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클베리핀 이기용이 만난 뮤지션 ➃ 김민규
 

끝없이 막히는 도로 위 택시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얼마 전 택시를 탄 나는 약속 시간에 늦어 마음이 초조했다. 서울 광화문사거리를 막 벗어날 무렵 라디오에서는 델리스파이스 노래 ‘챠우챠우’의 첫 소절이 나오기 시작했다. 곡의 시작을 알리는 베이스 라인을 듣자마자 뒷좌석 시트 깊숙이 몸을 기댔다. 음악이 들리는 곳에서는 편히 쉬어도 된다. 음악은 순식간에 우리를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데려가기 때문이다. 이 곡을 언제 처음 들었을까. 1997년 어느 토요일 홍대 부근에 있던 클럽 스팽글. 그날은 델리스파이스의 공연이 있었고, 무척 많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나는 카운터 바 안쪽에 허클베리핀 멤버들과 함께 겨우 자리를 잡고 공연을 보았다. 지금 기억에 남아 있는 건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고 따라 부르던 청춘들의 흔들리는 뒷모습과 조명 아래 떠도는 하얀 먼지들이다. 막 피어나던 당시 한국 인디신에서 그들은 언니네이발관과 더불어 한국 모던록의 고전이 되었다. 인디신 최초의 히트곡 중 하나인 ‘챠우챠우’와 5집 앨범의 ‘고백’ 등 거부하기 힘든 멜로디와 낭만적인 노래들로 델리스파이스는 현재까지 정규 앨범 일곱 장을 발표했다. 밴드의 보컬 겸 기타리스트이자 송라이터인 김민규는 이후 ‘스위트 피’라는 이름으로 솔로 앨범도 네 장 발표한다. 스위트 피는 작사·작곡·프로듀스· 녹음·믹스·제작을 모두 김민규 혼자서 하는 1인 창작 시스템이었다. 또 그가 만든 독립 음반 레이블 문라이즈는 이후 많은 1인 레이블의 시작점이었다. 그는 델리스파이스로 상업적으로 메이저와 마이너의 경계에 있으면서도 작업 방식으로는 스위트 피와 문라이즈를 통해 인디신 깊숙이 연결되어 있기도 했다. 인디신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20년 넘게 쉼 없이 작업해온 그를 만났다. 당대의 사운드에 보조를 맞춰온, 20년차 넘은 뮤지션이 지금 음악에 관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했다.
 

ⓒ김민규 제공델리스파이스의 김민규(위)는 ‘챠우챠우’ ‘고백’ 등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곡을 썼다.

 


이기용:록 페스티벌에서 많은 이들이 ‘떼창’을 하기도 하고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멜로딕한 곡들이 있다. ‘챠우챠우’ ‘고백’이나 ‘Kiss Kiss(스위트 피)’ 같은 곡들이 그런 경우인데, 동시대 록밴드들에 비해서 로맨틱한 멜로디를 많이 만들어왔다. 무엇 때문일까?

김민규:1980년대 음악을 보면, 그 시대까지만 해도 아직 멜로디가 좀 더 중요하게 여겨졌던 것 같다. 나중에 랩이 나오고 1990년대 후반이나 2000년대에 가면서 멜로디 외에도 음악을 빛나게 하는 요소가 더 많긴 했지만, 그래도 멜로디가 더 중요했던 음악을 들은 세대이기 때문 아닐까. 기타 솔로만 해도 입으로 흥얼거리기 좋은, 그런 것들을 더 좋아했다.

이기용:상업적으로는 메이저와 마이너 사이에 있었고, 인디신 안에서도 한동안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 늘 경계에 있다는 느낌을 말한 적이 있는데.

김민규:데뷔할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홍대 쪽에서는 외지 사람 취급을 받고, 상업 주류 쪽에서도 어중간한 느낌이라 우린 양쪽에서 배척당하는 존재였다(웃음).

이기용:인디신 초기에는 클럽별로 비슷한 성향의 밴드들이 나뉜 분위기가 있었다. 예를 들어 드러그밴드, 스팽글밴드 하는 식으로. 델리스파이스는 마스터플랜에서 주로 공연하지 않았나?

김민규:그때 마스터플랜 색깔이 힙합도 있고 여러 장르가 섞여 있어서 그쪽이 더 편한 분위기였던 것 같다. 홍대 초창기에, 우리가 분명 그때 거기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쪽 사람이 아닌 듯한 취급을 받아서 아쉬움이 있었다.

이기용:스위트 피 2집 가운데 ‘당신의 그 아버지처럼’이라는 곡에서는 ‘당신을 증오했던 시간들, 자학해왔던 어린 시절들, 알아 당신도 아버지처럼 당신의 가족들을 위해서 그저 강해 보이려 했던 걸, 이제 모든 걸 용서하려 해’라고 아버지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토로했다.

김민규:아버지 세대 분들에 대한 애증이 있다. 당시엔 부모 세대와 최소한의 공감대조차 없다고 느꼈고 그 부분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것이 음악에 빠지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고. 지금 다시 그때로 간다 해도 나를 위로해줄 수 있는 건 기타밖에 없을 것 같다. 그때 빨간색 ‘스트라토 캐스터’ 기타는 내게 너무 섹시했다. 그렇게 멋진 건 기타 말고는 없었다.

이기용:스위트 피 3집에는 언니네이발관의 이석원씨와 같이 작업한 곡도 있다. 그는 지난해에 창작의 고통을 호소하며 6집 앨범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비슷한 시기에 출발해 한국 모던록의 길을 내내 함께한 동료 밴드로서 어떤 감회가 있나.

김민규:지금 시대는 음악 창작의 결과물들이 짧게 며칠 안에 소비되고 그 운명이 결정 난다. 음악의 생명력이 빨리 끝나는 시대라는 것이 좀 서글프다. 그런 것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자신의 작업을 파고들어 가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석원씨 마음에 공감한다. 지금 나는 좀 더 철저히 나를 위로할 수 있는 작업을 해야만 그런 것들에 대해 초연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델리스파이스 7집 이후의 작업들에 대해 여러 평가가 있다는 걸 나도 알지만, 나는 오히려
내가 하고 싶은 부분에만 더 집중하려 한다.

이기용:대부분의 곡에 작사·작곡·연주·녹음· 프로듀서까지 맡으면서 지금까지 총 11장이나 정규 앨범을 발매했을 정도로 상당한 양을 작업했다.

김민규:사실 요즘은 좀 쉬고 싶은 갈망이 있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해외 음악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그들이 어떻게 지치지 않고 명반들을 계속 낼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더라. 그들의 음악에는 프로듀서라는 숨은 조력자가 반드시 있다. 음악에 개입하는 정도는 각각 다르겠지만 프로듀서의 주도하에 음악이 전체적으로 세밀하게 다듬어지는 시스템은 우리에게 아쉬운 부분이다. 우리는 밴드 멤버들이 녹음과 믹싱까지 신경 쓰다 보니 연주나 노래, 작곡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추기가 힘들다. 지금까지 나는 곡의 포장부터 배달까지 모든 걸 도맡아서 해온 느낌이다.

이기용: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얼마 전부터 즉흥성이 부각되는 재즈 연주자들과 주로 작업한다고 들었는데.

김민규:맞다. 전에 드라마 OST 작업을 하면서 재즈 팀을 처음 만났다. 그 친구들은 악보 하나 가지고 즉흥성을 가미해 연주하는데, 두 번 정도에 모든 녹음을 끝내더라. 이게 정말 매력적인 거구나 싶었다. 나는 노래 한 곡에 몇 달씩 작업하고 그랬는데 그동안 내가 너무 소모적으로 일을 했구나 싶었다. 즉흥적인 음악이 갖는 매력이 불현듯 다가왔고, ‘내가 가야 할 곳이 이쪽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즉 작업 방식으로서 재즈를 재발견했다.

지난해 그는 스위트 피의 활동을 종료한다고 밝혔다. 오랫동안 해온 1인 제작 시스템에 지쳤으며 이제는 조력자들과 기를 주고받는 작업을 원한다고 했다. 그가 요즘 재즈 뮤지션들과 함께하는 작업을 선호하는 이유다. 뮤지션들이 모여 합주할 때는 자신의 소리를 내면서 다른 사람의 소리 또한 동시에 듣지 않으면 안 된다. 음악은 말하기와 듣기가 동시에 잘 이루어져야만 가능한 작업이다.

 

 

기자명 이기용 (밴드 허클베리핀 리더)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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