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클베리핀 이기용이 만난 뮤지션 ➅ 킹스턴 루디스카

원치 않는 수많은 소리 속에 노출된 현대인들이 이어폰을 낀 채 음악을 홀로 듣는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러나 녹음 기술이 발달하기 전까지 모든 음악은 바로 눈앞에서 연주되었다. 라이브 음악이었다. 함께 모여 음악을 들을 때 사람들은 혼자일 때와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한다. 공연장에서 음악이 울려 퍼지기 전까지는 모두 각각 개인이지만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면 그들은 하나로 움직이는 공동체가 된다. 관객들은 같이 느끼고, 같이 소리 지르고, 같이 춤을 춘다.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천진한 웃음, 경쾌하고 꾸밈없는 움직임을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공연이 바로 ‘킹스턴 루디스카’의 공연이다. 그들의 공연을 보면 음악이 원래 여러 사람이 함께 참여하는 집단 체험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2004년에 결성된 킹스턴 루디스카는 ‘브라스 파트(관악기)’가 포함된 9인조 밴드다. 국내 스카 장르의 선구자이자 대표적인 밴드이다(자메이카에서 1960년께 시작된 스카는 민속 리듬과 재즈, R&B가 혼합된 음악이다). 킹스턴 루디스카의 역사가 곧 한국 스카의 역사이기도 하다. 스카 불모지에서 자라났지만 그들은 세계적으로 공신력을 인정받는 일본 레게레코드닷컴의 스카 차트에서 2014년 4개 부문 1위를 했다. 또 2015년 영국 BBC의 음악 전문 매체인 〈글로벌 비츠(Global Beats)〉가 뽑은 세계의 대표적인 스카 밴드 일곱 팀 중 한 팀으로 선정되었다. 펑크 밴드의 기타리스트 겸 보컬로 시작해 지금은 대표적인 스카 밴드 킹스턴 루디스카의 트롬본 주자이자 리더로 활약하는 최철욱을 만났다.

 

ⓒ이기용 제공‘킹스턴 루디스카’가 연주하는 스카 음악은 신나는 리듬에 구슬픈 멜로디가 깔리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트롬본 주자이자 리더 최철욱씨.


이기용:스카라는 비트에 매력을 느낀 계기는?

킹스턴 루디스카:제대하고 일본에 가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쿄 스카파라다이스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보았다. 트럼펫, 트롬본, 테너·바리톤 색소폰과 퍼커션이 포함된 엄청 큰 규모의 팀이다. 소규모 스카 밴드만 하던 나는 관악기 소리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그런 커다란 관악기 사운드를 처음 접했으니 완전히 충격이었다. 그날 내가 꽂힌 악기가 바로 트롬본이다. 트롬본이라는 악기를 그때 처음 봤다.

이기용:그날 관악기를 강렬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킹스턴 루디스카는 없었을 수도 있겠다. 록밴드로 활동하던 시절에 담당하던 기타를 그만두고 새로 트롬본을 배웠는데?

킹스턴 루디스카:2003년에 저렴한 트롬본을 구해 매일 연습했다. 당시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회사 다닐 때였는데 점심 먹고 옥상에 올라가서 한참 악기 불고 내려오곤 했다. 사람들이 출근길 엘리베이터 안에서 트롬본 케이스를 골프 가방이냐고 자꾸 물어봐서(웃음) 아예 악기를 옥상에 두고 다녔다.

이기용:멤버를 다 갖추고 한 첫 공연은 언제인가?

킹스턴 루디스카:2004년 봄이었다. 그 무렵엔 음악 팬들도 스카펑크 외에는 스카 장르를 잘 모를 때라 관객들은 ‘이게 뭐지?’ 하는 반응이었다.

이기용:요즘은 스카를 모르는 사람들도 킹스턴 루디스카의 공연을 무척 즐긴다. 어떤 점이 사람들을 그렇게 만드는 걸까?

킹스턴 루디스카:세계 여러 민속음악의 뿌리를 연구하고 찾아가다 보면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대부분 멜로디보다는 북소리 같은 리듬의 음악으로 시작했다는 것이다. 스카도 그런 뿌리가 있으며 스카 특유의 ‘읏짜읏짜’ 하는 리듬은 흡사 우리나라의 ‘뽕짝’ 같기도 하다. 그래서 머나먼 자메이카에서 온 음악이지만 거부감이 없는 거다. 짧게 말하자면 신나는 리듬에 구슬픈 멜로디가 깔린다. 마냥 신나는 거였다면 이렇게 좋아하지 않았을 거다. 스카에는 대부분 뭔가 애절하고 슬픈 멜로디가 많다. 그게 정말 매력적이다. 한편 스카 리듬 자체에 엄청난 흥이 있어서 우리 음악은 아이돌이랑 공연을 한다고 해도, 무대 분위기든 무엇으로든 밀리지 않는다. 아이돌 공연은 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눈으로 보고 사진 찍기 바쁘지만, 우리 무대는 보지 않아도 덩실덩실 논다. 바로 스카 음악 자체의 힘 때문이다.

이기용:국내 스카 저변이 열악한 상황에서 시작했는데 어느덧 해외 활동이 늘고 있다.

킹스턴 루디스카:운 좋게도 이전부터 흠모해오던 스카계의 뛰어난 아티스트들과 작업하게 됐다. 2013년에는 유럽 스카계의 대부인 독일 닥터 링딩과 함께 앨범을 제작해 전 세계에 발매했다. 2014년에는 우리 4집 앨범을 미국의 스카 레게 분야의 유명 프로듀서 브라이언 딕슨과 함께했다. 그는 당시 우리가 원했던, 아날로그 적으로 한 번에 모든 악기를 녹음하는 방식의 전문가다. 춘천에서 2주간 소주도 마시고 동고동락하며 앨범을 성공적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이기용:우리 민요 ‘뱃노래’를 연주하는 걸 보고 브라이언이 감동해서 눈물을 흘렸다던데?

킹스턴 루디스카:브라스의 투박하고 거친 사운드에 토속적인 ‘뱃노래’의 멜로디를 붙여보니 이게 자메이카 음악인지 한국 음악인지 모를 정도로 잘 어울렸다. 브라이언은 우리가 연주하는 뱃노래를 듣고 “이건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이건 너희들만의 것이다”라고 말해주었다. 그 순간이 우리가 스카라는 장르를 오래 해오면서 생긴 매너리즘을 깨는 계기가 되었다.

이기용:밴드 인원이 9명인데, 멤버가 많아서 생기는 에피소드는 없나?

킹스턴 루디스카:한번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기타리스트 재하가 차에 못 탄 줄 모르고 출발한 적도 있다. 또 좁은 무대 위에 9명이 다 설 수 없어 멤버들이 관객 사이에서 트롬본을 연주하다 팔을 뻗었는데 관객 명치를 트롬본으로 친 적이 있다. 죄송하다고 사과하느라 연주를 몇 마디 중단했다(웃음).

이기용:사람들이 잘 하지 않는 장르를 15년 가까이 하고 있는데 아쉬움이나 바람은?

킹스턴 루디스카:해외에서는 스카 장르에만 20개에 달하는 하위 장르가 있을 정도로 세분화되어 있고 저변이 넓다. 우리는 여러 노하우를 전수해줄 만한 스카 장르의 선배가 없어서 참 아쉽고 외로웠다. 음악적으로 궁금한 게 있어도 물어볼 곳이 없었다. 음반을 내면 관심 있게 들어주는 사람이 있고 또 함께 연주하는 후배 동료들이 많아져서 좀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본 킹스턴 루디스카의 공연은 음악이 주는 순수한 기쁨과 음악이 가진 즐거운 경쾌함으로 늘 충만했다. 공연장뿐 아니라 집회가 있는 거리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연스레 관객들까지 자의식이라는 거추장스러움을 잊고 공연을 즐긴다. 멋있게 보이려고 애쓸 필요도 없이 그저 음악에 몸을 맡긴다. 밴드의 리더 최철욱은 “킹스턴 루디스카로 스카라는 음악이 가진 흥과 에너지를 조금이나마 알릴 수 있게 되어서 기쁘다”라고 말했다.

자신들이 사랑하는 음악을 하는 것은 물론 기쁨이다. 그러나 대중이 잘 알지 못하는 음악을 업으로 삼는 것은 용기이자 모험이다. 국내에 참고할 만한 밴드가 없어서 어려움을 겪던 킹스턴 루디스카는 오는 6월 아시아 밴드로는 유일하게 캐나다 빅토리아에서 열리는 ‘스카 레게 페스티벌’과 미국 ‘시에라네바다 월드뮤직 페스티벌’에 참가한다.

 

 

 

기자명 이기용 (밴드 허클베리핀 리더)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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