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7년(전 7권)
정찬주 지음, 작가정신 펴냄

“백성들의 충의는 넘쳤지만 그것을 담아낼 임금이 없었다.”

10년간 치밀한 취재와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작가가 직접 발로 현장을 누볐다. 역사서는 물론 문중의 족보까지 샅샅이 뒤져가며 기나긴 준비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당시 군 체계 및 화살의 종류와 쓰임새, 무기나 장비들, 거북선 건조 과정, 전술 변화, 조정 대신들의 당파 싸움 및 명나라와 역학관계 등 전쟁과 관련된 것은 물론 의식주 문화를 핍진하게 묘사했다.
수군 부대와 피난민들, 농민들 생활상과 세시풍속에 대한 세밀한 서술을 보노라면 ‘16세기 호남 풍물지’라 할 만하다. 또한 개비, 부룩소, 뿌사리, 끄느름하다 등 멸실되다시피 한 수많은 방언을 재현해 간결하고 속도감 있는 문체, 날카로운 비유 및 농익은 익살과 조화롭게 어우러지도록 구성했다.


송기호의 밥과 법
송기호 지음, 한티재 펴냄

“법의 지배란 권력이 법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 법조계에서도 희귀한 통상 전문가 송기호 변호사가 ‘밥(경제)과 법의 관계’를 고찰했다. 저자에 따르면 법률은 ‘경제에서 사람을 대우하는 방법’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법률로 ‘사람이 존중받는 경제 시스템’을 보장해야 보통 사람들이 사회를 신뢰하고 혁신의 동인을 얻으며, 일하고 분배받는 방식을 고도화(숙련 경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또한 ‘밥을 위한 법의 쓰임새’를 확장하자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이 법에 따라 엄정하게 운영되는 국가로 국제적 인정을 받는다면, 외부 세력들 역시 한국(정부)의 대내외적 정책 결정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 한국을 단지 ‘동북아의 경제 강국’이 아니라 ‘민주적 법치의 모델 국가’로 발전시키자는 비전이다.


예술가의 나이듦에 대하여
이연식 지음, 플루토 펴냄

“나이 들수록 이상해지는 거장의 작품 속에 우리 인생이 있다.”

흔히 예술가의 노년기 작품을 설명할 때 ‘원숙해졌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명성과 역량은 시차가 있기 마련이어서 명성을 얻고 난 뒤 하락기에 접어든 예술가도 제법 있다. 이때 결벽증적인 예술가는 작업을 중단하고, 양심적인 예술가는 괴로워하고, 뻔뻔한 예술가는 일단 버티고 본다.
저자는 예술가의 나이 듦이 그의 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찰했다. 끝까지 창작의 긴장을 유지하거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예술가도 있었지만 세월에 굴복한 예술가도 많았다. 일을 너무 벌이거나 체력의 한계로 인해 후반 작업에 소홀한 경우도 있었고, 말년에 자신의 작업 방식을 부정하기도 한다. 노욕과 노추는 예술에도 깃들기 마련이다.


경제 규칙 다시 쓰기
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 김홍식 옮김, 열린책들 펴냄

“우리는 경제를 지배하는 규칙들을 바꿀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공공부문 일자리 늘리기 등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이 ‘시장 원칙을 무시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정부 개입은 ‘자기 이익 추구’라는 인간의 압도적 본성(시장주의의 인간관)을 통제하려는 무의미한 시도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저자는 불평등한 현실이 시장 원칙 등 ‘불가피한 법칙’ 때문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경제 규칙’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적시하는 것으로 변혁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준다.
저자는 먼저 현재의 경제 규칙(기업 지배구조·세제· 국제무역협정·노동시장· 거시경제정책 등)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작동하는지 고찰한 다음 최상위층의 과도한 힘을 억제하고 중산층을 키우는 새로운 규칙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세계의 이면에 눈뜨는 지식들
톰 스탠디지 엮음, 이시은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갑작스럽게 무언가 깨닫게 되는 순간을 경험하고 그 뜻밖의 깨달음을 즐기기 바란다.”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지식을 재치 있는 문법과 직관적인 그래픽으로 설명하는 책. “일본에서는 왜 성인 입양이 많을까?” “유엔이 인턴에게 보수를 지급하지 않는 이유는?” “한국에 왜 김씨가 많을까?”
이 흥미로운 문답을 만들어낸 이들은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익스플레인(explain)’ 팀이다. 익스플레인은 파편화된 뉴스 사이에서 중요한 질문을 뽑아내 명쾌하게 설명하는 온라인 뉴스 코너다. 책을 엮은 톰 스탠디지는 팀을 이끌며 디지털 전략을 담당하고 있다. 상황·배경지식·설명·의의라는 4단계 서술 구조를 유지하며 간결하되 알찬 설명으로 지식의 저변을 늘려준다. 저널리즘의 혼돈기에 나타난 꽤 묵직한 결과물이다.


헝거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사이행성 펴냄

“내가 그 말라빠진 여자 잡아먹어 버렸지. 맛있긴 했지만 양이 너무 적더군.”

억만장자이며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여자 중 한 명인 오프라 윈프리조차도 자기 몸에 대해서는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 오프라는 다이어트 광고에 나와 진지하게 말한다. 뚱뚱한 여자들 안에는 날씬한 여자가 살고 있다고. 록산 게이는 이렇게 논평한다. “이 얼마나 빌어먹을 소리인가.”
그런 그녀도 자신을 끊임없이 검열한다. 190㎝가 넘는 키, 200㎏이 넘는 몸무게는 ‘일반 여성 외모 기준에 관한 암묵적인 규칙’을 깨는 숫자들이다. 페미니스트로서 아는 것과 믿는 것과 느끼는 것은 매일 다툼을 벌인다. 그녀는 스스로를 이렇게 방치한 이유를 모른다고 쓰고 ‘아니, 안다’라고 이어 적는다. 록산 게이라는 여성의 몸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그녀만의 것이 아님을, 극단으로 몰아붙이며 써 내려간 글이 증명한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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