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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아픔 보듬는 다크 투어리즘 정착되길”

2018년 04월 02일(월) 제551호
정희상 기자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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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IN>은 4·3 70주년을 맞아 ‘소설가 현기영과 함께 걷는 4·3길’ 행사를 진행했다. 현기영 작가와 독자들은 4·3길을 걸으며 아름다운 섬 제주도에 숨은 역사의 아픔과 상처에 공감했다.

<시사IN>은 4·3 70주년을 맞아 3월24~25일 ‘소설가 현기영과 함께 걷는 4·3길’ 행사를 진행했다. 4·3을 다룬 소설 <순이 삼촌>을 쓴, 제주 출신 현기영 작가와 독자 35명이 4·3길을 걸었다.

첫날 제주국제공항과 가까운 제주시 도두동에 자리한 도두봉에 올랐다.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공항 활주로에서는 항공기가 쉴 새 없이 뜨고 내렸다. 동행한 ‘제주4·3문화해설사회’ 김성용 회장이 활주로 아래 묻혀 있는 비극의 역사를 설명했다. 4·3과 한국전쟁 당시 정뜨르 비행장(현 제주국제공항)은 최대 학살터였다. 1948년 11월부터 이듬해 봄까지 헤아릴 수 없는 제주도민이 이곳으로 끌려와 집단 학살을 당했다. 또 한국전쟁 초기 예비검속자들도 붙들려와 집단 학살당한 뒤 이곳에 매장됐다. 4·3 70주년을 다룬 <시사IN> 제550호 표지의 양여하 할머니 오빠도 학살당한 뒤 이곳에 암매장됐다. 아직까지 유골을 찾지 못했다.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1949년 10월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가 내려진 249명과 예비검속자, 제주시 화북동 일부 주민 등 최소 800명에서 최대 1000명이 정뜨르 비행장에서 집단 총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2007~2009년 1차 발굴 사업 때 유해 382구가 나왔다. 그러나 당시에는 제주국제공항의 확장 공사가 시급하다는 이유로 더 이상 유골 수습이 어려웠다. 올해 제주국제공항 유해 발굴 작업이 9년 만에 재개된다. 제주공항에 남아 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유골 수습은 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가 정부에 요구하는 미완의 해결 과제에 포함돼 있다.

3월24일 4·3 70주년을 맞아 진행한 ‘소설가 현기영과 함께 걷는 4·3길’ 행사 참가자들이 제주4·3평화공원을 걷고 있다.

도두봉에 이어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로 향했다. 4·3 당시 남녀노소 주민 400여 명이 하루 이틀 사이에 집단 학살당한 북촌리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제주 출신 현기영 작가는 1949년 1월17일 일어난 북촌리 학살 사건을 모티브로 1978년 소설 <순이 삼촌>을 발표했다. 이 소설로 그는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시사IN> 제542호 ‘학살보다 더 무서운 건 4·3을 잊는 것이다’ 기사 참조).

북촌리 현장에는 너븐숭이 4·3기념관과 위령탑, 순이삼촌 문학기념비와 방사탑, 애기무덤 등이 조성돼 있다. 기념관에서 현기영 작가는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소설을 쓰게 된 동기와 보안사에 끌려가 겪은 고초 등을 강연했다. 군사정부가 금기시하던 4·3을 알리는 소설 집필이 두렵지 않았느냐는 독자의 질문에 현기영 작가는 “두려워서 나름 안전장치를 생각했다. 가해자인 서북청년단원을, 학살 사건 뒤 나름 고뇌하는 양심을 가진 가상 인물로 설정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4·3 70주년을 맞아 “해마다 1200만명 이상 제주 여행을 다녀가지만 이 아름다운 섬에 한때 2만5000~3만명에 이르는 이들이 국가 폭력에 몰살당한 상처가 있다는 걸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시사IN>의 역사기행이 물꼬를 터서 4·3을 우리의 역사와 아픔으로 보듬는 다크 투어리즘(비극적인 역사 현장 등을 둘러보는 여행)이 더 널리 정착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제주올레 19코스 4·3길 함께 걸으며


올해 78세인 현기영 작가는 독자들과 사인회를 가진 뒤 제주올레 19코스 구간인 북촌리 4·3길을 함께 걸었다. 사건 당시 2연대 3대대가 북촌리 주민을 끌고 간 북촌초등학교에서 시작해 북촌포구 바닷길을 따라 걷노라면 군부대가 주둔했던 야산 서우봉에 다다른다. 여기서 함덕해수욕장으로 내려가는 길은 학살을 모면한 주민 70여 명이 군부대에 다시 학살된 그 장소다. 노란 벨벳을 깔아놓은 듯 흐드러지게 핀 유채꽃 위로 현란하게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는 70년 세월의 상처를 무상하게 만든다.

3월24일 제주시 너븐숭이 4·3기념관에서 현기영 작가가 보안사에 끌려가 겪은 고초 등을 들려주었다.

이튿날 일행은 제주4·3평화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에는 제주4·3평화기념관을 비롯해 위령제단, 위령탑, 행방불명인 표석, 각명비, 봉안관 등 각종 조형물이 자리하고 있다. 위령제단 앞에 이르러 독자 2명이 대표로 향을 피워 올렸다.

제주 출신 허영선 시인(제주4·3연구소 소장)을 초청해 4·3평화기념관 강당에서 증언 채록 설명회를 들었다. 허 시인은 <제민일보> 기자 시절인 1990년대 초반부터 제주 전역을 돌며 4·3 피해자 증언을 채록했다. 특히 여성과 아이들에게 가해진 토벌대의 반인륜적 만행에 대한 고발 내용이 충격을 더했다.

마지막 일정은 제주시 선흘리 동백동산에 자리한 용암굴(도틀굴)과 낙선동 4·3성터 탐방이었다. 4·3 당시 도틀굴은 선흘리 주민들이 대피해 있다가 토벌대가 들이닥쳐 잔혹하게 학살당한 곳이다. 또 낙선동 4·3성터는 토벌대가 중산간 마을을 초토화한 뒤 생포한 주민을 끌고 와 낙선동에 성을 쌓게 하고 ‘함바집(가건물)’이라는 전략촌을 만들어 집단 거주하게 한 곳이다.

이번 걷기 행사에는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황희석 법무부 인권국장 등도 참여했다. <시사IN> 애독자이자 ‘시사 에세이’ 필자이기도 했던 박 장관은 개인 자격으로 참가 신청을 했다. 마지막 일정까지 함께한 박 장관에게 소회를 물었다. 박 장관은 “그동안 제주 4·3을 거시적으로만 알았다. 구체적인 피해 현장을 돌아보니 제주도민이 받은
수난을 세세하게 알 수 있었다. 국가가 상상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현장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경험이 법무부 소관인 4·3 과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4·3 수형자들을 복권시키는 일도 중요한 과제이고, 학살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과 배상 문제도 법무부 업무와 관련 있다. 국회에도 관련 4·3특별법 (개정안)이 계류되어 있는 만큼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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