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삐딱하기만 한 전국 담당 에디터 벤 백디키언 기자가 벤 브래들리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장에게 두툼한 서류 봉투를 건넨다. 브래들리 국장은 그 봉투를 받아 캐서린 그레이엄이 있는 발행인실로 가져간다. 그는 캐서린 발행인 앞에서 서류 봉투를 열고 신문을 꺼내 하나씩 펼친다. 〈워싱턴포스트〉의 ‘펜타곤 페이퍼’ 보도를 1면에 받은 다른 신문들이었다. 영화 〈더 포스트〉를 보며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정부의 보도 금지 명령과 제소에 맞선 동업자 정신이 부러웠다. 물론 이 동업자 정신은 1년 뒤 워터게이트 사건 때 타사가 침묵의 카르텔로 맞서며 와해되었다(벤 브래들리, 〈워싱턴포스트 만들기〉).
영화 속 서류 봉투를 보며 지난해 여름 분홍색 보자기가 떠올랐다. 주진우 기자가 보자기에 담긴 서류를 편집국 회의실에서 펼쳤다. “이게 바로 다스 실소유주를 밝혀줄 문건이다.” 주 기자는 뭔가 ‘물었을 때’ 말이 빨라지고 목소리가 커진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갈 만했다. 입수한 서류는 사본도 아니고 원본이었다. 파란색 다스 도장이 선명했다. ‘다스 페이퍼’라 할 만했다. 망설임 없이 말했다. “오케이 갑시다. 보도합시다.” 커버스토리로 내면서도 한편으론 꼼꼼한 그분의 대응이 걱정되기도 했다. 늘 그렇듯 〈시사IN〉 자문 변호사인 최정규 변호사에게 기사의 법률 검토를 맡겼다. 마침표 하나까지 꼼꼼하게 확인하는 최 변호사도 기사를 보더니 “도대체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라고 의아해했다. 〈시사IN〉이 입수한 문건은 다스가 투자한 140억원을 돌려받기 위해 이명박 청와대가 움직였다는 내용을 증언하고 있었다. 지금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때만 해도 첫 보도, 바로 특종이었다.
너무 이상했다. 이 전 대통령이 전혀 대응을 하지 않았다. 우리 보도를 따라오는 언론사도 없었다. 반응이 대충 이랬다. “다스 실소유주 의혹은 검찰과 특검이 두 번이나 조사했는데” “이미 다 끝난 거 아닌가요?” 주 기자에게 후속 보도를 언제 할 거냐고 다그쳤다. 삐딱하기만 한 주 기자는 가욋일을 하고 있었다. “우리만 써서 안 되니까, 같이 갑시다.” 그랬다. 주 기자는 특종 욕심을 버리고 국외를 오가며 애써 모은 자료를 다른 언론사에 건넸다. 서서히 다른 언론사도 다스 의혹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시사IN〉에 따르면’이라는 출처 인용 보도를 한 곳은 많지 않았다.
여기까지 왔다. 이제 다 끝났다고 한다. 고생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조사를 받고 나온 날, 주 기자는 다시 해외 취재에 나섰다. MB 프로젝트 관련 취재다. 끝을 보겠다는 〈시사IN〉 기자들의 다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독자들도 응원해주시고 지켜봐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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