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을 지켜보며 며칠째 잠을 설친 친구가 힘겹게 말했습니다. “그때 내가 조직에서 미친 사람 취급받더라도 ‘지금 뭐 하는 짓이냐, 이건 성희롱이다’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그걸 못했어. 선배들이 사회생활 처음 하냐며 넘어가라고 하니까, 그래야 하는 줄 알았는데.” 자신이 싸우지 못하고 넘어갔던 시간이 쌓여 지금 젊은 여성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자책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몇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왜 상처받은 사람들이 자신을 괴롭힌 폭력에 맞서 싸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괴로워하는지, 왜 피해자들이 사회적 낙인과 2차 피해의 부담까지 감수하며 가장 아픈 기억을 폭로하는 짐을 짊어져야 하는지에 대해서요.

 

ⓒ시사IN 신선영그동안 민주주의는 가정과 회사와 학교 문 앞에서 멈춰 있었다. 우리의 일상이 민주주의 최전선이다.

 


2016년 연구실의 김유균 선생과 함께 〈정당한 대우를 요구하지 말라고? : 한국의 결혼 이민자의 인종차별과 대응 그리고 자가 평가 건강〉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국제건강형평성학술지〉에 게재했습니다. 2012년 정부가 시행한 ‘다문화 가족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결혼 이민자 1만4406명의 설문조사 결과를 분석한 연구입니다.

 

 

 

 

연구는 먼저 “당신은 한국에서 생활하며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이나 무시당한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통해 설문 참여자를 두 그룹으로 구분한 뒤, 차별을 경험한 결혼 이민자를 다시 추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차별하지 말라고 요구’한 적이 있는지 묻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차별을 경험하지 않은 집단’ ‘차별을 경험하고 시정을 요구한 집단’ 그리고 ‘차별을 경험했지만 시정을 요구하지 않은 집단’으로 나눴습니다.

이 세 집단에서 자가 평가 건강(self-rated health)이 어떻게 다른지를 검토하고자 연령, 출신 국가, 한국어 능력 수준, 소득 등과 같은 주요 정보를 통제한 상황에서 분석을 진행했습니다. 분석 결과는 짐작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차별을 경험한 결혼 이민자들은 차별 경험이 없는 경우에 비해 ‘건강이 나쁘다고 보고할 위험’이 시정 요구를 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1.43배, 시정 요구를 했을 경우 1.61배 높게 나타났습니다.

 

 

ⓒ시사IN 조남진2011년 6월2일 열린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이주 여성을 위한 추모제’.

 


차별 경험이 인간의 몸을 상하게 할 수 있다는 기존 연구 결과와 일치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의아한 부분이 눈에 띄었습니다. 차별 시정 요구를 했던 집단에서 건강이 나쁘다고 보고하는 비율이 작은 차이지만 더 높게 나온 것입니다. 아무 말도 못하고 차별당했던 이들보다는 ‘이건 잘못된 일이므로 수정하라’고 말했던 사람들이 더 고통받았다는 의미입니다.

 

 

 

 

그 의문은 성별에 따라 분석을 진행하고 나서야 풀렸습니다. 남성과 여성의 결과가 전혀 달랐습니다. 남성 결혼 이민자 집단은 기존 연구 결과와 유사했습니다. 통계적으로 유의하지는 않았지만, 차별 시정 요구를 했던 이들은 차별당하지 않은 이들에 비해 자가 평가 건강이 오히려 낫게 나타났고, 차별 시정을 요구하지 못했던 이들은 건강이 나쁘게 나왔습니다(아래 〈표 1〉 참조).

 


반면 여성 결혼 이민자 집단에서는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여성 결혼 이민자는 놀랍게도 차별 시정을 요구했던 집단에서 건강 상태가 가장 나쁘게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차별을 경험하고도 시정을 요구하지 못했던 이들보다 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것입니다. 용기를 내어 자신이 경험했던 부당한 상황을 바꾸고자 했던 여성이 가장 많이 아픈 이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용기를 낸 사회적 약자가 겪는 ‘2차 고통’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먼저 여성 결혼 이민자들이 상대적으로 차별에 익숙한 사회적 약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런 그들조차도 참지 못하고 항의할 수밖에 없었던 심각한 차별을 경험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차별 시정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가능성입니다. 오히려 ‘어디서 그런 걸 요구하느냐’ ‘지금도 감지덕지한 줄 알아라’ 같은 폭력에 노출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거죠.

이 연구는 사회적 약자가 부조리에 홀로 맞서 싸울 때, 그들이 겪게 되는 고통이 몸에 새겨진다는 걸 보여줍니다. 차별은 잘못된 것이니 고치라고 용기를 내어 말했던 여성들이 가장 많이 아팠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연구의 한계 중 하나는 여성 결혼 이민자가 차별을 경험했을 때, 도움을 요청할 기관이 있었는지 혹은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는지 측정할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국가기관이 수집한 2차 자료를 분석했기 때문에, 애초 설문에서 묻지 않았던 내용까지 제가 파악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개인이 사회적 폭력을 경험했을 때, 그 주변 사람이나 소속 기관의 대응에 따라 피해자의 건강 상태가 어떻게 바뀌는지 연구해야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시사IN 신선영구급대원이 근무 중 당하는 폭력 경험과 조직의 대응에 따라 우울 증상 유병률이 달라진다.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 용역 연구로 ‘소방공무원 인권 상황 실태조사’를 진행하면서 그 문제를 연구로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저희 연구팀이 직접 설계한 질문으로 설문조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중 하나가 연구실의 김지환 선생과 함께 2016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세계심리학회에서 발표한 논문입니다. 저희는 전국 각지에서 일하는 119 구급대원 2034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한국 구급대원이 근무 중 경험하는 폭력 경험과 조직의 대응에 따른 우울증상 유병률 연구〉라는 제목으로 발표했습니다.

구급대원들에게 지난 1년 동안 민원인으로부터 신체 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민원인이 각종 이유로 출동한 구급대원을 폭행하는 경우가 실제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폭행 경험을 자신이 일하는 기관에 보고했는지, 보고했다면 기관 차원에서 후속 조치가 있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 응답을 이용해 ‘폭행 피해 경험이 없는 구급대원’ ‘폭행을 경험하고 기관에 보고하지 않았던 구급대원’ ‘폭행을 경험하고 기관에 보고했을 때 사후 조치가 있었던 경우’ ‘폭행을 경험하고 기관에 보고했지만 사후 조치가 없었던 경우’ 이렇게 네 개 집단으로 구급대원을 구분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우울 증상을 표준화된 설문지를 통해 측정·비교했습니다.

짐작할 수 있듯이 폭행 피해 경험이 없는 구급대원에게서 우울 증상 유병률이 가장 낮게 나타났습니다. 폭행을 당했지만 기관에 보고하지 않았던 구급대원의 경우에는 폭행 경험이 없는 이들보다 우울 증상이 1.69배 높게 나타났습니다. 보고하지 않았던 이유는 다양할 것입니다. 보고해도 소용이 없다는 자포자기일 수도 있고, 기관에 보고할 만큼 심각한 폭행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지요.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기관에 자신의 폭행 경험을 보고했던 두 집단의 분석 결과입니다. 그 중, 사후 조치가 없었던 구급대원에게서 우울 증상 유병률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들 그룹은 우울 증상을 경험할 위험이 폭행을 경험하지 않은 그룹에 비해 2.47배 더 높았습니다. 폭행을 경험했지만 기관에서 사후 조치가 있었던 구급대원 집단과 비교해보면 그 의미가 더욱 뚜렷해집니다. 사후 조치가 있었던 구급대원 집단에서는 폭행을 경험하지 않은 이들에 비해 우울 증상 유병률이 1.47배밖에 높지 않았습니다. 부당한 폭행에 대한 조직의 사후 조치 여부에 따라, 두 집단의 우울 증상 유병률이 60% 가까운 차이를 보였습니다(왼쪽 〈표 2〉 참조).

기관이 사후 조치를 한다고 해도 민원인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관이 어떤 식으로든 사후 조치를 할 경우 구급대원은 내가 속한 조직이 내 편에 서서 행동한다는, 나를 보호해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내 조직이 내가 당한 폭행을 심각한 것으로 인식하고 함께 바꾸고자 노력하고 있구나’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두 편의 연구가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용기를 내어 차별이 부당하다고 항의했던 여성 결혼 이민자가 가장 많이 아팠고, 근무 중 일반인에게 폭행을 당하고 조직에 보고했지만 아무런 사후 조치가 없었던 구급대원이 가장 심각한 우울 증상을 보였습니다. 피해자 혼자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몸으로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

며칠 전 한 대학 학생회로부터 메일을 받았습니다. 미투 운동을 계기로 학과 내에 성평등위원회를 만들었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폭력 피해 경험을 조사하려고 한다며, 자신들이 만든 온라인 설문지 검토를 요청해왔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링크를 열었는데 그 설문지에는 3개의 질문만 있었습니다. ‘성범죄를 경험한 적이 있는가’ ‘가해자는 누구인가’ ‘공론화에 찬성하는가’. 물론 중요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처럼 예민한 경험을 설문으로 측정하려면 고려해야 할 사항과 조심해야 할 지점이 많습니다. 차별이나 학대 경험을 설문으로 측정해 논문을 써본 제 경험상, 이 질문들로는 충분히 의미 있는 결과를 내놓기 어려워 보였습니다. 주변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 학생회 친구들처럼 미투 운동을 계기로 성폭력 피해 경험을 조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한국의 ‘펜스 룰’ 치졸하고 비겁하다

연구실의 박주영 선생과 상의 끝에 ‘스피크위드유(Speakwithyou)’라는 이름으로 워크숍을 기획했습니다. 성폭력 피해 경험을 측정하기 위한 설문지는 ‘단일’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속한 조직의 상황 등을 고려한 설문지 구성 방법을 배워보는 내용으로 워크숍을 꾸렸습니다. 1인당 1만원씩 참가비를 받아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전액 기부하기로 하고 온라인으로 참가자를 모집했습니다. 불과 4시간 만에 정원 50명이 가득 차 접수를 마감해야 했습니다.

워크숍 당일인 3월11일 서울 용산구 철도회관에는 다양한 이들이 모였습니다. 많은 수가 학내 성폭력 문제에 맞서 활동하는 대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교회 내 성폭력 피해자를 조사하고 싶어 하는 개신교 신자도 있었고, 1980년대 학생운동을 함께했던 친구가 미투 운동이 터지고서야 당시 경험한 성폭행을 고백했다며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해야겠다’라는 분도 있었습니다.

다양한 역사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지만, 모두가 공유하는 바가 있었습니다. 미투 운동에 힘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가장 아픈 사람이 가장 무거운 짐을 감당하는 이 싸움에서, 그 짐을 나누어 짊어지는 길을 찾고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말하지 못한 상처를 가슴에 품고 살아온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내 말해줘서 고맙다고, 당신만이 아니라 수많은 이들이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고, 지금부터라도 함께 바꿔 나가자고 이야기했습니다.

미투 운동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펜스 룰’이라는 단어를 들었습니다. 미국 부통령 마이크 펜스의 이름에서 따온 말로, 오해를 살 만한 행동을 하지 않으려는 것을 뜻합니다. 현재 한국에서 펜스 룰은 가해자로 지목될 것을 두려워한 남성이 여성을 주요 의사 결정 과정에서 배제하는 움직임으로 나타납니다. 여성 직원과 출장도 가지 않고, 업무 지시도 이메일이나 메신저로만 하는 남성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 그렇게 행동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치졸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미투 운동이 두려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 당사자들에게 묻고 배우면 됩니다. 이상한 핑계로 자신의 비겁함을 합리화하고 도망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2018년입니다. 1987년 민주화 투쟁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지 30년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일상에서 민주주의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그동안 민주주의는 가정과 회사와 학교 문 앞에서 멈춰 있었습니다. 민주주의가 더 이상 투표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민주주의는 권력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 적용되는 가치이고, 우리의 일상도 예외일 리 없습니다. 이는 과거 반독재 투쟁만큼 한국 사회의 절박한 과제이며, 미투 운동은 그 한가운데 있습니다. 피해자들에게 ‘왜 너는 폭로하지 않느냐’ 혹은 ‘왜 그동안 가만히 있었느냐’라는 질문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습니다. 성폭력은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고, 마땅히 금지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폭력은 개개인의 우발적 실수가 아니라 비대칭적 권력관계와 폭력적 문화 속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일상이 민주주의 최전선입니다.

기자명 김승섭(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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