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미국 인구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미국인 80%는 도시 지역에 산다. 여기서 말하는 도시 지역(urban areas+urban clusters)의 기준 인구수는 2500명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으로 스타덤에 오른 여자 컬링 국가대표 선수들의 고향 경북 의성군 인구가 지난해 6월 기준 5만3778명이니, 미국에서는 의성군도 거뜬히 도시에 포함된다. 물론 마을과 행정구역을 나누는 기준은 다르다.
대도시권에 사는 미국인과 시골에 사는 미국인의 삶은 큰 차이를 보인다. 도심 지역은 이민자와 외국인 거주 비중이 높고 상대적으로 젊다. 도심 지역은 교육 수준이나 소득 수준도 시골보다 높으며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는 지역이다. 반면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은 상대적으로 백인 비율이 높고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기보다 기존 일자리가 계속 줄어드는 지역이다. 빈곤율도 시골이 도시보다 더 높다. 이제 미국 어느 대도시를 가든 ‘비빔밥’이나 ‘라멘(일본식 라면)’을 판매하는 가게를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시골 지역에서는 기껏해야 ‘아시아 음식점’이란 간판을 단 곳이 있을 뿐이다.
2010년 미국 인구조사를 보면 미국인 59%가 자신이 태어난 주에서 계속 살고 있다. 이 비율은 아이오와나 웨스트버지니아처럼 대도시가 없거나 드문 주로 갈수록 더 높아진다. 2000년까지만 해도 해외여행을 가기 위한 여권이 있는 미국인은 17%에 불과했다. 여권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도심 지역에 살았다. 미국 밖은커녕 자신이 태어난 주를 벗어나본 적이 없는 비중도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도시에 사는 이들보다 훨씬 높았다.
대도시와 시골의 이러한 사회 경제적 차이는 지지하는 정당과 투표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오른쪽 〈표〉는 2016년 대선에서 지역별 인구 규모와 각 후보가 얻은 표의 관계를 보여준다. 인구가 100만명 이상인 대도시 지역에서 트럼프 후보는 40%의 표를 받았다. 반면 인구가 2500명 이하인 시골에서 그의 득표율은 70%에 육박했다.
시골 사람이 도시 사람에게 분노하는 이유
이렇게 같은 주 안에서도 도시와 시골 간에 뚜렷한 격차가 발생하는 현상은 미국 전역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리버럴’의 상징인 캘리포니아 주를 보면, 2016년 대선에서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61.5%를 득표하긴 했다. 그런데 캘리포니아 주 가장 북쪽 내륙에 있는 모독 카운티나 래슨 카운티에서는 공화당 트럼프 후보가 70% 넘는 표를 얻었다. 반면 UC 버클리가 있으며 실리콘밸리와 가까운 앨라메다 카운티에서 트럼프 후보를 찍은 유권자는 14.5%밖에 되지 않았다.
크레이머 교수 연구에 따르면, 위스콘신 주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도시 사람들에게 분노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세금은 덜 내면서 정부 혜택은 더 많이 받고,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서도 정부 복지 혜택을 바라고 있다고 시골 유권자들은 생각했다. 도시 사람들은 시골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나 생각을 전혀 존중해주지 않으며, 자신들을 그저 생각 없는 인종주의자로 치부한다며 분노했다. 중요한 결정이 도시에서 이뤄지고 자신들을 무시해온 정치인들의 태도가 겹치면서 시골 유권자들의 분노는 임계점에 달했다. 특히 시골에 사는 백인 유권자들은, 미국 사회에서 흑인을 비롯한 소수 인종이 노력한 바에 비해 큰 혜택을 받고 있으며, 자신과 같은 백인이 공정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역차별당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시골 유권자들은 힐러리로 상징되는 ‘도시 엘리트 정치인’과 달리 트럼프가 자신들의 불만에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의 주장처럼 도시 사람들이 시골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고 있을까? 크레이머 교수는 위스콘신 주정부와 연방정부가 각 카운티에 보내는 일인당 보조금은 시골이 더 높지만, 정부에 내는 일인당 세금은 시골로 갈수록 더 적다는 사실을 데이터로 보여주었다. 시골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사실관계를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시골 사람들의 압도적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했다. 트럼프 당선으로 도시 유권자와 시골 유권자 사이의 차이, 정치적 선호의 간극, 그리고 정치인과 엘리트는 이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치열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찰스 머리와 같은 보수 논객은 도시 엘리트들이 교육 수준, 소득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과 결혼하고,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살면서 결과적으로 ‘엘리트 버블’ 안에 자기 자신을 가두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도시 사람들은 시골에 사는 ‘평범한 미국인’들이 겪는 고통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문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다는 것이다.
“문제의 원인 제공자는 시골 사람들”
정반대 분석도 나왔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채플힐 캠퍼스의 정치학자 제임스 스팀슨은 〈뉴욕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도시 엘리트 대신 시골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문제의 원인으로 꼽았다. 스팀슨 교수는 시골 사람들이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새로운 기회를 좇아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시골에 남아 도시를 탓하고 정부를 탓하며 분노만 쌓았다고 분석했다. 그는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과 고향에 머무르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려는 자세, 새로운 문화와 다른 인종을 받아들이려는 태도, 야망과 열정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스팀슨 교수는 “미국이 시골에 사는 유권자들을 자랑스러워해야 할 위대한 일꾼으로 보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말했다. 공화당 정치인과 보수 논객들은 정부 자원 대부분을 도시 사람들이 빼앗아가고, 도시 엘리트들은 도시 바깥의 삶에 무지해서 시골에 사는 유권자들이 어려움을 겪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스팀슨 교수는 정반대로 문제의 원인 제공자를 시골 사람들로 지목한 것이다. 스팀슨 교수는 민주당이 과연 이런 유권자의 마음을 돌려놓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는지 회의적이라고 말한다.
미국 인구조사 결과를 보면 시골에서는 좀처럼 일자리가 생겨나지 않고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시골을 바꾸고 도시와 격차를 줄이려면 결국 일자리를 만들고, 이민자를 받아들이며 교육 수준을 높이는 등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 실업자와 장애인 비율, 빈곤율이 높은 시골에 정부의 복지 프로그램이 더 필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시골 유권자들은 고등교육이 사회에 기여하는 가치를 폄하하고 이민자 수를 줄이며 정부의 복지 지출을 줄이는 데만 주력하는 공화당을 지지한다. 그동안 줄곧 무시되었던 자신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인상’을 줬다는 이유로 트럼프와 같은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이 시골 유권자들에게 일시적인 만족감을 줄 수는 있다. 하지만 시골 유권자들의 분노에 기반한 정치적 선택은 오히려 자신들을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더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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