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된 학원 수강생들이 찾아왔다. 으레 그렇듯 밥을 사주고, 대학 생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한 학생이 애교를 떨며 물었다. “선생님 저 좀 도와주시면 안 돼요?” 아이가 내민 종이는 대학 과제물이었다. 생각보다 잘 안 풀린다며 옛 학원 선생인 내게 도움을 청했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신문에서만 보던 ‘사교육 받는 대학생’이 내 앞에 앉아 있었다. 호의로 잠깐 봐줘도 될 일이었지만, 왠지 기분이 씁쓸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재수 생활을 마친 후에도 학원 강사와 꾸준히 친분을 유지하는 아이들이 많다. 그들은 학창 시절 다니던 학원에 와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한다. 교무실에서 틈틈이 본인의 과제를 하다 안 풀리면 강사들의 쉬는 시간을 기다려 도움을 받는다. “대학을 가서도 학원을 못 벗어나느냐”라고 핀잔을 주긴 했어도 그 요청을 외면한 적은 없다.

ⓒ김보경 그림

그런데 학원을 못 벗어나는 것이 학생만은 아니다. 일부 학부모는 대학생이 된 자식들의 근황을 알리며 안부 인사를 남기곤 한다. 본격적으로 진로 상담이 필요한 날에는 샌드위치나 음료를 바리바리 싸들고 불시에 들이닥쳐 옛 학원 강사를 기다릴 때도 있었다. 각종 취업·유학 박람회를 비롯해 인터넷이라는 엄청난 정보 창구가 있는 시대이며, 대학의 취업센터를 통해 충분히 진로 탐색이 가능하고, 학교 인맥으로 현업 직장인의 실질적 조언을 받을 수 있는 시절인데도 이들은 고등학교 때 다니던 학원에 왔다. 대학 생활에 부지런하지 못한 자식을 대신해 부모는 하소연을 빙자해 학점 관리와 리포트 작성법을 배워갔고, 가끔 전공 분야가 겹치면 내게는 대수롭지 않은 정보이지만 그들에게는 무척이나 유용할 정보를 수월하게 얻어갈 때도 있었다. 

얼마 전 학원 교무실에 2년 전 졸업한 학생의 어머니가 찾아왔다. 학원 다닐 때부터 워낙 치맛바람이 거센 분이었다. 그는 화장품을 전 직원과 강사에게 돌리며 고3 때 자기 아이를 담당했던 강사의 퇴근을 기다렸다. 이윽고 그는 강사에게 부탁을 쏟아냈다. 강사가 나온 그 대학원에 아이를 보내고 싶다, 조기 졸업이 목표인데 남은 기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자기소개서와 학업 계획서를 위해 어떤 활동이 유리한지, 그 학과 교수진의 성향은 어떠한지, 대학원 입학 준비를 위해 핵심적인 논문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고 속사포처럼 물었다. 결론은 강사가 짜줄 그 계획을 ‘사고’ 싶다는 거였다.

입시학원 강사가 자녀 진로 탐색의 브로커?

그날 그 강사가 어떻게 대처했는지 모른다. 이수 과목이야 졸업 조건에 맞춰 들으면 될 일이고, 대학원 입시야 학과에 재학 중인 아이가 가장 잘 알 것인데, 학생이 의지가 없어 안 알아보는 것을 왜 여기 와서 찾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만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가까운 인맥이 없고 학원 강사에게 그 조언을 구해야 할 만큼 그 학부모가 절박하고 불안하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학원에서 일하며 가끔씩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풍경들을 만나게 된다. 입시학원 강사들을 대학 입학 뒤에도 진로 탐색의 ‘브로커’로 삼겠다는 모습을 보고는 입맛이 씁쓸한 한편, 사교육 업계가 또 한 번 팽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다. 강사들은 수요자의 ‘불안’을 토대로 아주 빠르게 개인 맞춤형으로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명 해달 (필명·대입 학원 강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