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첫날인 2월15일,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박 아무개씨(27)가 입사 5개월 만에 송파구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박씨가 아파트에서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숨진 박씨의 남자친구는 익명 페이스북 계정 ‘간호학과, 간호사 대나무숲’에 “‘태움’이라는 것이 여자친구를 벼랑 끝으로 몰아간 요소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라고 적었다. ‘태움’이란 ‘재가 될 때까지 영혼을 태운다’는 뜻으로, 선배 간호사가 신입 간호사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압박을 가하는 것을 가리키는 은어다. 입사 5개월이 된 간호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991년생 박씨는 고등학생 때 아버지를 잃고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이후 간호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간호학과에 진학해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다.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뒤 2017년 9월 서울아산병원 간호사로 입사했다. 더 많이 배우고 싶다며 대형 병원에서도 고된 부서 중 하나인 중환자실을 지원했다. 평소 “나 장학금 탔어, 잘했지?” “나 좀 예쁘지?”라며 엄마와 두 이모에게 애교를 부리던 첫째 딸 박씨는 가족들 사이에서 ‘잘난 척 대마왕’으로 통했다. 서울아산병원에 처음 들어갔을 때만 해도 “선생님들이 나 잘한대”라며 자신감이 넘치던 박씨였다.

그랬던 박씨가 입사 한 달이 지나면서부터 조금씩 변했다. ‘엄마가 세 명’이라고 할 정도로 두 이모와 가까이 지내던 박씨는 주로 작은 이모에게 전화로 “내가 손이 느린 것 같아” “자꾸 깜빡 잊어” “(환자) 인계를 하는데 뭘 빠트렸어” “나는 아무것도 몰라” “머리가 나쁜가 봐”와 같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박씨의 작은 이모는 〈시사IN〉과 만나 “조카가 처음 입사하던 9월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다. 처음부터 잘 배웠으면 더 잘할 텐데 처음에 (선생님한테) 제대로 못 배운 것 같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박씨는 “하루 다른 선생님에게 배웠는데 엄청 많은 걸 배웠다”라고 어머니에게 말한 적도 있다고 한다.

여기서 선생님이란 말은 ‘프리셉터(preceptor)’라 불리는 사수 간호사를 의미한다.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 간호사들은 첫 2~3개월 동안 자신에게 배정된 프리셉터로부터 1대1 도제식 교육을 받은 뒤 바로 환자를 담당하는 간호사로서 독립한다. 서울아산병원 내과계 중환자실의 경우 1인당 중환자 3명을 맡는다. 신입 간호사는 3개월간 교육을 받은 뒤 바로 1인당 환자 3명을 담당하는 구조였다.

“처음부터 잘 배웠으면 더 잘할 텐데…”

신입 간호사 교육을 위해 인력을 따로 배치하거나 업무를 줄여주는 것은 아니다. 프리셉터는 자신의 환자를 온전히 돌보면서 신입 간호사를 가르치는 일도 해야 한다. 애초에 프리셉터의 교육이 차분하고 충실하게 이뤄지기 어려운 구조다. 프리셉터에 따라 받을 수 있는 교육의 양과 질도 천차만별이다.

3교대 근무를 하며 이브닝(저녁) 근무 때는 오후 1시에 출근해 다음 날 새벽 1시, 2시, 늦으면 5시에 들어왔다. 하루에 서너 시간밖에 자지 못하고 끼니를 자주 걸러 몸무게 5㎏이 빠졌다. 박씨는 자신이 부족하고 배우지 못했다고 느끼는 부분을 공부로 메우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씨의 큰 이모는 “어느 순간부터는 공부한다는 말밖에 안 했다. 공부해야 해서 쉬는 날에도 집에 못 온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애가 실수하면 지레 겁을 먹어서 밥을 먹으래도 안 먹고 늦게 남을 필요가 없다 해도 혼자 늦게까지 남아 있었다’고 설명하더라. 아무리 그래도, 혼나니까 밤 10시 퇴근할 애가 새벽 5시까지 남아 있지 않았겠나”라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에 따르면 박씨는 3개월 하고도 1주일 뒤 ‘독립’했다.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고 느낀 상황에서 환자를 책임지게 되었다. 박씨는 언젠가부터 “불안하고 심장이 떨려 출근하기 싫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숨지기 직전 한 달 동안은 부쩍 “소송이 걸릴 수도 있다. 의료사고를 내면 특히 신입 간호사들은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라는 말을 했다고 작은 이모는 전했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고를 두고도 “저런 일이 있으면 신입 간호사가 책임을 져야 될지도 몰라”라는 이야기를 어머니와 주고받았다고 한다.

박씨는 병원을 그만두는 것을 고민했다. 지난 1월 작은 이모는 조카에게 힘들면 그만둬도 된다고 이야기했지만 박씨는 다시 출근을 했다. 2월13일 박씨는 작은 이모에게 퇴사 문제를 의논했다.

이모에게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했던 2월13일 박씨는 근무 중 환자의 몸 자세를 바꿔주다 담즙을 빼내는 배액관을 실수로 빠지게 했다고 한다. 다음 날 오전 박씨는 “나 좀 심한 사고 쳤어. 어쩌면 좋지. 어제 늦게 왔어 다섯 시…? 진짜 큰일이네”라는 카카오톡(카톡)을 남자친구에게 보냈다. 놀라서 박씨를 보러 간 남자친구는 “2년 동안 만나면서 그렇게 무서워하던 얼굴은 처음이었다”라고 페이스북에 적었다. 그날 저녁 박씨는 병원 수간호사, 프리셉터와 만났다. 돌아온 뒤 남자친구와 함께 12시간을 뜬눈으로 의료 소송 관련 검색만 했다고 한다.

오전 7시 남자친구와 헤어진 박씨는 오전 8시쯤 ‘병원에 반납하지 못한 약이 있다’며 남자친구를 불러 약을 맡겼다. 그리고 오전 10시17분 휴대전화 메모장에 이렇게 적었다. “처음 입사하였을 때의 마음이 기억납니다. 업무에 대한 압박감,  선생님의 눈초리, 의기소침해지고 불안한 증상이 점점 심해졌습니다. 님 및 선생님들께 상담을 요청했을 때 할 수 있다 라는 말로 버텨왔습니다. 하루에 서너 시간의 잠과 매번 거르게 되는 끼니로 인해 점점 회복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미처 완성되지 못한 메모를 쓴 지 23분 뒤인 오전 10시40분께 박씨는 투신했다.

ⓒ고 박 아무개씨 측 제공2월15일 박 아무개 간호사가 휴대전화에 남긴 메모.

박씨가 그간 남자친구에게 보낸 카톡을 보면 지난 다섯 달 동안 그녀가 무너져가는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진짜 나 넘나 힘들어ㅠㅜㅠㅜ 하아... 진짜 못할꺼 같아... 어떠카지...” “그냥 너무 자존감이 떨어졌어 죽을꺼 같앙.... 진짜 힘들어 진짜 난 왜케 멍청한가 싶고” “일단 해볼께 모르겠어 사실 할 수 있을지 오늘 엄청 혼날 듯” “하 진짜 너무 두렵다 그만두구 싶다 근데 그만둬도 문제다 뫼비우스의 띠 같아ㅠㅜ” 

서울아산병원은 박씨의 죽음이 ‘태움’과 관련 있다는 지적이 나온 직후 “(자체 조사 결과) 태움과는 관련이 없다” “집단 괴롭힘, 인격 모독은 없었다”라고 해명했다. 고인을 두고 “예민한 성격이라 더 신중하게 가르쳤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박씨의 작은 이모는 말했다. “병원은 왕따는 없었다는 식이지만, 그렇게 당당했던 우리 조카가 ‘난 아무것도 모르는 거 같아요’라고 말하게 된 아산에서의 시간이 한 영혼을 재가 되게 한 것 아닌가.”

박씨의 큰 이모는 “프리셉터 개인의 처벌보다도, 우리 아이의 죽음으로 간호사들의 현실이 조금이라도 개선되면 좋겠다. 예민한 아이여서가 아니라 병원에서 일하다 죽었다는 걸 병원이 인정하고 책임지고 사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는 프리셉터가 제대로 교육했는지, 퇴사 상담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실수 뒤 소송 가능성을 언급했는지 등에 대해 “조사 중이다”라고 말했다. 유족이 요구하는 ‘고인의 명예회복과 사과, 책임 인정,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대해서는 “유족 편에서 고민 중이다”라고만 말했다.

ⓒ시사IN 신선영서울아산병원 내과계 중환자실(위)의 경우 1인당 중환자 3명을 맡는다.
박 아무개씨는 3개월1주간 도제식 교육을 받은 뒤 중환자 3명을 책임졌다.

박씨의 죽음 뒤 간호사들이 모인 페이스북 계정에는 ‘나는 너다. 그녀의 죽음은 곧 우리의 죽음이다’라는 문구와 함께 각자의 태움 경험이 올라오고 있다. 최원영 서울대병원 간호사는 “태움의 본질은 환자를 매개로 해서 신규 간호사들의 불안감·죄책감을 증폭시키며 정신적인 고문을 가하는 데에 있다. 고작 두 달여 동안 교육을 받고 환자 여럿의 생명을 책임지게 되는 중압감 속에 내던져진다. 애초 간호사가 여러 환자를 동시에 돌보면서 각 환자의 상태 체크, 투약 등 엄청난 양의 일을 떠맡아야 하는 구조에 문제가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경력 1년 미만 간호사의 평균 이직률 33.9%
 

ⓒ고 박 아무개씨 측 제공박 아무개 간호사는 입사 후 남자친구에게 업무 압박감을 토로하는 카톡을 보냈다.

간호사들의 만성적인 초과 노동은 병원들이 충분한 인원을 고용하지 않는 것과 관련 있다. 2014년 기준 의료기관에서 활동 중인 간호사는 인구 1000명당 2.29명으로 OECD 평균(7명)을 크게 밑돈다. 일은 힘든데 노동량에 비해 보상이 낮으니 경력 1년 미만 간호사의 평균 이직률이 33.9%에 달한다(2015년 대한간호협회). 간호사 면허 보유자 34만명 중 병원에서 근무하는 인력은 18만명에 불과하다.

이상 징후가 없었던 건 아니다. 전남대병원에서는 2005년과 2006년, 2016년 연이어 수술실 간호사 세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년차 간호사 한 명과 경력 10년차 이상 베테랑 간호사 두 명이었다. 김혜란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전남대병원지부장은 “신입들은 아무리 가르쳐줘도 처음엔 못 알아듣고 헤맬 수밖에 없는데, 인력이 충분하지 않아 숙련될 때까지 기다려줄 수 없는 구조다. 아산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재수 보건의료노조 정책기획실장은 “임신순번제,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고, 밀양 세종병원 화재 등 간호사와 관련된 최근 일련의 사건들은 양태는 다르지만 그 배경에는 결국 인력 부족과 노동환경의 문제가 있다. 개별 병원이 충분한 인력을 고용하고 제대로 된 보상체계를 만들어야 하며, 국가도 간호 인력의 부족과 이들의 노동강도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다할 의무가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경우 중환자실 간호사 1명이 환자를 2명 이하만 담당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영국은 인공호흡기 적용 환자는 간호사 한 명이 환자 한 명을 담당하고, 체외막산소화장치(ECMO) 적용 환자는 간호사 두 명이 환자 한 명을 담당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한국 중환자실은 간호사 1명이 보통 환자 3~4명, 많게는 5명을 맡는다.

“제 자신이 해야 하는 일, 하고 싶은 일에 있어서는 차선이 아닌 최선을 다하는 사람임을 확신합니다.” 박씨가 적은 자기소개서에 나오는 문장이다. “어느 자리에 있든, 질병 혹은 상해라는 시련 과정 속에 있는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든든한 지원군이자 기댈 수 있는 버팀목과 같은 간호사”가 되길 꿈꿨던 박씨는 국내 최대 병원 중환자실에서 5개월 동안 배움에 목말라하다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진 끝에 목숨을 끊었다. 가족들이 골라준 흰 블라우스와 검은색 정장을 입고 찍은 취업 사진은 영정 사진이 되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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