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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하나가 통째로 사라졌다. 왜?

2018년 03월 09일(금) 제546호
환타 (여행작가)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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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마을 하나가 통째로 사라져버렸다. 마을이 있던 자리에는 ‘유적 발굴 예정’이라는 간판과 함께 사원 터의 기둥이라는 구조물이 하나씩 꽂혀 있다.

지금 이야기하는 곳은 남인도 지역의 ‘함피’라는 작은 마을이다. 14~17세기에 실존한 힌두제국 비자야나가르 왕조의 수도였던 곳이다. 비자야나가르는 당시 남인도에서 거의 유일한 힌두제국이었고 중개무역으로 번영을 누렸다고 한다. 중개무역으로 재미를 보는 곳은 늘 주변 국가들로 하여금 점령 야욕을 불러일으킨다. 비자야나가르도 결국 이웃한 5개 이슬람 연합군대에 멸망당하고 만다. 왕국은 이들 군대에 철저히 수탈당하고, 역사 속에서 잊혔다.

ⓒ환타 제공
남인도 함피 비루팍샤 사원 인근의 철거된 마을 모습.

이 마을의 기괴함은 1970년대 ‘히피 트레일’을 따라 여행을 하던 이들을 통해 처음 알려졌다. 이후 여러 차례 해외 언론의 주목을 받은 끝에 1986년 유네스코는 함피 유적지 일대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다. 수많은 여행자들이 몰려들었고, 수도였던 시절 왕궁 사원인 비루팍샤 사원 주변 마을은 숙박업을 겸하기 시작했다.

1997년 함피를 처음 방문했을 때 나는 옥상에 깔린 매트리스에서 1인당 30루피(약 499원)의 요금을 내고 잠을 잤다. 얼굴에는 밤새도록 서걱서걱 먼지가 끼었지만, 눈만 뜨면 별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때마침 인도 전기도 참 잘나가던 시절이었다. 2001년 다시 함피를 방문했을 때는 많은 집이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아 게스트하우스 영업을 하기 시작했다. 규제가 거의 없는 한국과 달리 인도의 게스트하우스는 호텔과 같은 숙박업으로 분류되며 다양한 법적 규제를 받는다. 정식 숙박업의 영역으로 들어온 셈이다. 의아했다. 상식적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 특정 반경 안에서는 상업적 활동을 할 수 없다. 그런데 지정된 문화유산과 직선거리 30m도 안 되는 곳에 여행자 거리가 생겨났다.

숙소들은 경쟁하기 시작했다. 개발 제한에 걸려 신축과 증축이 금지된 상태에서 마을 사람들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많은 주민들은 은행으로부터 빚을 내 에어컨을 설치하고 방을 리모델링했다.

함피의 난개발은 유네스코를 자극했다. 중국을 향해서도 많이 쓰던, ‘자꾸 이러면 등재를 취소하겠다’는 경고를 보냈다. 유네스코의 힘은 강력했다. 인도 정부는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2013년부터 강제 철거가 시작됐다. 마을의 집들이 열 채, 스무 채씩 월 단위로 헐려 폐허가 되었다. 한국이라면 보상 문제가 생길 사안이지만, 인도의 시골 촌로들에게 국가에 대항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마을 촌로들은 지금도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뭔지 정확히 모른다.

누가 악당인지 지목하기 어려운 기괴한 부조리극

강제 철거가 계속되자 여론이 나빠졌다. 지난 1월 인도 정부는 여론을 의식해, 이미 철거한 곳은 어쩔 수 없지만 아직 철거되지 않은 집들은 상업적 활동을 할 수 없다는 조건으로 다시 거주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최근 다시 함피 마을을 방문했다. 마을은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전에 있던 집들 대다수가 사라졌다. 나머지 집들도 간판을 모두 지운 채 간신히 살아남았다. 강제 철거로 사라진 마을 터에는 ‘유적 발굴 예정’이라는 안내문과 여행자를 속이려는 듯한 가짜 기둥이 들어섰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이래 30여 년 동안 이 마을에서는 누가 악당인지 지목하기 어려운 기괴한 부조리극이 한바탕 벌어졌다. 이 글을 끝낼 즈음, 과거 숙박업을 했던 마을 노인 한 명의 자살 소식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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