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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럴림픽이 우리에게 남긴 것

2018년 04월 04일(수) 제550호
문경란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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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갖 종류의 운동경기가 각기 다른 재미와 감동을 던지는 것처럼
장애인이 한다고 해서 굳이 비장애인 운동경기와 구별 지을 이유는 없다.

치열한 접전이었다. 썰매에 몸을 단단히 고정한 선수들은 직경 7㎝ 남짓한 작은 퍽(아이스하키 공)을 골대에 밀어넣으려고 상대를 사정없이 밀치거나 격렬한 몸싸움도 불사했다. 승부도 승부지만 자신이 살아 있음을, 고립되지 않고 함께 있음을 확인하는 몸짓처럼 보였다. 3월17일 열린 평창 패럴림픽 아이스하키 3·4위전. 한국 대 이탈리아 경기는 박진감 넘치고 흥미진진했으며 또한 감동적이었다. 평소 스포츠에 무관심한지라 즐길 요량만은 아니었다. 패럴림픽 경기장 안팎을 둘러보고 빈자리에 앉아 응원하며 한 줌의 힘이라도 보태자는 생각이었다.

장애인을 대할 때면 항상 경계하면서도 ‘아차’ 하는 것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별 짓는 일이다. 경기장을 나서며 반성했다. 온갖 종류의 운동경기가 각기 다른 재미와 감동을 던지는 것처럼 장애인 운동경기라 해서 굳이 비장애인 운동경기와 구별 지을 이유는 없었다. 도전하고 한계를 초월하고, 이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은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다를 바 없다.

다른 점이 있다면 장애의 종류와 정도에 따라 경기를 잘할 수 있도록 체육시설을 만들고, 장비를 정교하게 제작·보급하며, 장애를 잘 이해하는 지도자가 훈련하도록 여건과 기반을 조성하는 일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장애인들이 운동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또는 잘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근원적으로 사회의 관심과 투자, 시설 및 시스템 마련에 달려 있다. 장애는 그 자체보다, 장애를 장애로 만드는 사회가 문제라는 말이 실감나는 현장이었다.

패럴림픽이 끝나고 언론 대부분은 성공적인 행사였다고 평가했다. 동의할 만하다. 그럼에도 몇 가지 불편하다. 가장 부끄러웠던 장면은 장애인·비장애인이 아니라 장애인·정상인으로 호칭하는 중계방송이었다. 장애인을 비정상인으로 간주하는 것은 장애인을 치료와 보호의 대상으로 낙인찍고 나아가 불쌍한 존재로 여긴다는 뜻이다. 이 땅에 장애인 인권 운동이 뿌리 내리면서 장애인들이 시혜와 동정의 대상이 되기를 거부한 지는 오래되었다.

장애는 비정상이 아니라 좀 다른 존재다. 미국의 사회 혁신가들은 자폐 장애를 ‘긍정적 산만함’이라고 정의한다. 일반적으로 자폐 장애인은 집중력이나 세심함에서 비장애인에 비해 압도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 미국의 컴퓨터 회사에 채용된 자폐 장애인이 소프트웨어의 오류를 잡아내는 능력은 탁월하다.

패럴림픽 조직위원회는 보도 자료에서 저상버스와 휠체어 장착 버스 등의 제공을 ‘어부바’ 프로젝트라고 명명했다. 알다시피 어부바란 아이를 업어줄 때 하는 말이다. 장애 특성에 맞는 이동수단을 확보하고 제공하는 것은 국가가 선심 쓰듯 장애인을 업어주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마땅한 의무다. 장애인 또한 존엄함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인권의 주체이자 스포츠를 향유할 권리가 있는 동등한 시민이기 때문이다.

장애인 앞에 놓인 난관과 장벽이 먼저 제거되어야


장애 ‘극복’의 서사도 이제 그만하면 좋겠다. ‘인간 승리’ ‘장애를 극복한 영웅’ 따위 단골 메뉴는 평창 패럴림픽 보도에서도 넘쳐났다. 장애를 넘어야 할 극복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장애인이 인간답게 살 수 있으려면 개인의 의지와 노력도 중요하지만, 이들 앞에 놓인 수많은 난관과 굳건한 장벽이 먼저 제거되어야 한다. 패럴림픽 선수들의 땀과 눈물은 국가의 전폭적 지원과 훈련이 뒷받침될 때 빛을 발할 수 있다.

ⓒ시사IN 신선영
3월11일 강릉 하키센터에서 열린 아이스하키 예선전, 대한민국-체코의 경기.


패럴림픽은 혐오와 시혜의 편견에 갇혀 있던 장애인들에게 가능성을 열어준 하나의 돌파구였다. 정작 문제는 그 길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장애인이 극히 소수라는 점이다. 스포츠는커녕 이동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확보된 작은 권리도 장애인들이 농성하고 몸부림쳐 쟁취한 결과물이다.

평창 패럴림픽의 구호는 ‘열정이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였다. 장애인 선수들의 열정이 장애와 비장애 사이에 놓인 벽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메시지다. 이제 구호는 변경되어야 한다. 국민의 관심과 인식 전환, 그리고 국가와 사회의 전폭적이고 지속적인 지원과 인권 보장만이 장애인을 움직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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