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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잇다, 지리산 둘레길 10년

2018년 03월 28일(수) 제549호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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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봄 지리산 둘레길이 10년을 맞는다. 제주올레와 함께 걷기 문화의 두 축이었던 둘레길은 지리산의 신경망이 되어 ‘지리산 공동체’를 복원하는 데 기여했다.

지리산이 거기 있었다. 산이 있었기에 마을이 생기고 길이 열렸다. 사람들은 큰 산에 기대어 푸성귀를 캐고, 열매를 따면서 먹고 살았다. 누군가는 세파를 피해 입산했고, 누군가는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실천하려 산의 품에 안겼다. 그런 이들이 모여 지리산 한 바퀴를 걷는 길로 잇자고 다짐한 지 어느덧 10년이 되었다.

지리산 둘레길이 10년을 맞는다. 2008년 4월27일 전북 남원시 산내면과 경남 함양군 휴천면 세동마을을 잇는 20여㎞가 시범구간으로 첫선을 보인 지 10년이 흘렀다. 4년 뒤인 2012년 5월 22개 코스, 274㎞ 걷는 길이 완전히 열렸고, 이후 구간을 정비해 현재 총길이는 295㎞에 이른다. 3개 도(전라북도·전라남도·경상남도)를 아우르고, 5개 시·군(남원·구례· 하동·산청·함양)을 통하며, 21개 읍·면, 120여 개 마을을 지나는 장거리 도보길이다.

ⓒ시사IN 조남진
전남 구례군 오미-난동 구간(18.9㎞)은 여름이면 원추리꽃이 장관을 이룬다. 일제강점기에 망국의 한을 달랬던 용호정이 섬진강을 굽어보고 있다.
지리산 둘레길은 제주올레와 더불어 한국 사회 걷기 열풍의 효시다. 첫 코스가 열린 시점은 제주올레가 몇 개월 일렀지만, 이 땅에 걷는 길을 잇자는 움직임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비슷했다. 지리산 둘레길을 만든 사단법인 숲길과 제주올레 모두 2007년 발족했고, 2012년 길을 완전 개통했다. 뭍과 섬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두 걷는 길이 동갑내기 친구인 셈이다. 차이가 있다면 제주올레는 민간이 추진했고, 지리산 둘레길은 민·관(사단법인 숲길·산림청)이 함께 만든 길이라는 점이다.

지리산 운동의 결과로 태어난 순례길


지리산 둘레길은 여느 걷는 길과 태생이 좀 다르다. 멀게는 1990년대 말 지리산 개발 반대에 맞선 운동, 가깝게는 2000년대 초·중반 생명평화 운동에서 잉태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지리산은 댐 개발 이슈로 몸살을 앓았다. 정부가 경남 함양군 휴천면에 홍수 방지 등을 목적으로 댐을 건설하려 했기 때문이다. 2008년 첫 둘레길 구간이 열린 바로 그 일대다. 금계-동강 둘레길 코스는 물론 실상사까지 수몰될 위기였다. 실상사를 중심으로 댐 건설 반대 운동이 타올랐다.

지리산 댐 문제는 하나의 출발이었다. 운동은 개발과 기계화로 얼룩진 20세기 우리 삶을 성찰해야 한다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실상사에 귀농학교와 대안학교가 들어서면서 ‘인드라망생명공동체’가 만들어졌고 ‘지리산생명연대’처럼 현재 지리산 보호 운동에 중추 구실을 하는 단체도 이 무렵 싹을 틔웠다. 이들의 성찰은 곧 ‘걷기’로 이어졌다. 길 위에서 사람들을 만나 21세기 가치를 다시 정립하자는 취지였다.

ⓒ시사IN 조남진
오미-난동 구간에 있는 고택 운조루 앞에 꽃망울이 맺혔다.
2004년 도법 스님은 실상사 주지 소임을 내려놓고 생명평화 탁발 순례단을 이끌었다. 역설적이게도 걷다 보니 걷는 길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자동차가 점령한 길은 인간과 자연을 위협했고, 지역을 갈라놓았다. 탁발 순례단은 민·관이 힘을 합쳐 지리산에 걷는 길을 내자고 제안했고, 정부가 이를 수용하면서 물꼬가 트였다(둘레길 도법 스님이 말하는 ‘걷는다는 것’ 기사 참조). 도법 스님을 이사장으로 사단법인 숲길이 만들어졌고, 산림청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민·관이 힘을 합쳐 성찰의 길을 내자는 꿈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그래서 지금도 숲길 회원들은 지리산 둘레길을 ‘순례길’이라 부른다.  

실상사와 함께 지리산 둘레길의 상징적 장소를 꼽으라면 단연 경남 산청 성심원이다. 성심원은 1959년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설립한 한센인 요양시설이다. 세상의 차별과 편견에 시달린 한센인들이 지리산 자락으로 숨어들었다. 지도에서 보면 실상사는 지리산 서쪽, 성심원은 동쪽 끄트머리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두 곳은 둘레길 탐방의 거점일 뿐 아니라, ‘지리산 아트 프로젝트’ 같은 굵직한 문화예술 행사의 무대이기도 하다. 지리산 품 안에서 종교의 벽도 자연스럽게 허물어지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지리산 둘레길 그림편지>를 펴낸 이상윤 숲길 상임이사(사진 오른쪽)와 이호신 화백.
10년간 길이 바꾼 것들


둘레길 탐방객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시범 코스가 열린 2008년 4만명으로 시작해 전체 코스가 개통된 2012년 40만명이 길을 걸었다. 2015년 70만명으로 최고점을 찍었고, 지난해에도 66만명이 방문했다. 지난 10년 동안 419만명이 지리산 둘레길을 찾았다.

늘어난 탐방객은 지역을 바꾸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남원시 인월면이다. 과거 지리산권을 아우르는 요충지로 번성했지만, 다른 농촌 지역처럼 쇠락해가는 중이었다. 변화는 인월 지역이 둘레길의 베이스캠프가 되면서 찾아왔다. 시범 코스가 열리고, 지리산 둘레길 남원(인월) 안내센터가 설치된 탓이 컸다. 상권이 크게 활성화되고, 인구도 늘었다.

미약하지만 직접적인 고용 창출 효과도 있었다. 현재 지리산 둘레길에는 지자체별로 5개 안내센터와 3개 안내소가 있다. 숲길체험지도사 등 40여 명이 현재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대다수가 지역민이고, 노인층도 꽤 된다. 사단법인 숲길은 실제 필요 인력 68명에는 아직 못 미치지만, 지역민이 둘레길 사업의 실질적 주체로 자리 잡았다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시사IN 조남진
실상사 경내에 마련된 세월호 기도소.
이런저런 경제효과보다 더 극적인 변화는 지역민의 마음으로부터 왔다. 10년 전 둘레길을 처음 낼 때 지리산 주민들의 자긍심은 극히 낮았다. 도시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 컸다. 농촌과 산촌이 뒤섞인 지역 특성상 폐쇄적인 면도 있었다. 오히려 도시인보다 더 사생활 침해에 민감했다. 이방인이 자기 마을에 오는 걸 금기시했다. 이제 좀 달라졌다. 둘레길 걷는 사람들이 참 좋더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물 한 잔이라도 흔쾌히 권하는 지역민이 늘어난 건 둘레길 관계자들에게 무엇보다 뿌듯한 일이다. 10년 동안 안전사고가 한 번도 발생하지 않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지 모른다.

길을 통해 마을과 마을이 연결되면서 주민들 사이 교류도 활발해졌다. 사단법인 숲길은 다양한 마을 순례 프로그램을 통해 이런 교류를 촉진하고 있다. 마을 장터를 만들고, 당산제를 지내고, 걷기 행사를 개최했다. 지리산권 120개 마을이 ‘지리산 공동체’로 되살아나는 것이 둘레길을 연 사람들의 큰 꿈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지리산 둘레길 ‘이용수칙’은 엄격하다. 마을 주민에게 불편을 줄 수 있는 행동을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농작물에 절대 손을 대선 안 되고, 화장실은 관공서나 터미널 등을 이용해야 한다. 마을 주민에게 먼저 인사하고, 사진을 찍을 때는 허락을 얻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산악자전거는 이용할 수 없다. 단체여행보다 5명 이내 작은 모둠 여행을 권한다.

어찌 보면 걷는 사람보다 ‘사는 사람’을 위한 수칙 같지만 한 번만 걸어보면 깨닫게 된다. 둘레길은 그 자체로 지리산 사람들의 ‘생활길’이다. 걷다 보면 무시로 마을 주민을 마주치게 되고, 때로 신세를 지게 된다. 둘레길은 처음부터 주민들의 배려와 헌신으로 탄생한 길이나 다름없다.

지리산 둘레길의 생명 평화 정신

‘지리산 둘레길 이음단’이라는 게 있다. 2012년 5월 둘레길 전체 개통을 기념해 시작됐다. 매년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이들과 함께 둘레길 전체를 한 바퀴 도는 행사다. 2013년에는 20~30대 청년, 2014년에는 가족이 주인공이었다. 2015년에는 제2의 인생을 계획하는 은퇴자들, 2016년에는 청소년이었다.

지난해 이음단의 주체는 ‘여성’이었다. 민주화와 경제발전의 주체 혹은 희생자가 되어야 했던 이 땅의 여성들에게 감사와 위로를 전하자는 취지였다. 전국 각지에서 지원한 여성 14명은 5월13일부터 29일까지 16박17일 308시간을 걸었다. 걷기 도중 특강, 토크 콘서트, 숲 테라피 같은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올해에는 사회적 약자를 주제로 한 이음단 행사를 논의 중이다.

지리산에는 많은 모임이 있다.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지리산학교, 섬진강과 지리산 사람들, 지리산생명연대,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지리산 종교연대 등. 각기 성격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들 모두가 생명과 평화를 지향하는 지리산 둘레길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정신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지리산 둘레길도 없었다.

10주년을 맞는 지리산 둘레길에 최근 첫 번째 선물이 도착했다. 지리산 둘레길을 내는 데 허리 구실을 한 사단법인 숲길 이상윤 상임이사, 그리고 ‘지리산 화가’라 불리는 이호신 화백이 최근 <지리산 둘레길 그림편지>를 펴냈다(그림으로 쓴지리산 서사시 기사 참조). 둘은 3년 전 둘레길 10주년을 기념해 책을 펴내기로 의기투합했다. 둘레길 곳곳을 훤히 꿰고 있는 이상윤 이사가 글을 쓰고 이호신 화백이 그림을 그렸다. 김준기 제주도립미술관장의 추천사처럼 이 책은 ‘지리산 마음 순례’의 기록이자, 지리산에 바치는 뜨거운 연서다.  

다른 10주년 행사도 준비되고 있다. 우선 지리산 종교연대, 둘레길 센터 상근자가 함께 3월부터 코스를 정해 ‘매일 순례’를 시작했다. 평일에 길을 걷는 탐방객도 센터에 연락하면 동행할 수 있다. 4월19일에는 도법 스님, 최석기 경상대 교수 등이 참여하는 ‘순례길 이야기마당’이, 5월에는 10주년 맞이 둘레길 이음단 행사가 열린다. 해마다 여는 10월 걷기축제는 5개 시·군이 모두 참여해 대규모로 치를 예정이다.

둘레길은 혼자 가도 좋고 여럿이 가도 좋다. 공식적인 토요걷기에 참가하거나 지리산 둘레길 홈페이지 ‘자유길동무’ 난을 통해서 함께 걸을 사람을 모을 수도 있다. 올 들어 첫 토요걷기 행사는 3월17일 산청 성심원-운리(13.4㎞) 구간에서 열렸다. 행사 공지가 뜬 당일 30명 신청이 마감되었다.

취재진이 지리산 둘레길을 찾은 첫날에는 비가 내렸고, 이튿날에는 눈이 내렸다. 둘레길을 걷기에는 적절치 않은 날이었다. 그럼에도 남원 인월장터 순대국밥집에는 허기를 채우는 둘레꾼의 발길이 이어졌고, 구례 운조루와 용호정에는 막 맺힌 꽃망울에 탄성을 지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눈 덮인 실상사에서는 나이 지긋한 남성들이 세월호 기도소를 찾았다. 그들 모두가 지리산의 순례자였다. 생동하는 봄과 더불어 지리산 둘레길의 계절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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