 기회 박탈 서사가 비트코인 여론 지형의 중요한 축이었다. 깔때기 키워드는 ‘희망’이었다.

노력하는 자에게 기회를 주는 공정한 관리자

셋은 별개의 사건이지만 중요한 키워드들을 공유한다. 단일팀과 비트코인을 이어주는 키워드는 ‘기회’다. 두 이슈는 기회를 박탈하는 정부의 불공정 개입 서사로 연결된다. 단일팀과 인천공항정규직화를 이어주는 키워드는 ‘노력’이다. 두 사건은 정부가 누군가의 노력을 배신하고, 노력하지 않은 이들의 무임승차를 조장한 사건으로 묶인다. 인천공항 정규직화와 비트코인을 이어주는 키워드는 ‘무능’이다. 정부는 무능한, 즉 자격 없는 이들의 부당한 특권을 조장했다. 동시에 공정한 기회를 보장함으로써 희망을 주어야 하는 정부의 역할에 무능했다.

별개의 세 사건을 관통하는 하나의 서사가 완성된다. 정부는 ‘노력’하는 이들이 보상받을 수 있도록 ‘공정’한 ‘기회’를 만들어낼 책임이 있다. 그렇지 않고 ‘무능’한 이들의 무임승차를 방조·조장한다면, 정부 역시 ‘무능’한 것이다. 이는 지지를 철회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취임 이후 문재인 정부를 뒤흔든 주요 사건들은 전혀 다른 영역에서 터져 나왔지만 한 꺼풀 벗겨보니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노력하는 이들이 보상받고 무능한 이들이 특권을 받지 않도록 하는 공정한 관리자.” 정부라면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는 온라인 여론의 기대다. 나무랄 데 없어 보이는 얘기다.

하지만 세계적인 게임이론 연구자인 최정규 경북대 교수(경제학)는 기자에게 흥미로운 말을 했다. “공정이란 게 좋은 말이기는 한데, 맥락에 따라 묘하게 현상 유지를 선호하고 개혁에 반대하는 논리가 된다.” 무슨 뜻일까. 비밀은 인간이 무엇을 공정하다고 생각하는가 하는 우리의 첫 질문에 숨어 있다.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 본사는 전남 나주혁신도시에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방 혁신도시로 본사를 이전한 공공기관은 해당 지역 인재를 30% 이상 뽑도록 하는 지역할당제를 도입했다. 공채 성적이 낮은데도 지역할당제 덕분에 광주·전남 지역 지원자가 한국전력에 합격한다면, 이것은 공정한가 불공정한가?

백인 여성인 셰릴 홉우드는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라 자력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텍사스 로스쿨에 지원했다. 그녀는 떨어졌지만 그녀보다 점수가 낮은 아프리카계·멕시코계 미국인이 합격했다. 소수인종 우대 정책(Affirmative Action) 덕이다. 마이클 샌델 교수가 책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소개한 사례다. 공정한가 불공정한가?

답은 공정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렸다. 노력해 기여한 만큼에 비례해 받는 것이 공정이라고 믿는다면, 두 사례는 모두 불공정하다. 성적이 더 좋은 지원자들이 자신의 노력과 무관한 이유로 탈락했으므로 노력과 보상이 비례하지 않는다. 이 “뿌린 대로 거둔다” 원리는 대단히 강력해서 무엇이 공정한지 판정하는 가장 직관적인 잣대가 된다. 우리는 이것을 ‘비례 원리’라고 부르자.

인간이라면 누구나 보편적으로 평등한 권리를 보장받는 것이 공정이라고 믿는다면, 두 사례는 공정하다. 사회구조적 차별에 노출된 집단에 우선권을 주어 보정하는 것은 보편의 원리에 맞다. 구조적 차별을 보정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불공정하다는 직관도 역시 강력한 잣대다. 이것을 ‘보편 원리’라고 부르자.

비례 원리와 보편 원리는 공정을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이지만, 서로 충돌한다. 어느 잣대를 쓰느냐에 따라 같은 사안을 놓고도 공정에 대한 판단이 달라진다. 실업자에게 복지 혜택을 주는 것은 공정한가? 대학에서 장학금을 줄 때 봐야 할 것은 학생의 성적인가 가정형편인가? 이건희 회장의 손자에게 무상급식을 줄 필요가 있나 없나? 무엇이 공정한지 판단하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우리 무의식은 비례 원리와 보편 원리 중 하나를 잣대로 쓴다. 하지만 우리는 잣대가 두 개이고, 그게 상충한다는 사실을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이것이 부끄러운 이야기는 아니다. 일류 연구자들도 빠지는 착각이다. 도덕 심리학의 슈퍼스타인 조너선 하이트는 사람들이 공정에 얼마나 민감한지 측정하는 연구를 했다. 이때 하이트는 평등(우리 용어로, 보편 원리)에 대한 질문만 배치하고 비례에 대한 질문을 빠트렸다. 그 결과 진보주의자들이 공평성에 훨씬 민감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보수주의자들의 쏟아지는 항의를 받고서야 하이트는 이 연구가 무엇을 놓쳤는지 깨달았다. 그는 이 오류의 과정을 베스트셀러 <바른 마음>에 기록했다.

보수주의자들은 보편적 권리보다 “뿌린 대로 거둔다” 원리에 훨씬 충실하고, 이쪽이야말로 공정의 본질이라고 믿는다. 미국 보수주의 풀뿌리 운동을 상징하는 ‘티파티’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구제금융이 한창이던 2009년 2월19일 태어났다. CNBC 기자 릭 샌텔리는 이날 생방송에서 무리한 대출로 주택을 산 사람들을 정부가 구제해줘서는 안 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 정부는 잘못된 행동을 부채질하고 있다. 당장 목이 말라도 참고 물을 소중히 지켜온 사람들에게 보상이 돌아가야 한다.” 비례 원리의 교과서에 실어도 될 문장이다.

이 돈키호테 같은 연설은 이후 10년간 미국 정치 지형을 뒤흔드는 시민운동으로 폭발했다. ‘티파티’의 뿌리는 진보파가 공정성을 훼손하고 있고, 그것을 막아야 한다는 강력한 도덕 감정이었다. 이 생방송에서 샌텔리는 자신에 차서 덧붙인다. “미국은 바로 이런 곳이다.” 이쯤 되면 비례 원리는 미국의 건국 정신이 되는데, 아주 틀린 말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AP Photo
미셸 바크먼 미국 하원의원(가운데) 등 공화당 소속 의원들이 티파티 회원들과 함께 시위를 하고 있다.

잣대가 두 개라면, 어느 쪽이 더 센가. 게임이론 연구자들이 만든 흥미진진한 게임이 이 질문에 답하는 데 유용하다. ‘최후통첩 게임’이라고 불리는 이 게임의 규칙은 이렇다. A와 B 두 사람이 있다. 둘에게는 얼마간의 돈이 주어진다. 이제 A는 이 돈을 어떻게 나눠 가질지를 B에게 제안한다(최후통첩). B는 A의 제안이 마음에 들면 받아들이고 돈을 나눠 갖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B는 제안을 거절한다. 이 경우 둘 다 한 푼도 갖지 못한다(<그림 2>). 우리가 A라면, 몇 퍼센트를 주겠다고 제안하는 것이 합리적일까?

B가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A가 얼마를 제안하든 수락할 것이다. 거절해서 한 푼도 못 받는 것보다야 나으니까. 이 사실을 A도 알기 때문에, A는 최소한의 액수만을 제안할 것이다. 돈이 10만원이라면, ‘9만원 대 1만원’을 제안해도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논리와 다르다. 실제 실험에서 A의 제안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할 경우 B는 꽤 자주 거절한다. 제안 금액이 20%를 밑돌 경우 거의 항상 거절한다. B는 자기 돈(제안을 수락했다면 받았을 돈)을 들여서라도 A의 불공정을 징벌하는 것이다. A도 B가 그럴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5만원 대 5만원’을 제안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9만원 대 1만원’ 제안은 논리의 세계에서 더할 나위 없이 합리적이지만 현실에서는 멍청이의 선택이다. 

B는 명백히 불공정에 분노했다. 그런데 B는 정확히 어떤 불공정에 화를 냈나? A가 비례 원리를 어겨서인가, 보편 원리를 어겨서인가? B는 인과응보주의자인가 평등주의자인가? 여기까지만 봐서는 구분할 수 없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실험경제학의 개척자인 버넌 스미스는 최후통첩 게임을 살짝 변형해봤다. 피험자들에게 상식 퀴즈를 풀게 한 후, 성적이 더 좋은 사람에게 제안자 A 역할을 주었다.

물론 상식 퀴즈는 최후통첩 게임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 하지만 이 경우 A의 제안은 눈에 띄게 불평등해졌다. 또한 B도 불평등한 제안을 더 많이 수용했다. 상식 퀴즈를 푼 것만으로, A와 B 둘 다 제안자라는 위치를 능력이나 노력에 따른 보상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 간단한 개입으로, 평등주의는 사라졌다. 이제 A가 더 많은 돈을 가져가는 것이 ‘공정’해진다.

공정에 대한 감각의 진화적 기원은 속임수 탐지 기능으로 알려져 있다. 상대가 나를 속이는 사실을 알아채야 살아남을 수 있는데, 이를 위해 공정에 대한 감각이 예민해졌다는 얘기다. 이를테면 무임승차와 같은 속임수를 방치해서는 내 생존(때로는 내가 속한 집단의 생존)이 위태롭다. 즉, 공정이란 평등 애호가 아니라 일종의 속임수 탐지-징벌 메커니즘이다. 그래서 우리는 불공정을 감지했을 때 화를 내고, 자기 손해를 감수하며 최후통첩을 거절하고, 단일팀에 악플을 단다. 실수를 알아차린 이후 조너선 하이트는 공정을 측정할 때 비례 원리만 적용하고 보편 원리는 아예 빼버렸다.

이것은 비례 원리가 논리적으로 더 타당한 공정성의 기반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 뇌는 공정을 평가할 때 직관적으로 비례 원리에 기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논리적으로 모순이 발생할 때조차도 그렇다. <한겨레>와 여론조사기관 글로벌리서치는 1월23~25일에 ‘2018년 유권자 인식 여론조사’를 했다. 여론조사는 비정규직 정규직화 문제를 두고 두 가지 주장을 던진 후 각각 찬반을 물었다. 첫째, “하는 일이 동일하다면,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 정규직과 동일하게 대우해야 한다.” 둘째, “어렵게 취업을 준비해 정규직으로 입사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비정규직의 차등 대우는 불가피하다.”

논리만 보면, 첫째 주장에 동의한 응답자가 둘째 주장에도 동의하기는 매우 어렵다. 둘째 주장은 하는 일과 무관하게 입사 경로만으로 차등 대우가 가능하다는 의미인데, 첫째 주장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두 주장에 대한 찬반 응답 비율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나와야 모순이 없다.

공정에 대한 감각은 생존 위한 진화의 산물

“하는 일이 동일하다면,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 정규직과 동일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첫째 주장에 대해 81%가 동의했고 19%가 반대했다. 그렇다면 “어렵게 취업을 준비해 정규직으로 입사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비정규직의 차등 대우는 불가피하다”는 둘째 주장에는 반대가 더 높아야 한다. 하지만 결과는 동의 61.3% 반대 38.7%였다. 첫째 주장만큼은 아니라 해도, 동의한다는 응답이 다수파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어긋나는 첫째 주장과 둘째 주장에 모두 동의한 응답자가 상당히 많았다는 의미다.

어떻게 두 주장에 모두 동의할 수 있을까? 문항 구성을 보면, 둘은 상반된 주장을 하고는 있지만 결정적인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비례 원리에 호소한다. 첫째 주장은 ‘하는 일이 동일하므로 대우도 동일하게’라는 비례, 둘째 주장은 ‘들어올 때의 노력이 다르므로 대우도 다르게’라는 비례를 내세운다. 비례가 성립하는 순간, 둘 다 공정성의 기준을 만족한다. 그 위력은 논리의 어긋남을 무시할 만큼 강력하다.  

우리 뇌의 마법은 하나 더 있다. 우리는 무언가를 가만히 놓아두어서 생기는 문제(부작위)와, 무언가 건드려서 생기는 문제(행위) 중에, 행위 쪽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뇌신경과학자이자 도덕철학자인 조슈아 그린은 책 <옳고 그름>에서 이렇게 쓴다. “행위는 감각운동 방식으로 표상하는 반면, 부작위는 더 추상적인 방식으로 표상한다. 우리 뇌는 감각운동 장치로 진화한 것이지 추상적 사고 장치로 진화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부작위는 정서적 도덕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 뭘 놔둬서 저지른 잘못과 뭘 해서 저지른 잘못 중 우리의 도덕 직관이 후자를 더 나쁘다고 보는 이유는, 도덕철학의 논거가 있는 게 아니라 그저 뇌의 기능 때문이라는 얘기다.

이제 담론 지도(<그림 1>)가 훨씬 풍부하게 읽힌다. 정부가 “노력하는 이들이 보상받고 무능한 이들이 특권을 받지 않도록 하는 공정한 관리자”가 되라는 요구는 이런 뜻이 된다. 정부는 게임의 과정에서는 비례 원칙을 수호하는 심판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게임의 결과가 나온 후에는 사후 개입을 하지 않아야 한다.

비례 원리와 불개입 선호라는 공정성의 두 기둥은 진보적 지식인들에게도 환영받았다. 유시민 작가는 “되게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는 1월31일자 <중앙일보> 칼럼에서 단일팀에 대한 반발을 “국가·국익을 위해 개인의 인권·꿈·노력의 일방적 희생은 강요될 수 없다”라는 맥락으로 읽었다. 50대 이상 진보 지식인들은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서 국가의 무분별한 개입이 후퇴하고 개인의 권리가 강화되는 현상을 높이 평가했다. 공정이라는 시대정신은 분명 이런 면을 갖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최정규 교수가 “현상 유지의 논리”라고 짚어낸 동전의 뒷면도 말해야 이야기가 완성된다. 이것은 국가와 개인의 관계와는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 구조적 불평등에 개입할 권한에 대한 이야기다. 최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터져 나오는 공정의 정신을 끝까지 밀고 가면, 현재 상태가 정당하며 모든 재분배는 불공정하다는 논리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자원의 재분배를 동반하지 않는 개혁은 없다. 정부가 무슨 정책을 내놓든 현상 변경 시도일 수밖에 없는데, 그것들이 전부 불공정 딱지가 붙을 때 정부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된다.”

ⓒ시사IN 이명익
2016년 12월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6차 촛불집회.

비례 원리는 재능과 운의 불균등 분포라는 구조적 조건에 대체로 눈을 감는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비를 벌기 어렵다는 조건도, 여성이 사회에서 겪는 유무형의 차별과 배제도, 소수 인종이 만나는 보이지 않는 장벽도, 같은 일을 하면서도 신분이 비정규직이어서 겪는 부당함도, 극단적 비례 원리의 세계에서는 고려되지 않는다. 담론 지도(<그림 1>)는 ‘게임 도중’과 ‘게임 이후’에 대해서는 말하지만 ‘게임 이전’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는다. 구조적 불평등을 국가가 교정하는 모든 시도는 불개입 원칙으로 막아선다. 심지어 비트코인과 같은 확실한 과열 현상마저도 불개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만만찮게 올라왔다. 섬세한 균형감각과 표현의 온건함을 모두 내던지고 이런 태도를 극단까지 밀고 가면? ‘일베’가 나온다.

전성기 일베 담론체계의 핵심은 약자·소수자에게 덮어놓고 비례 원리를 적용하는 저돌성에 있었다. 일베의 ‘삼대 주적’인 여성·진보·호남은 모두 자격 없는 무임승차자로 간주된다. 여성은 데이트 비용을 내지 않고 남자를 등쳐먹고, 군대도 안 가면서 시민권은 다 누린다. 진보는 제 능력으로 성공하는 대신 국가에 떼를 쓰고, 호남은 자기들끼리만 뭉쳐서 뒤통수를 친다. 일베의 눈에, 다들 비례 원리를 어겼다.

국가 건설의 주역은 남성·산업화 세력·영남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대한민국의 주류가 되었다. 그런데 여성·진보·호남이 비주류의 권리를 내세워, 기여한 것보다 더 큰 보상을 요구한다. 2등 시민이 특권층이 되었으므로 불공정하다. 이들을 향한 혐오는 무임승차에 대한 분노이므로 공정하다. 일베는 마치 최후통첩 게임에서 10만원 중 2만원을 제안받은 B가 된 듯 ‘정의로운 분노’를 휘둘렀다. 반면 남성·산업화 세력·영남에는 유별나게 관대했는데, 이것은 마치 상식 퀴즈를 더 잘 푼 A가 1만원만 제안해도 고분고분 받아들이는 B와도 비슷했다.

일베가 비례 원리와 무임승차 징벌이라는 보편적 도덕 감정에 정확히 호소했을 때, 그 혐오 발화에도 불구하고 보수주의자들의 은밀한 지지를 얻었다. 최전성기의 일베는 거대한 비극의 희생자인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두고도 ‘기여한 바 없이 과도한 보상을 받는 특권층’ 담론을 만들어내는 마법을 부렸다. 반대편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자격 있는 희생자’ 천안함 유가족을 배치했다. 비례 원리와 무임승차자 처벌이라는 인간 본연의 도덕 감정이 과잉 작동하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일베는 단절된 예외라기보다는 연속선 위의 극단이었다.

조너선 하이트는 공정성 연구에서 보편 원리를 덜어내며 비례 원리의 승리를 선언했지만, 보편 원리가 허위의식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평등을 중시하는 태도 역시 강력한 본성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무리를 지어 살면서 압제자의 지배를 받곤 했다. 하이트는 이렇게 쓴다. “압제의 고통은 혼자 받지 않는다. 군림하려는 자가 나타나면 사람들은 압제를 받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평등한 관계로 뭉쳐 저항한다. 프랑스 혁명도 이와 비슷했으니,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우애와 평등을 외쳐야 했다.” 압제를 싫어하는 태도에서 평등을 선호하는 본성이 싹텄다는 주장이다.

인간에게는 위험 회피 편향도 있다. 앞면이 나오면 100만원을 잃는 반면 뒷면이 나오면 150만원을 얻는 동전 던지기 도박이 있다. 확률과 기댓값 계산은 이 도박에 “참여하라!”고 외친다. 하지만 실제 인간은 참여하지 않겠다는 게 보통이다. 같은 값이라도 사람은 기회보다 위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위험 회피 편향은 보편 원리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기 쉽다. 비례 원리를 밀고 나가다 보면 심대한 불평등도 용인하는 결론이 나오는데, 불평등한 사회에서 언제라도 나락에 떨어지기 쉽다는 위험은 불평등한 사회가 제공하는 기회보다 더 크게 다가온다. 이 위험을 회피하려면 더 평등한 사회를 지지해야 한다. 이 본능적 아이디어를 고도의 정치철학 원리로 승화시킨 고전이 존 롤스의 <정의론>이다.

보편 원리가 공정을 둘러싼 싸움을 압도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링에서 쫓겨날 정도는 아니다. 2015년 <시사IN> 신년 여론조사에서는, 내용상 동일한 질문을 ‘복지’와 ‘사회안전망’으로 이름만 바꿔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결과는 1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났다. 여론은 복지보다 사회안전망에 호의적이었다. ‘복지’는 시혜를 떠올리게 만들어 비례 원리를 자극한다. 반면 ‘사회안전망’은 위험 회피 편향을 일깨우면서 비례 원리를 잠재우는 것 같다.

인류사 내내 비례 원리는 분명 진보적인 아이디어였다. 권력자들이 공정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내세우던 힘의 원리, 태어난 핏줄만으로 운명이 결정되던 혈통의 원리에 비하면,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상하는 비례 원리는 탁월한 진보였다.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뛰어넘는 힘이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사회의 차별이 크게 개선되면서, 이제는 오히려 능력주의가 불평등을 강화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비례 원리가 인류의 진보에 따라잡힌 셈이다. 경제학계의 거장인 케네스 애로와 새뮤얼 볼스가 함께 쓴 <Meritocracy and Economic Inequality(능력주의와 불평등)>가 이 주제를 다룬다.

한국 보수 주류는 불공정 사태의 공동 책임자


그래서 비례 원리와 보편 원리의 단층선은 현대 보수 세력에게 중요한 기회를 제공한다. 비례의 원리와 불개입 선호는 현대적 보수 이념을 구성하기에 매우 적절한 소재다. 작은 정부, 감세, 시장 자유 등 보수의 핵심 가치는 비례 원리와 정부의 불간섭을 요구한다. 그러나 한국 보수의 주류는 최순실·정유라로 대표되는 희대의 불공정 사태의 공동 책임자다. 정씨가 페이스북에 남겼던 “돈도 실력이야. 너네 부모를 탓해”라는 말은 비례 원리는커녕 힘의 원리와 혈통의 원리를 날것으로 보여준다. 지금 자유한국당에 비례 원리의 대변자 역할을 맡길 유권자는 많지 않다. 박근혜 국정 농단 사건 이후, 한국 보수 주류는 ‘비례 원리 이전 시대’에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자유한국당은 단일팀 파동 때도 반(反)북한 정서에나 기댈 뿐 공정의 깃발을 들지 못했다.

2016년 촛불 서사의 핵심에는 공정, 그러니까 비례 원리가 무너졌다는 시민의 강한 합의가 있었다. 이 붕괴는 보수적인 시민들이 오히려 더 견디기 어려울 사건이었다. 촛불 이후 한국 정치 지형에서는 비례 원리를 배타적으로 대변할 세력이 사라져버렸고, 정치의 선택지는 실질적으로 문재인 정부 지지와 무당파 둘밖에 남지 않은 구도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문재인 정부는 비례 원리와 보편 원리 두 축을 모두 포괄하는 폭넓은 지지 기반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둘의 충돌은 본질상 피하기 어렵다. 8월로 예정된 대입제도 개편안 발표가 당장 다음 위험지대다. 한국 사회에서 수능은 비례 원리의 성지다.

공정이 시대정신으로 우뚝 선 지금, 진보주의자들은 ‘공정의 역습으로부터 보편 원리를 구원하는’ 과제를 받아들었는지도 모른다. 앞서 이 과제를 예민하게 느꼈던 정치인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진보의 미래>는 퇴임 후 진보주의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면서 책을 쓰려던 노 전 대통령의 육성 기록이다. 갑작스러운 서거로 날것의 육성 그대로 출판됐다. 노 전 대통령이 임기 5년을 복기하며 거듭한 고민을 우리 용어로 바꾸면, ‘보편 원리를 어떻게 작동시킬 것인가’였다. 노 전 대통령은 그것이 진보주의의 본질이라고 보았다.

ⓒ연합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공정과 관련해 ‘보편 원리를 어떻게 작동시킬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는 비례 원리보다 보편 원리가 우선이라고 봤다. “불평등과 지배가 없으면 자유의 문제는 없다. 평등이 기본이다(92쪽).” “평등을 강조할수록 생존권 차원에 있는 사람들은 자유가 신장되는 것이다(137쪽).” “진보와 보수가 가장 타협 없이 싸우는 쟁점은 국가가 분배에 얼마나 깊이 개입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97쪽).” 그가 생각한 진보주의자의 국가란 비례 원리를 큰 틀에서 존중하되(그는 시장주의와 공정 경쟁이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라고 봤다), 개입을 통해 평등을 강화할 책무를 진다. 

문재인 정부가 만난 일련의 ‘공정 스캔들’은 아주 의미심장한 예고편이었다. 진보 정부가 반(反)시장 정부는 아니다. 하지만 진보 정부란 정도야 어쨌든 결과에 개입하는 정부이고, 현재 구조의 변경을 시도하는 정부다. 비례 원리와 보편 원리의 단층선은 결국 임기 내에 중대한 균열로 떠오를 수 있다. 단일팀 파동으로 빠진 지지율은 일시적이겠으나, 이 잠재적 균열이 진정으로 중대하다는 징후는 일시적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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