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에 건너와 이민자로 10여 년간 살았다. 한국 사고방식은 새로운 환경이나 체계와 부딪쳤다. 신박물관학을 공부할 때도 그랬다. 박물관 전시를 보며, 원주민과 다른 시선에서 유럽 박물관이 구축해온 프레임과 담론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었다. 2014년과 2016년 ‘스텐 베리만과 나’라는 사진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스웨덴 출신인 스텐 베리만은 유명한 조류학자이자 탐험가였다. 그는 주로 이국적인 장소를 여행하고 책을 썼으며 강의도 했다. 1937년 그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를 출간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한국 여행 견문록이다. 베리만은 새나 동물 사진과 더불어 당시 한국인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의 사진과 글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기술되어 있는지 흥미로웠다.

베리만은 내 고향인 제주도의 해녀도 카메라에 담았다. 1930년대 카메라면 크고 무거웠을 텐데 어떻게 사진을 찍었을까? 어린 해녀가 물질하는 바다를 담기 위해 베리만은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일제강점기 제주에서 카메라와 서양인을 만나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통역해주는 사람은 있었을까? 궁금증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스웨덴에서 〈제주 해녀 문화전〉을 기획하며 이때 들었던 궁금증이 다시 생각났다.
 

ⓒ고민정 제공예테보리 해양박물관에서 개막한 〈제주 해녀 문화전〉에 김형선 사진가의 해녀 초상 작품 26점이 전시되었다.

3월3일 예테보리 해양박물관에서 〈제주 해녀 문화전 (Haenyeo:Women of the sea)〉이 개막했다. 이번 문화전에 김형선 사진가의 해녀 초상 작품 26점이 전시되었다. 고희영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물숨〉도  선보였다. 필자는 객원 큐레이터로 참여했다.  

김형선 사진가나 고희영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작업했다. 카메라는 프레임에 피사체를 담아 정의하는 재현 권력을 내재한 도구다. 카메라의 눈인 렌즈는 피사체를 타자화한다. 카메라 뒤에는 작가나 감독이 있다. 작가가 카메라에 담을 피사체를 골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결정하는 것은 박물관 전시 과정과 유사하다. 소장품 중에서 누구의 물건, 누구의 이야기를 보여줄지 큐레이터는 선택해야 한다. 선택받지 못한 소장품은 제목이 없는 상자에 담겨 빛을 보지 못한 채 수장고에 남는다. 사진가가 찍었지만 선택받지 못한 사진도 개인 드라이브(저장고)에 담겨 빛을 보지 못한다.

북유럽 도시에 퍼지는 제주 해녀의 숨비소리

필자는 베리만의 사진을 이번 문화전에 포함시킬 수 있었다. 문화전 기획 단계에서는 베리만의 사진과 카메라의 역할에 대해 더 많이 보여주고 싶었다. 김형선 작가가 6년간 제주도 곳곳을 누비며 할머니들의 영혼까지 담은 사진 작업, 고희영 감독이 9년간 혼신을 다한 영상 작업, 베리만이 제3세계 여성을 자기 고국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찍은 사진 작업의 차이점, 그리고 누가 카메라 뒤에 있는지 논의하고 싶었다. 사진에 관심이 있거나 비판인류학에 관심이 있는 관람객들과 토론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필자의 이런 구상은 준비 단계를 거치며 접어야 했다. 제주 해녀 삼촌들 이야기, 자연과 상생하면서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문화를 보여주는 데 더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베리만의 사진은 아주 조그맣게 출력되어 해녀의 옛 도구를 보여주기 위한 용도로 전시되었다.
 

ⓒ고민정 제공한 관람객이 해녀들의 쉼터 ‘불턱’에 앉아 소라 껍데기를 귀에 대보고 있다.

대신 해녀가 너무 이국적으로 보이거나 가난한 나라의 여성으로 해석되는 위험을 줄이기 위한 장치를 제안해 곳곳에 녹여냈다. 예를 들면 관람객은 전시 시작 공간에서 왕눈이라고 불리는 물안경을 통해 바다 속에서 해녀가 일하는 동영상을 볼 수 있다. 관람객은 또 해녀들의 쉼터인 ‘불턱’에 둘러앉아 소라 껍데기에서 흘러나오는 숨비소리, 제주 자장가, 해녀 노동요 등을 들을 수 있다. 해녀들이 요왕 할망께 무사 안녕과 수확을 많이 하게 해주십사 기원하듯 관람객들도 흰 종이에 직접 소원을 적어 소망나무에 걸어볼 수 있게 했다.

소망나무는 전시 기간 내내 무럭무럭 자라날 것이다. 이 소망나무와 해녀의 신앙에 관해서는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에 살고 있는 김순이 시인의 도움이 컸다. 김 시인은 제주 여성의 구술사 및 전설, 해녀 물건을 오래전부터 수집하고 저술했다. 김 시인은 이번 문화전을 위해  예테보리 해양박물관에 해녀 물건과 작업복 등을 기증했다. 또 한국 국제교류재단이 작가와의 대화 등 부대행사를 지원했다.

준비 단계에서 사전 설문조사를 한 것도 흥행에 도움이 되었다. 박물관은 그동안 동양 출신 관람객 유치에 미진했다. 그래서 이번 〈제주 해녀 문화전〉을 통해 동양인 관람객 수를 늘리고 싶어 했다. 필자는 예테보리에 사는 중국과 일본 출신 등 이민자 여성 20명을 대상으로 사전 인터뷰 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 이들은 박물관을 지루한 곳으로 여겼다. 사진 전시는 몇 분 걸리지 않으면서 가볍게 보는 그런 종류의 전시물로 여겼다. 또 아이들과 같이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나 설치물을 원했다. 불턱이나 소망나무는 이런 조사 결과가 반영되어 설치되었다.

〈제주 해녀 문화전〉은 시작부터 아주 인기가 높았다. 개막일에는 관람객이 1000명 넘게 찾았다. 해양박물관이 문을 연 뒤 최고 기록이었다. 〈예테보리 포스텐(Göteborgs Posten)〉 등 스웨덴 주요 일간지도 문화면에 이번 문화전을 비중 있게 다루었다. 전시를 시작한 지 열흘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여러 번 방문했다는 관람객도 있다. 아마 개별화해가는 스웨덴 사람들이, 소박하지만 강한 공동체 삶의 아름다움을 보고 싶어 문화전을 찾지 않나 싶다. 〈제주 해녀 문화전〉은 오는 9월14일까지 예테보리 해양박물관에서 열린다.

기자명 예테보리·고민정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