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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어부의 잘못된 부업, 해적

2018년 04월 17일(화) 제552호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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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상 범죄를 감시하는 국제해사국(IMB)은 지난 1월 “기니만 해역은 선원들에게 가장 위협적인 바다”라고 경고했다. 이곳에서 3월26일 참치잡이 어선 마린711호가 나포되었다.

해적이 또 나타났다. 이번에는 악명 높았던 소말리아 해적이 아닌 서아프리카 기니만의 나이지리아 해적이다.

3월26일(현지 시각) 450t급 참치잡이 어선 마린711호가 가나 해역 인근에서 나이지리아 해적에 나포됐다. 나포 지점은 나이지리아와 베냉의 해상 경계 지역이다. 마린711호가 나포되자 나이지리아 해군 함정 2척이 그 뒤를 쫓았다. 해적은 마린711호를 버리고 스피드보트에 한국인 선장·기관사·항해사 등 3명을 태워 공해상으로 달아났다. 나머지 가나 국적 선원 40여 명은 선박과 함께 풀려났다.

스피드보트는 일반 배에 비해 속도가 2배 이상 빠르고 크기는 7m 정도로 작다. 무엇보다 스피드보트에는 선박 식별 신호를 보낼 수 있는 GPS 등이 달려 있지 않아 소재 파악이 어렵다. 나이지리아 해적들의 스피드보트 이용은 전형적인 수법이다. 선박 전체를 나포하면 기동성이 떨어지고 납치 경로나 인질 위치 등이 노출되기 쉽다. 그래서 배를 버리고 보트에 인질을 태워서 도주한다. 과거 소말리아 해적도 비슷한 수법을 썼다.

ⓒ해군 작전사령부
아덴만 해역에서 작전 중인 청해부대가 마린711호 피랍 해역으로 긴급 출동했다. 사진은 해상작전헬기(링스헬기)에서 엄호하며 사격을 준비하고 있는 청해부대 요원.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 연합군의 단속으로 동아프리카 아덴만 일대를 무대로 활동한 소말리아 해적은 거의 소멸 상태이다. 소말리아 해안에서 2011년 237건에 이르렀던 해적들의 공격이 지난해 9건으로 감소했다. 그러자 서아프리카 기니만 일대가 해적의 주 무대로 떠올랐다. 최근 3~4개월간 기니만에서 발생한 납치 사건은 주로 기름을 노리거나 선박에 있는 선원의 금품이나 물건을 탈취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 1월10일 유조선 배럿호가 나흘간 납치되었다. 2월1일에는 베냉 코토누 인근 해역에서 인도 승무원 22명이 탄 유조선 마린익스프레스호가 6일간 납치되었다가 풀려났다. 마린711호가 납치된 지점은 이보다도 더 서쪽인 가나 인근 해역이다. 나이지리아 라고스항 해안경찰대 소속 한 경찰은 “아직까지는 좀도둑 수준인 해적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외국인 선원을 납치해 육지로 끌고 가는 일이 빈번해졌다. 나이지리아 해적은 소말리아 해적처럼 거대한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요구하는 몸값이 천문학적 금액은 아닐 것이다”라고 말했다.

소말리아 해적도 처음부터 거액의 몸값을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 ‘해적 비즈니스’로 진화하면서 요구하는 금액이 커지기 시작했다. 해적은 몇 사람이 모의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역할 분담을 한다. 나포할 선박을 알려주는 정보 제공조, 무기나 스피드보트를 제공하는 지원조, 실제 총을 들고 실행하는 공격조, 몸값 협상에 나서는 협상조 등 많은 사람들이 거미줄처럼 엮여 있다. 심지어 항구를 관리하는 공무원도 검은돈으로 결탁되어 있다. 이들은 인질 협상이 끝나 몸값을 받아내면 각자 역할에 따라 돈을 분배한다. 많은 사람이 관여할수록 받는 몫은 줄어든다. 그래서 해적 비즈니스는 몸값 협상을 오래 끌고 가격을 점점 올린다. 각 그룹이 받는 몫을 늘리기 위해서다. 소말리아 해적들도 여러 그룹이 관여하면서 인질 몸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등 하나의 산업이 되었다.

나이지리아 해적도 이처럼 시간이 지나면 진화할 가능성이 있다. 소말리아 해적 산업을 벤치마킹할 수도 있고 소말리아 해적들이 서아프리카로 옮겨 자신들의 노하우를 나이지리아 해적에게 전수해주며 다시 해적질에 가담할 수도 있다. 나이지리아 해적과 소말리아 해적은 아프리카를 주름잡는 해적의 양대 산맥이다. 소말리아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다. 1995년 유엔이 소말리아 개입 실패를 선언하고 평화유지군이 철수하면서 혼란은 극심해졌다. 혼란을 틈타 알카에다 연계 세력까지 가세하며 소말리아에는 내전이 지속되고 있다. 내전으로 해적을 단속할 공권력이 전무하다. 해적을 단속해도 사법 처리할 수 없으니 더 기승을 부린다.

나이지리아는 2015년 대선에서 당선한 모하마두 부하리 대통령이 이끌고 있다. 군 병력은 7만명 정도이고 해상에서 활동하는 해군도 있다. 전체 인구는 1억8000여만명, 아프리카 국가에서 인구가 가장 많다. 아프리카 최대의 석유 생산국으로, 세계 7위 산유국이다. 한국 선원 납치 관련 책임국으로 그나마 우리 정부가 외교력을 가동할 수 있는 나라이다. 하지만 나이지리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앙정부의 치안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나이지리아는 이슬람계 하우사족이 30%, 기독교계 요루바족이 20%를 차지하고 있다. 이 외에도 크고 작은 부족들이 250여 개나 된다. 복잡한 부족과 종교 간 분쟁은 나이지리아를 사실상 4개 권역으로 분열시켰다. 특히 북부에서는 유명한 이슬람 무장조직인 보코하람을 비롯해 크고 작은 이슬람 세력들이 우후죽순 활동 중이다. 남부는 기독교 세력이 장악하고 있다. 상호 보복 등 종교나 종족 간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소말리아와 나이지리아 해적이 기승을 부리는 바탕에는 ‘가난’이 깔려 있다. 소말리아는 1990년대 초 내전 이후 경제가 급격히 무너져 1인당 GNP가 세계에서 최하 수준으로 떨어졌다. 2000년대 가뭄까지 겹쳐 인구의 3분의 1이 기아로 허덕이면서 먹고살기 위해 해적이 되기도 했다. 교육 시설이 거의 없어서 학교를 다니지 못한 아이들은 해적을 장래 희망으로 꼽기도 한다. 해적이 되지 않은 국민들은 이웃 나라인 케냐로 탈출해 난민이 되었다.

ⓒEPA
한국 선원 3명이 억류되어 있는 나이지리아 남부의 니제르델타 지역은 니제르델타해방운동이 활동하는 곳이다. 여기 소속 민병대원들의 순찰 모습.
나이지리아는 석유 생산품이 전체 수출의 90%를 차지하지만 일부 고위층과 상류층에 그 혜택이 돌아간다. 소득분배가 공평하지 못해 일반 국민들의 생활은 아주 가난하다. 국민들이 그나마 먹고살 수 있는 기반이 바다이다. 하지만 최근 바다도 외국 어선에 빼앗겼다. 부정부패가 심한 나이지리아에서는 외국 선박한테 뒷돈을 받고 조업 허가서를 남발했다. 나이지리아 라고스항에서 새우를 잡는 어부 조나단 씨는 “우리 배는 아주 낡아 멀리 나갈 수 없다. 반면 외국 선박들은 엔진이 좋다. 먼바다부터 가까운 곳까지 싹쓸이 조업을 하고 있다. 요즘에는 중국 어선들이 나타나 품질 좋은 새우뿐 아니라 인근 해안의 물고기 씨를 말릴 정도로 고기를 잡고 있다”라고 분노했다. 조업을 할 수 없는 어부들이 선택한 ‘부업’이 바로 해적이다. 이처럼 해적 출현의 가장 근본 원인은 아프리카의 ‘배고픔’이다.

해상 범죄를 전문적으로 감시하는 국제상공회의소 산하 특수기구 국제해사국(IMB)은 지난 1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기니만 해역은 선원들에게 가장 위협적인 바다”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해양수산부나 선주협회 등이 이 지역을 지나가거나 조업 중인 한국 어선들에게 주의하라는 경고를 내렸다. 그동안 이 지역 해적에 의한 한국 어선 피해가 전혀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서아프리카에서 참치 조업을 했던 한 항해사는 “조업 중 갑자기 총을 쏘며 다가오는 해적을 만난 적이 있다. 해적이라기보다 해상 강도다. 그들은 현금과 노트북, 시계, 핸드폰 등 값나가는 물건들과 참치만 강탈하고 우리를 납치하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나처럼 이런 소규모 피해를 당하는 한국 어선들이 꽤 있지만 일일이 신고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피해 선사가 신고하지 않는 이유는 신고를 해봐야 빼앗긴 물건을 되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좀도둑 수준이었던 나이지리아 해적들이 점점 수법이 대담해져 이제는 선원들까지 납치하고 있다.

ⓒEPA
3월21일 나이지리아 정부군이 이슬람 무장조직 보코하람에 납치되었다 풀려난 여학생을 옮기고 있다.
아덴만 해역에서 작전 중인 문무대왕함 급파


중국 <신화통신>은 가나 군 당국자 말을 인용해 납치된 한국인 선원 3명은 현재 나이지리아 남부 바옐사 주에 억류되어 있다고 보도했다. 이곳은 유전이 산재한 니제르델타 지역 중 하나다. 니제르델타는 납치와 강도로 유명한 니제르델타해방운동(MEND) 등이 활동하는 곳이다. 2007년 대우건설 노동자 9명이 이곳의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현장에서 현지인 1명과 함께한 무장단체에 납치됐다가 6일 만에 풀려났다. 또 2012년 현대중공업 지사에서 한국인 4명과 나이지리아 국적 노동자 2명이 무장 괴한의 침입을 받고 보트로 납치된 곳이기도 하다.

3월27일 외교부는 피랍 사실을 확인한 뒤 ‘신변 안전’ 등을 이유로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보도 유예(엠바고)를 요청했다. 보도 유예를 해제하고 3월28일 정부는 아덴만 해역에서 작전 중인 청해부대(문무대왕함)를 피랍 해역으로 긴급 출동시켰다.

보도대로 납치된 한국인 선원들이 바옐사 주에 억류되어 있다면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무장 강도들의 소굴에 생존해 있을 확률이 높다. 4월6일 현재 납치 10여 일이 지나면서 선원들의 안전이 가장 중요한데, 해적들은 인질을 납치하면 살해까지 하지 않는다. 인질의 몸값을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해적들 손에 인질이 잡혀 있는 한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2015년 그리스 유조선이 나이지리아 해역에서 해적들의 공격을 받았을 때, 그리스인 항해사 1명이 사망한 적이 있다. 납치 과정에서 해적들이 총을 쏘다 희생된 경우다.

이번 인질 사태를 일으킨 나이지리아 해적에 대한 해법은 소말리아 해적 소탕 작전에서 찾을 수 있다. 2008년 10월 유엔안보리 결의 1838호에 따라 소말리아 해적 퇴치를 위해 국제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모든 당사국에 함정·항공기의 파견을 요청했다. 그 뒤 소말리아 및 아덴만 해역에서 연합 기동함대가 운영되었다. 바레인에 주둔 중인 미국 해군 5함대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청해부대를 비롯해 프랑스·네덜란드·영국·파키스탄·캐나다·덴마크 등을 포함한 20여 개국이 합동으로 군사작전을 펼치고 있다. 각 나라의 자국 어선을 보호하는 것은 물론 해적에 나포되면 국적에 상관없이 구조 작전을 폈다. 이처럼 국제적인 군사 대응이 소말리아 해적을 약화시키는 결정적 구실을 했다.

기니만 연안에는 나이지리아 해적뿐 아니라 카메룬 해적도 활발히 활동한다. 긴 해안과 가난, 그리고 혼란한 국내 상황 등 서아프리카 연안에는 언제든 해적이 창궐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었다. 소말리아 해적 소탕처럼 국제적인 군사 공조도 중요하지만 기니만 인근 국가들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는 게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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