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허클베리핀 이기용이 만난 뮤지션 5 : 가리온의 엠씨메타

 

 

 

 

2012년 여름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는 화성에 있는 로봇 큐리오시티를 통해 지구의 음악을 우주로 전송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그날 우주에 울려 퍼진 음악은 바로 힙합 뮤지션 윌 아이 엠의 ‘리치 포 더 스타스(Reach for the stars)’였다. 사실 힙합은 대중음악 장르 중에서 비교적 최근에 태어났지만 이제 랩과 힙합을 모르면 21세기 대중음악과 대중문화를 이해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국내에서도 한 케이블 방송사의 랩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가 수년간 선풍적 인기를 얻은 바 있다. 최근에는 ‘10대들의 힙합 전쟁’이라는 모토로 〈고등래퍼〉 시즌 2도 방영되고 있다.

엠씨 메타가 이끄는 힙합 듀오 가리온은 한국 힙합신의 초창기인 1997년부터 활동해온 팀이다. 현재까지 20년 동안 정규 앨범은 단 두 장 발표했을 정도로 음반 작업에 신중을 기한다. 묵직하고 시적인 가사와 대부분의 랩을 한국어로만 쓰는 가리온은 2004년에 발표한 1집 앨범을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올렸다. 6년 만인 2010년에 발표한 2집 역시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반상을 받는 등 음악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올해 발표할 예정으로 8년 만의 신보를 준비 중인 힙합 듀오 가리온의 리더 엠씨 메타를 만났다.
 

ⓒ엠씨 메타 제공엠씨 메타(위)는 “부조리한 일을 경험하며 한국이 진짜 계급사회라는 걸 체감했다. 래퍼들도 이야기할 것들이 있으면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이기용:1990년대 초·중반 까지만 해도 주위에서 힙합 듣는 이들을 보기 힘들었다. 힙합 1세대 중에서도 가장 선배인데, 어떻게 그 당시에 힙합에 빠져들게 되었나?

엠씨 메타:1990년이면 아직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운 격동의 시대였지 않나. 어느 날 등록금이 학생 복지가 아니라 사리사욕에 쓰이고 있다는 말에 확 꽂혀서 열심히 데모에 나가게 됐다. 그 당시는 1990년대였으니 갱스터 랩, 폴리티컬(정치적인) 랩들이 많았다. 미국 내에서의 인종차별이나 억압 같은 것들이 가사로 표현되고 비속어가 가감 없이 나오는 것들이 나에게 굉장한 울림을 줬다. 그 울림이 너무 커서 음악적 취향이 바뀌게 됐다. 그 이전의 나는 말수가 적고 표현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자꾸 감추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그 시절의 내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다. 좀 오글거리는 표현이지만 힙합 음악으로 인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새로 태어난 거다(웃음). 얼마 지나지 않아 1996년에 대학원을 진학하는데 그 무렵 힙합을 ‘듣는 입장’에서 ‘하는 입장’이 됐다.

이기용:재작년 인터뷰에도, 작년 인터뷰에도 곧 3집 앨범을 내겠다고 했던데(웃음).

엠씨 메타:가리온이 2010년에 2집 앨범을 냈으니까 지금 앨범을 발표하지 않은 지 8년째다. 그간 한국 힙합의 흐름이 매우 빨라지면서 시장 환경이나 음악 스타일이 많이 바뀌었다. 가장 근본적으로는 래퍼들의 리듬이 바뀌었다.

이기용:래퍼들의 리듬이 바뀌었다는 게 어떤 뜻인가?

엠씨 메타:작년에 가리온이 초대받아서 갔던 힙합 페스티벌에서 경험한 일을 예로 들면 좋을 것 같다. 우리 앞뒤로 나온 팀들의 음악에 관객들이 다들 뛰면서 신나게 노는데, 우리는 제법 알려진 노래를 하는데도 몇천 명이 너무 잔잔하더라. 당혹감을 넘어서서 공포스러웠다. 그 이유가 바로 비트 차이에 있었던 거다. 이제껏 했던 우리 음악이 아예 안 먹히는구나, 큰일 났다 싶었다. 2010년대 비트에 적응하지 못하는 1990년대 래퍼들은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 거다. 가리온에게는 그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다. 그래서 지금껏 준비하던 것들을 다 접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됐다.

이기용:음악에서는 비트를 어떻게 다루는지가 세대를 나누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한편 멜로디의 화성과는 거리가 먼 랩 음악은 대신 리듬과 시적 표현을 굉장히 자유롭게 활용해왔다. 본인이 쓴 랩 하나를 소개한다면.

엠씨 메타:가리온 곡은 아니지만 내가 발표한 곡 중 경상도 사투리로 랩을 한 ‘무까끼하이(융통성 없이 혹은 무식하게라는 뜻)’라는 노래가 있다. 대구에서 자라다 대학원을 갔을 때였다. 어느 날 수업시간에 발표를 하는데 교수님께서 ‘네가 그렇게 사투리로 말하면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거다’라고 말해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자취방에서 이전에 하숙하던 분이 남기고 간 손거울을 보면서 서울 말씨를 연습했다(웃음). 그러나 교수님은 결국 ‘학기가 끝나기 전에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투로 바꿔서 와라’고 말했다. 언어에 대해 탄압을 받은 거다(웃음). 그래서 서울 말씨로만 랩을 하던 중 ‘무까끼하이’를 냈다. 그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대구에서 쓰던 사투리를 기반으로 기존 음반시장에 대한 치부를 비판하는 내용을 썼다. 다행히 그 곡의 반응이 좋았다.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싱글’ 상도 주셔서 감사히 받았다. 그 가사가 내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낸 가사다. 뱃속에서부터 들어왔던 언어라는 뜻의 ‘탯말’이라는 단어가 있다. 그렇게 사투리로 쓴 ‘무까끼하이’를 추천한다.

이기용:힙합 뮤지션으로 사회적 이슈에 대한 관심도 많고 참여 또한 종종 해왔다.

엠씨 메타:가리온이라는 팀 자체가 원래 폴리티컬한 랩을 하거나 사회·정치 참여적인 태도를 맨 앞에 놓고 움직인 팀은 아니었다. 그러다 1집과 2집 사이쯤 생계를 위해 병원 주차장 일을 하면서 부조리한 일을 참 많이 보게 됐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그리고 지위가 높은 자들을 둘러싼 위계를 보면서 한국이 진짜 계급사회라는 걸 체감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3주기 공연, 배우 권해효씨가 주도한 ‘몽당연필(2011년 일본 대지진 당시 조선학교 재건을 돕기 위한 공연)’과 MBC 파업, 가수 이승환 형의 ‘차카게 살자(백혈병 환우를 위한 공연)’ 등에 참여하면서 사회적 이슈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 그때 주진우 〈시사IN〉 기자도 처음 만났는데 책을 한 권 주더라. 〈악마기자 정의사제〉였다. 이후에 여러 이야기를 들었고, 그동안 몰랐던 사회적 모순에 대한 퍼즐이 맞춰지기도 했다. 래퍼들도 이야기할 것들이 있으면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국정 농단이 세상에 드러난 시기에도 그런 활동들을 했던 거다.

 

 

 


힙합 듀오 가리온의 엠씨 메타를 처음 본 것은 2016년 11월17일이었다. 밴드 허클베리핀도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집회 무대에 올랐다. 그날 엠씨 메타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비판하는 ‘퇴진의 영순위와 도둑놈패’라는 곡을 들려줬다. 현장의 시민들은 그날 가장 뜨거운 환호로 묵직하고 압도적인 엠씨 메타의 랩에 화답했다. 그 순간 나는 뛰어난 래퍼는 동시대의 가장 훌륭한 대중예술가이자 시인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랩은 거대한 대중예술이다. 최고의 래퍼들은 오래된 작사법을 뛰어넘으며 새로운 이야기를 심어놓기 위해 무수한 실험과 고민을 한다. 올해 가리온의 새 앨범이 나온다면 8년 만이다. 그 앨범이 우리들의 삶을 그들만의 새로운 언어로 확장해주길 기대해본다.

기자명 이기용 (밴드 허클베리핀 리더)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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