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정상혁 기자는 2017년 3월4일 〈예상 밖의 전복의 서〉(읻다, 2017)라는 시집을 소개하면서 시인 에드몽 자베스에 대해 “‘시인의 시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생소한 이름”이라고 썼다. 같은 해 9월29일 〈한겨레〉 최재봉 기자는 윌리엄 트레버의 〈루시 골트 이야기〉 (한겨레출판, 2017)를 소개하면서 “단편소설 문장의 밀도로 장편을 밀고 나간 트레버의 필력은 그가 왜 ‘작가들의 작가’로 일컬어지는지 알게 한다”라고 썼다. 또 〈한국일보〉 최문선 기자는 제임스 설터의 단편소설집 〈아메리칸 급행〉(마음산책, 2018)을 소개하는 2018년 1월19일 기사에서 “작가들의 작가. 한국 독자가 설터를 부르는 방식이다”라고 썼다. 기자들은 마치 ‘시인의 시인’이니 ‘작가들의 작가’니 하는 별칭이 으레 통용되는 것처럼 써놓았지만, 나로서는 금시초문이다.

ⓒ이지영 그림
한 달 뒤에 열릴 서울올림픽에 대한 기대가 한창 고조되고 있던 1988년 8월14일, FM 라디오를 통해 좋아하는 기타리스트의 자살 소식을 들었다. ‘메시아는 다시 오시리(The Messiah Will Come Again)’라는 곡으로 유명한 로이 부캐넌의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나는 〈로이 부캐넌을 추모함〉이라는 추모시를 썼다. “완벽한, 거의 완벽한, 완벽했던/ 너 자신이 기타였던 로이./ 많은 주법과 기술을 고안했던/ 기타리스트의 기타리스트 로이/ 이제 너는 가고 메시아를 기다리는 너의 음악만 남았다./ 네가 죽기 전에 나는 이렇게 알고 있었다// 생명은 하나/ 죽음도 하나/ 손가락은 열 개/ 기타 줄은 여섯 개라고.// 그러나 너의 죽음으로/ 우리는 줄이 하나 없는 기타를 치게 됐다./ 다섯 줄의 불완전한 기타/ 고장 난 기타를”

작중에 나오는 ‘기타리스트의 기타리스트’라는 표현은 나의 것이 아니다. 뮤지션들이 거장에게 존경을 표하기 위해 대중음악계와 연예 산업에서는 진작에 저런 별칭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인의 시인’이니 ‘작가들의 작가’니 하는 별칭은 연예 산업이나 대중음악계에서 쓰고 있던 것을 흉내 낸 것으로 추정되며, 문학계와 독서계에는 원래 이런 용법이 없었다. 출판사가 홍보를 위해 만든 ‘마케팅 용어’다. 기자들이 저런 속임수에 녹아나는 것은 딱한 일이다.

서머싯 몸은 작가라면 반드시 침상 옆에 두 권의 책을 비치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셰익스피어와 연감(年鑑)이다. 아주 재미있게도 영·미 평론가들은 누군가의 작품을 읽다가 ‘어디선가 이미 본 듯한 것’이라고 느껴지면, 셰익스피어에서 빌려온 것임을 의심하라고 당부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아무도 셰익스피어에게 ‘작가들의 작가’라는 최상급의 호칭을 바치지 않았다. 하물며 트레버고, 설터이겠는가? 다 헛소리다.

〈김수영 전집〉
이영준 엮음
민음사 펴냄
그러나 오해는 금물이다. 나는 ‘작가들의 작가’나 ‘시인의 시인’ 따위는 없다고 강변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지 않다. 그것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작가들의 작가’나 ‘시인의 시인’이 되려는 자는 소설 아닌 소설을 써야 하고, 시 아닌 시를 써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마르셀 뒤샹이 ‘화가들의 화가’가 된 것은 그가 그림을 그리는 화폭과 붓을 버렸기 때문이고, 피나 바우쉬가 ‘무용인들의 무용인’이 된 것은 자신의 무용에 무용 아닌 것을 들여왔기 때문이다.

시인들은 별난 예외지만, 소설가들은 다른 소설가들의 소설을 읽지 않는다. 술집에서 만나 술을 함께 마실 수는 있지만, 남의 소설을 읽는 법은 없다. 내가 쓴 것도 소설이고, 네가 쓴 것도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의 소설을 읽을 바엔, 차라리 내 소설을 한 편 더 쓰는 게 낫다. 소설가는 소설 아닌 것을 읽는다. 거기에 유익하고 배울 게 있기 때문이다. 동료 소설가를 편애할 수는 있으나, 이들을 ‘작가들의 작가’로 떠받드는 사람은 아직 작가가 되지 못한 ‘문청(문학청년)’이다. 에른스트 윙거와 다니엘 퀸 정도나 되어야 ‘작가들의 작가’다. 이들이 쓴 소설은 소설이 아니거든.

‘작가의 작가’ ‘시인의 시인’이 되려면

시인 김수영(1921~1968) 50주기를 맞아 1981년에 초판이 나왔던 〈김수영 전집〉(민음사, 2018)의 두 번째 개정판이 새로 나왔다. 2003년 개정판에 이어 재개정판을 책임 편집한 이영준 경희대 교수는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김수영은 한국 현대시의 관습을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미친 ‘시인들의 시인’이자 세상과 자신을 속이지 않은 엄청난 용기와 결기를 가진 시인이었다”라고 말했다. 과연 김수영을 일컬어서는 ‘시인의 시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김수영은 시에 시 아닌 것을 도입하면서 시에 대한 전통적인 선입견을 통째 날려 보냈다. 그는 아무 단어나 화제로 시를 만들었고 그럴 때마다 한국시의 영토와 시야가 확장되었다. 재개정판에 처음 실린 〈“김일성 만세”〉는 그가 왜 ‘시인의 시인’인지를 웅변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왜 그래야만 하는가? 일반 독자는 ‘시’라고만 해도 겁을 먹고 움츠러들기까지 하는데, ‘시인의 시’가 따로 있는 것처럼 말한다면 시인과 일반 독자 사이에 넘지 못할 장벽을 세우는 꼴이다.

문학인들은 보마르셰의 〈피가로의 결혼〉(1784)이 프랑스 혁명을 일으키고, 스토 부인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 (1852)이 흑인 노예해방 전쟁을, 입센의 〈인형의 집〉(1879)이 여성참정권 운동을, 고리키의 〈어머니〉(1907)가 러시아 혁명을 일으켰다는 신화를 좋아한다. 나아가 어떤 이들은 수상쩍은 목적에서 문학적 신화를 새로 창작하고 유포하는 것에도 적극적이다. 예컨대 제1차 세계대전 때 전사한 독일 병사들의 배낭마다 횔덜린의 〈히페리온〉(1799)이 들어 있었다는 문헌이 있고, 릴케의 〈기수 크리스토프 릴케의 사랑과 죽음의 노래〉(1899)가 들어 있었다는 문헌도 있다. 또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 전몰 학도들의 배낭에서 헤세의 〈데미안〉(1919)이 발견되었다는 문헌도 존재한다. 이런 믿거나 말거나 하는 신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누굴까. 모두 글로 밥을 벌어먹는 문학인과 그 주변인(출판사)들이다. 문학 산업은 신화가 필요하다.

‘작가들의 작가’니 ‘시인의 시인’이니 하는 잡스러운 명칭으로 문학 자체를 신화화하려는 모든 시도를 거부하자. 문학과 예술을 추존하는 뻔뻔스러운 수사를 비웃자. ‘고은(高銀)’이라는 성채를 만든 것도 문학적 신화이고, 그의 취중 일탈이 마치 성은(聖恩)처럼 용납되어온 것도 문학을 신화화한 끝에 벌어진 사달이다. 문학을 신화화하지 않으면서 문학의 가치를 대중에게 알리고 사랑받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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