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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 전 내가 만났던 스티븐 호킹

2018년 03월 27일(화) 제549호
안병찬 (언론학 박사·원 <시사저널> 발행인)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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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9월 스티븐 호킹 교수가 한국을 방문했다. 원 <시사저널> 제작 책임자로서 그를 한국에 초대했던 안병찬 박사가 당시 진행한 호킹 교수와의 인터뷰를 전한다.

휠체어를 탄 영국의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교수와 인터뷰한 것은 1990년 9월이다. 원 <시사저널> 창간인의 한 사람으로서 제작 책임을 맡고 있던 때였다.

나는 까다로운 호킹 교수 인터뷰를 직접 맡을 수밖에 없었다. 호킹 교수를 표지 기사로 올리자고 우겨서 급기야 원 <시사저널> 초청으로 그를 한국 땅에 오도록 만든 이가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1990년 7월 스티븐 호킹 교수의 기고문을 시작으로 3회에 걸쳐 표지 기사가 나갔다. 당시 미술부장이었던 제니스 올슨(원 <시사저널>은 창간 당시 <유에스뉴스 앤드 월드리포트> 출신 미국인 디자이너를 스카우트했다)과 김상익 편집부 기자에게 기획을 주관하게 했다. 올슨 미술부장은 정교한 스케치로 커버스토리의 미술적 틀을 완성했고, 국문학을 전공하고 음악에 심취한 김상익 기자는 우주론자 호킹을 다루는 데 감각을 발휘했다. 이렇게 원 <시사저널> 창간 1주년 기념으로 그를 한국에 처음 초청했다. 스티브 호킹 교수를 한국에 소개한 매체가 바로 원 <시사저널>이다.

ⓒ안병찬 제공
안병찬 박사(오른쪽)는 1990년 9월9일 신라호텔 정원에서 스티븐 호킹 교수를 인터뷰했다.
인터뷰는 그가 투숙한 신라호텔 잔디밭에서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 나는 즉석에서 영문 질문지를 만들어 호킹 교수와 대면했다. 호킹 교수와의 인터뷰는 특례라고 하겠다. 역경을 극복하고 언어합성기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그의 의지는 특별한 것이었다. 호킹 교수는 손가락도 쓰지 못하고 눈동자 움직임으로 음성합성기를 작동시켜 의사를 밝혔다.

그는 질문을 던지면 잠깐씩 생각하고 부자유한 한쪽 손의 손가락을 겨우 움직여 언어합성기를 조종했다. 그러면 이윽고 컴퓨터 기계음성이 호킹 교수의 견해를 내놓았다.

스티븐 호킹 교수는 사고만 하는 천재가 아니었다. 내가 만난 그는 상상하는 인간이기도 했다. 상상은 직관적이며 감정 요소가 들어 있어 사고 작용과는 다르다. 스티븐 호킹 교수는 상상력과 사고 작용을 통일해 “상상력으로 사고하라”고 말했다.

그렇게 사고하고 상상하는 우주론자 스티븐 호킹 교수가 공항 귀빈실 출구에 모습을 나타낸 날은 1990년 9월8일 밤이었다. 그는 사고하고 상상하는 힘 말고, 행동하는 힘도 보여줬다. 그의 전신은 그의 명령을 거역하고 있었다.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곳은 오직 손가락 끝뿐이었다. 손가락 끝 하나로 그는 혼자서 걸어가고(휠체어 조종), 스스로 목소리를 냈다(컴퓨터 언어합성기 조종). 여간 강인해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도 그날 만남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신라호텔 20층 객실에 도착한 호킹 교수는 먼저 휠체어로 방 안을 이리저리 돌아본 후 창가로 가서 정지하더니 제3한강교(현 한남대교) 쪽 서울의 야경을 한동안 꼼짝 않고 내려다보았다. 이윽고 언어합성기를 조종하여 이렇게 한마디 했다. “베리 나이스!”

ⓒ시사IN 이명익
원 <시사저널>은 1990년 7~9월 스티븐 호킹 교수를 3회에 걸쳐 표지 기사로 다뤘다.
첫 한국 방문 이틀째 호텔 정원에서 인터뷰가 이뤄졌다. 그는 질문받은 11개 문항에 일일이 답했다. 한낮의 더위에 땀을 흘리면서도 그는 꿋꿋한 정신력으로 자기의 다듬은 언어들을 차근차근 만들어냈다. 애초 내가 준비한 질문은 20개 문항이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호킹 교수의 그 어려운 언어 작업을 보고 현장에서 9개 문항을 철회했다. 아직도 내 기억에 남은 그때 인터뷰 질문과 내용을 요약한다.



과학자를 고지식하고 깐깐한 샌님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호킹 교수는 ‘근엄한 교수님’이란 인상을 풍기지 않는다. 스스로 괴짜라고 생각하는가?


과학자들 가운데 더러는 괴짜도 있을 것이고 상대하기에 깐깐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아주 정상적인 사람이기를 바란다. 글쎄, 만약에 내가 괴짜라고 한다면 아마 나 스스로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테지만.

그렇다면 자신의 성격이 우주를 연구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나?


나는 사물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찾아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매우 정상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과 나는 하나도 다르지 않다.

바그너의 오페라를 즐겨 듣는다는데, 특히 좋아하는 작품은?

바그너의 작품이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음악의 아름다움과 힘을 충분히 감상하고자 진정으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이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바그너의 작품은 <니벨룽의 반지>다.

호킹 교수는 다른 아버지들처럼 자녀들에게 무동을 태워준다거나 공놀이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세 자녀의 아버지로서 애정을 표현하는 무슨 특별한 방법을 개발했는가.


내 아이들은 내게 크나큰 의미가 있다. 비록 내가 다른 아버지들처럼 아이들과 놀아주지 못하지만 내가 애들과 놀 수 있는 게임은 많이 있다.

1983년부터 ‘무경계 우주론’을 연구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 이론의 개념을 설명해줄 수 있는가?

물리학의 법칙은 시간과 공간이 존재한 이래 우주가 어떻게 변하는지 이야기해준다. 일반적으로 우주의 상태는 우주가 그 경계에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알면 결정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시간과 공간의 크기가 유한하고 경계가 없다면, 물리학의 법칙은 우주의 상태를 유일하게 결정해줄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의 아이디어를 첫 부인에게서 도용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 논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시공의 만곡’으로 중력장의 성격을 기술한 업적은 아인슈타인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부인은 좀 막연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을 테지만, 그 아이디어가 그리 많이 작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프랑스의 우주물리학자인 위베르 리브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인슈타인은 오직 아이디어의 영역 속에서 사는 과학자상을 대표한다. 그리고 오늘에는 스티븐 호킹이 그러한 과학자상을 대표하며, 오직 스티븐 호킹만이 아인슈타인에 비견된다.” 이런 평가에 대해 만족하는가?


나는 내가 감정과 욕구를 가지고 있는 보통 인간이라는 것을 안다. 아인슈타인 역시 그랬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영웅을 원한다. 그리하여 아인슈타인에게서 신화를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나한테서도 그런 신화를 만들어내려 애쓴다. 그렇지만 나는 아인슈타인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우주에 다른 지적(知的) 생명체가 존재한다고 믿는가.

우리와 가까운 데는 아니더라도 우주의 다른 어느 곳에 아마도 지적 존재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렇더라도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모습과 같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은 우리가 행하는 것보다 훨씬 상상력이 크다.

오늘은 호킹 교수가 한국에서 처음 맞는 아침이다.

지금까지 내가 본 한국에 나는 친근감이 든다.

긴 시간 감사하다. 한국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바란다.

생큐!



“보잘것없는 생명의 존재로서 우주 전체를 이해하려는 것이 나의 인생관이다”라고 말하던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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