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3.1 ● 제28주년 3·1절 기념식에서 응원경찰의 발포로 주민 6명 사망, 8명 중경상을 당하는 ‘3·1사건’ 발생 3.10 ● 3·1사건에 항의하는 민·관 총파업 돌입 3.20 ● 미군정보팀, “제주의 총파업에는 좌·우익이 공히 참가하고 있으며, 제주도민 70%가 좌익단체 동조자”라고 보고 6.1 ● 경찰, 삐라 살포 혐의로 제주읍내 중학생 20명 검속 8.13 ● 경찰이 삐라를 붙이는 소년 추격 과정에서 발포해 주민 3명 총상 9.21 ● 22개 우익 청년단체 통합, 대동청년단 발족 11.2 ● 서북청년회 제주도본부(위원장 장동춘) 발족 12.7 ● 제주 CIC, “경찰 당국이 제주도 경찰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유혈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라고 상부에 보고
1948년 2.7 ● 전국에 비상경계 3.6 ● 조천지서에서 취조받던 조천중학원 학생 김용철 고문치사 3.14 ● 모슬포지서에서 대정면 영락리 청년 양은하 고문치사 4.3 ● 4·3 무장봉기 발발. 경찰 4명, 민간인 8명, 무장대 2명 사망 4.5 ● 미군정, 제주 해상교통 차단하고 미군 함정 동원해 해안 봉쇄 4.13 ● 제9연대, 제주읍에 특별부대 파견 4.14 ● 최종 선거인 등록(5·10 총선거) 결과 제주도는 64.9% (전국 평균 91.7%)로 전국 최하위 기록 4.24 ● 미국 〈워싱턴포스트〉, ‘한국 섬 폭동 발발 46명 사망’이라는 제목 아래 제주사태 첫 보도 4.28 ● 제9연대장 김익렬과 무장대 총책 김달삼 평화협상 합의 5.1 ● 세칭 ‘오라리 방화사건’ 발생해 평화협상 파기 5.6 ● 미군정, 김익렬 9연대장 해임, 신임 9연대장에 박진경 중령 임명 5.31 ● 제헌국회 개원. 이승만, 국회의장에 선출 6.2 ● 제주 주둔 미군사령관 브라운 대령, “제주도의 서쪽에서 동쪽까지 모조리 휩쓸어버리는 작전을 진행시키고 있다”라고 밝힘 6.18 ● 박진경 제11연대장 숙소에서 부하에 의해 피살 8.15 ●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공포 9.8 ● 제주읍 삼양리 거주 13세 소년, 삼양지서에서 고문치사 10.17 ● 송요찬 9연대장, 제주 해안에서 5㎞ 이상 지역에 통행금지를 명령하면서 이를 어길 시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총살에 처하겠다는 내용의 포고문 발표 10.18 ● 제주 해안 봉쇄 10.19 ● 여수·순천 10·19사건 발생 11.7 ● 토벌대, 구좌면 행원리 주민 10여 명 총살 ● 군경 합동 토벌대, 남원면 중산간 마을인 의귀리·수망리·한남리 노인과 어린이 총살, 가옥 방화 ● 무장대, 서귀면 서귀리 급습해 민가에 방화 11.13 ● 토벌대, 애월면 하가리 주민 25명 집단 총살, 소길리 원동마을 주민 50~60명 집단 총살 11.17 ● 이승만 대통령, 제주도 전역에 계엄령 선포 11.28 ● 무장대, 남원면 남원리와 위미리 주민 집단 살해, 가옥 방화
1949년 1.3 ● 무장대, 제주읍 삼양리, 남원면 하례리, 한림면 협재리 주민 살해 ● 외도지서 경찰과 특공대원들이 무장대로 위장해 제주읍 도평리 주민 70여 명 총살 1.4 ● 토벌대, 제주읍 화북리 곤을동 주민을 이틀에 걸쳐 집단 총살 1.13 ● 무장대, 성읍리 주민 38명 살해, 방화 1.17 ● 토벌대, 조천면 북촌리 주민 400여 명 집단 총살 1.21 ● 이승만 대통령, “미국 측에서 한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많은 동정을 표하나 제주도, 전남 사건의 여파를 완전히 발근색원(拔根塞源)하여야 그들의 원조는 적극화할 것이며 지방 토색(討索) 반도 및 절도 등 악당을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하여 법의 존엄을 표시할 것이 요청된다”라고 유시 1.22 ● 토벌대, 안덕면 동광리·상창리 주민 등 80여 명을 서귀포 정방폭포 부근에서 집단 총살 2.4 ● 제주읍 봉개지구(봉개·용강·회천리)에 대한 육해공군 합동작전 전개. 토벌대, 도망가는 주민 수백명 총살 4.9 ● 이승만 대통령, 부인과 함께 제주도 방문 5.15 ● 제주도지구전투사령부 해산. 서북청년회 단원으로 구성된 2연대 3대대 철수 6.7 ● 무장대 총사령 이덕구, 경찰에 의해 사살 10.2 ● 제주비행장 인근에서 249명 총살형 집행 후 암매장
1950년 6.25 ● 6·25전쟁 발발. 제주도 해병대사령관이 제주도지구 계엄사령관 겸임 7.11 ● 치안국장으로부터 ‘불순분자 검거의 건’ 제주도경찰국장에게 하달 7.25 ● 무장대, 중문면 하원리를 습격해 민가에 방화 7.27 ● 토벌대, 예비검속으로 제주읍 주정공장 수감된 주민들 사라봉 앞 바다에 수장함 7.29 ● 서귀포경찰서 관내에 예비검속됐던 수감자 150여 명 바다에 수장됨 8.4 ● 제주경찰서·주정공장 등지에 수감되어 있던 예비검속자 수백명 제주항 앞바다에 수장됨 8.19 ● 제주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었던 예비검속자 수백명 제주비행장에서 총살 후 암매장 8.20 ● 모슬포경찰서 관내 한림면·대정면·안덕면 예비검속자 344명 중 252명 송악산 섯알오름에서 집단 총살됨 10.10 ● 제주도지구의 계엄 해제
1951년 4.24 ● 제주 경찰, 1950년 10월1일~1951년 4월22일 7개월간 무장대 사살 56명 등의 전과 발표
1952년 4.1 ● 제주 경찰, ‘제주도지구 잔비섬멸작전’ 전개 9.16 ● 제주방송국에 무장대 5명 침입해 숙직 중인 방송과장 등 3명 납치 10.31 ● 무장대, 서귀포발전소 습격·방화
1954년 4.1 ● 한라산 부분 개방. 산간부락 입주 및 복귀 허용 9.21 ● 한라산 금족구역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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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4·3으로부터 참으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4·3을 헤쳐 나온 분들에게는 지금도 잔혹한 그날이 어제 같기만 할 것이다. 그때 경험담을 들려주는 어르신들의 입은 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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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운명을 바꾼 세 명의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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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민(SBS CN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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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은 4·3 70주년을 맞아 3월24~25일 ‘소설가 현기영과 함께 걷는 4·3길’ 행사를 진행했다. 4·3을 다룬 소설 〈순이 삼촌〉을 쓴, 제주 출신 현기영 작가와 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