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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트럼프를 지지하겠다

2018년 03월 23일(금) 제548호
문정우 기자 w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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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과 관련한 가장 큰 의문은 북핵과 미사일은 도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하는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퍼즐을 맞춰보아도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많다. 경제력이나 재래식 무기에서 절대 우위에 있는 미국과 한국을 상대로 전쟁 억지력을 확보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라고 단순하게 보기는 힘들다. 핵을 개발하기 전에도 북한은 한국 국민 전체와 미군을 장사정포와 미사일, 심지어는 생물화학무기의 사정권 안에 가둠으로써 수십 년간 성공적으로 선제공격당할 위험을 제거해오지 않았던가. 사생결단을 할 생각이 아니라면 미국이나 한국이 북한에 선전포고를 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 ‘전 세계에서 핵 폭력을 휘두르는 미국에 맞서기 위한 정의의 보검(북한식 표현이다)’을 가지려 한다고 믿기도 힘들다. 중동의 일부 반미 무슬림은 북한에서 핵실험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환성을 지르지만, 자기 코가 석 자인 북한이 전 세계 약자를 대표해 미국과 맞서려고 할 리는 없다. 그런데도 인민을 굶겨가며 굳이 핵과 미사일에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리송하다.

ⓒ한성원 그림
미국이나 한국 보수 강경파의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동안 미국 상·하원 청문회나 보수 언론 지면에서 그들이 해온 얘기는 대동소이하다. 이를 테면 이런 거다. ‘언제나 흔들림 없는 북한의 목표는 단 두 가지이다. 체제 유지와 남한을 그들의 체제로 흡수 통일하는 것이다. 특히 남한 인민을 해방시키는 마지막 목표를 위해서라면 그 과정은 얼마든지 유연할 수 있다. 그들은 핵을 통해 미국에 접근해 체제 유지를 강고히 하고 한·미 동맹에 쐐기를 박아 균열을 내고 싶어 한다. 한국을 미국 손아귀에서 떼어내 한국에 대한 지배력을 차츰 강화해가겠다는 것이 그들이 핵과 미사일을 앞세워 미국에 접근하려는 근본 이유이다.’ 아마 통일대교에 드러누웠던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생각도 비슷할 것이다.

미국과 한국의 강경파가 이런 생각을 하는 데는 까닭이 있다. 북한은 이미 그런 의도를 드러낸 예가 있다. 1976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박정희 정권의 인권 탄압을 규탄하며 주한 미군 철수를 공약했던 민주당 지미 카터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하자 북한은 미국과 직접 대화를 시도했다. 북한은 카터 대통령의 주한 미군과 핵무기 철수 계획을 환영한다며 한반도에서 평화를 정착하기 위한 협상을 당장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조건이 있었다. 한국 측은 이 협상에 나중에 참여해야 하며, 한국 측 대표는 한국 정부가 아닌 북한이 지명하는 정치나 사회집단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강경파들은 상황이 유리해지자 북한이 성급하게 본색을 드러냈다고 생각했다.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4자회담을 염두에 뒀던 카터 행정부는 북한이 협상에서 한국은 빠져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자 주한 미군 철수 계획을 철회하고 대화를 중단했다. 이런 전례가 있기 때문에 지금도 트럼프 대통령 주변 장성들 가운데는 북한의 평화 공세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미국과 한국 협상파들의 생각은 달랐다. 1970년대까지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소련과 동구권이 몰락하고 냉전이 끝난 뒤 북한 처지는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주장을 간추리자면 이런 거다. ‘북한은 사회주의 형제국을 잃고 대기근을 겪은 뒤 미국과 그 동맹이 주도하는 글로벌 경제에 편입되지 않고서는 체제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하지만 인권유린 국가, 독재국가로 낙인찍힌 이상 국제무대에서 정상 국가로 행세하기는 힘들다. 경제 제재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보증이 절대로 필요하다. 유감스럽게도 북한에는 미국이 탐낼 만한 게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역점을 두고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 핵이며 미사일이다. 미사일은 외화를 쉽게 벌어들일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다. 9·11 테러 이후 사담 후세인과 같은 운명을 맞지 않기 위해 북한이 움켜쥔 지푸라기이기도 하다.’ 이런 믿음을 가진 대표적인 이가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그는 한국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주선할 의향이 있다고 확인하면 북한이 한국을 배제하려던 노선을 변경하리라고 보았다.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이 제안한 남북 정상회담에 북한이 응하면서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용도를 공개 검증할 기회를 맞았다. 북한 지도자와 그 체제가 국제사회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지도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 평양에 가서 직접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보고 그 체제를 둘러본 김대중 대통령의 평가는 후했다. 북한은 미국이 북한 정권의 생존을 보장한다면, 그리고 북한을 국제사회로 이끌어준다면 핵이든 미사일이든, 또 어떤 대량살상무기든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그는 판단했다. 김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이 세계 전반에, 특히 한국에 해박하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중재로 2000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클린턴 행정부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녀가 보기에 김정일 위원장은 미국이 무엇을 염려하는지 정확하게 알았다. 김정일 위원장은 냉전 종식 이후 주한 미군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군 지도부나 외무성 관료 사이에는 찬반이 엇비슷하지만 그는 미군이 앞으로도 지역에서 안정화를 위한 역할을 수행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미군 주둔은) 관계 정상화 여부에 달린 문제라고 분명히 정리했다. 올브라이트 장관이 보기에 김정일 위원장은 예의 바르게 자랐으며, 자기가 하는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김정일 위원장은 나중에 러시아 푸틴 대통령 특사와의 대화에서 올브라이트가 마치 검사처럼 자기를 심문하더라고 회고한 일이 있다.

그로부터 무려 18년이나 지났지만 북한 핵무기가 궁극적으로 한국을 겨냥한 것인지 아닌지, 북한이 진정으로 평화와 핵무기를 맞교환할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 국제사회는 확인하지 못했다. 공정하게 얘기하자면 사실 그 책임을 북한에 묻기는 힘들다. 클린턴의 후계자였던 앨 고어 민주당 후보가 낙선하는 바람에 임기 말 클린턴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할 동력을 잃고 말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초반 임기 6년 동안 내내 기본 합의를 폐기하고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망상에 빠져 시간을 다 보내고 말았다. 그 뒤 한국에서 북한에 적대적인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등장하는 바람에 북한은 미국에 접근할 통로 자체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18년간 잃어버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비핵화 선언


최근 남북 정상 간의 판문점 회담 일정을 확정하고 비핵화 논의를 다시 테이블에 올려놓은 한국 특사단의 방북 성과에 많은 이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는 돌고 돌아 18년 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정상회담 시점으로 간신히 돌아왔을 뿐이다. ‘한반도 비핵화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궁극적인 목표다.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은 우리의 목표가 아니다.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바꾸고 우리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핵 프로그램을 포기할 수 있다(2003년 8월28일 6자회담 전체회의에서 북한 김영일 외무성 부상의 발표).’ 북한은 이번 특사단과의 합의문과 거의 같은 내용을 20년 가까이 말과 문서로 반복해 발표해왔다. 미국과 한국은 그동안 검증을 거부해왔다고도 할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정상회담 후 미국 국무부 조사국장이 백악관에 보낸 보고서는 이렇다. “북한 사람들이 주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자주적이고 깐깐한 태도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정확히 이념적으로 엄격한 대외정책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반대로 한반도 내부와 주변의 환경 변화에 적응해왔다.”

반면 미국과 한국이 북한을 대하는 태도는 종종 지나치게 감정적이었다. 특히 미국은 북한과 싸우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머리와 가슴이 다투는 통에 쩔쩔매는 듯 보였다. 미국은 북한을 힘으로 굴복시키고 싶지만 여의치 않아 화가 나 있을 때가 많았는데 지금도 역시 그렇다. 부시 대통령은 스스로 인정했다시피 김정일 위원장을 혐오했다. 그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김정일 위원장을 피그미, 폭군, 위험한 사람, 버릇없는 아이라고 불렀다. 부시 정권의 국무장관이었던 콘돌리자 라이스는 “북한이 사악한 동기를 가진, 시한부로 연명하는 불량 국가”라고 말했다. 체니 부통령은 “우리는 악과는 협상하지 않는다” “쳐부술 뿐이다”라고 호언하고 다녔다. 북한을 향한 트럼프 대통령의 거친 언사는 사실 그리 창의적인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북·미 협상을 취재해온 마이크 치노이 전 CNN 기자에 따르면 도덕적 분노와 대결적인 수사, 무력시위에 바탕을 둔 미국의 북핵 정책은 내부 갈등·비일관성·외교적 무능으로 점철된 대실패였다.

이번에는 우리가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까지 성사시켜 잃어버린 18년을 완벽하게 되찾을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될까. 다행히 정말 오랜만에 한국 대통령도, 미국 대통령도 임기가 많이 남았다. 주한 미국 대사로 거론됐던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에 따르면, 북한은 예전부터 미국의 선거와는 관계없는 합의를 하고 싶어 했다. 미국과 한국에서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말이 달라지는 데 질려서였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도 좋은 기회를 맞았다. 한·미 FTA 재협상과 주한 미군 주둔 비용 분담, 무역분쟁 등에서 한국 정부를 향해 흔들 수 있는 중요한 카드 하나를 쥐게 된 셈이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한 뒤 밝혔듯 북·미 정상회담은 의외로 빨라질 수 있다.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말 햄버거를 나눠 먹으며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면 오는 11월6일로 예정된 중간선거에서 선전할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북·미 간, 그리고 남북 간 대화가 잘 진전된다면 어쩌면 한국 국민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간절히 바라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응원하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 북한이 협상 파기를 선언하고 미국이 군사 옵션을 만지작거리는 데자뷔를 겪고 싶지 않다.

참고한 활자:<북핵 롤러코스터>(시사IN북), <이코노미스트> <워싱턴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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