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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세 살에 고발한 역사의 야만

2018년 04월 06일(금) 제550호
김은지 기자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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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래 지음
김종익 옮김
민족문제연구소 펴냄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 민간인 불법 사찰 피해자 김종익씨에게 안부 전화를 걸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지독한 괴롭힘에 맞서 마음을 가다듬을 때마다 역사를 공부하고 번역을 했다고 한다. 이미 <적도에 묻히다>(2012년), <오동나무 아래에서 역사를 기록하다> (2016년) 등을 옮긴 바 있다. 그는 주로 국가권력에 의해 어지럽혀진 개인의 삶에 주목했다.

김씨가 최근 번역한 이 책은 ‘한국인 BC급 전범 이학래 회고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식민지 조선인 이야기다. 1925년생 이학래는 열일곱 살 때 일본군 포로 감시원이 되어 1942년부터 3년간 타이·미얀마 철도 건설에 동원된 연합군 포로를 감시했다.

1945년 전쟁이 끝나고 연합국은 전쟁범죄 책임을 묻기 위해 재판을 시작했다. 재판 결과 5700여 명이 BC급 전범으로 판결을 받았다. 이 가운데 148명이 조선인이었다. 대부분 이학래처럼 포로 감시원으로 투입된 이들이었다. 이학래는 BC급 전범이 되어 사형수로 지내다 징역 20년으로 감형됐다. 이학래가 스물두 살에 겪은 일이다.

전범 이학래는 이후 자신이 겪은 역사의 소용돌이를 탐구했다. 제국주의와 전쟁, 자신의 가해 경험 고백 및 피해자 대면 그리고 국가의 역할까지 역사의 회오리에 빨려들어간 자신과 주변의 굴절과 곡절을 되짚었다. 처지가 같은 이들과 동진회를 결성했다. 1955년 만들어진 이 단체는 지금까지도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옮긴이 김종익씨의 표현대로 “식민지 청년에서 보편적 인류에 도달해가는 지난하고 거대한 서사”가 이학래의 인생에 담겼다. 열일곱 살에 타의로 고향을 떠난 소년은 아흔세 살 노인이 되도록 역사의 야만을 고발하고 있다. 가해자의 기록이라는 한계도 있지만, 한국 사회가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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